[2018상반기*함께가는여성] 기획_미투운동이 만들 사회적 정의
기획
미투운동이 만들 사회적 정의
시원(김민문정)
여는 민우회 상임대표 | 과도한 책임감에 거절 못하고 막상 닥치면 후회를 반복하는 중…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지난 2월, UN여성차별철페위원회(CEDAW)의 협약이행에 대한 한국정부 심의가 제네바 UN본부에서 진행되었다. CEDAW는 한국정부에 “피해자의 자유로운 동의 부족을 중심으로 강간을 정의할 것”을 권고했다. 위 사진은 NGO참가단 회의모습
2018년 1월 한 검사의 증언으로 촉발된 미투운동은 성차별과 성폭력은 집, 학교, 마을, 직장, 버스·지하철 등 여성들의 모든 일상 공간에서 매일매일 일어나고 있었고, 현재도 일어나는, 한 여성 개인의 ‘특수’한 경험이 아닌 모든 여성이 겪는 ‘보편’의 경험임을 증명했다. 그래서 한국사회가 얼마나 성차별적인가, 일상 곳곳에 만연한 성폭력이 어떻게 여성들의 삶을 통제하고 지배해왔는가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여성들은 그동안 여성들의 말하기를 가로막아 온 제도적, 문화적 제약과 장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성폭력 피해경험을 미디어, 거리, 온라인 공간 등 공적 공간에서 당당하게 증언하고 있다. 성폭력 피해 경험은 숨겨야 하는 ‘부끄러운 것’이라는 통념을 보란 듯이 뒤엎고, 오히려 부끄러움을 느껴야 하는 존재는 사회적 정의를 훼손한 가해자들의 몫임을 천명한다. 미투운동은 개인의 경험과 피해를 이야기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으나 개인적 문제해결을 위한 폭로나 고발을 넘어 더 이상 성차별·성폭력이라는 가부장적 통제와 지배의 굴레에 갇혀있지 않겠다는 선언이며, 성차별적 구조를 근본부터 뒤집는 구조개혁운동이자 젠더혁명이다.
여성의 말하기를 가로막아 온 제도적 제약과 장치, 젠더혁명 시대에 맞는 인식 틀로 바꿔야
UN 여성차별철페위원회(CEDAW)는 “여성폭력은 남성에 비해 종속적인 여성의 위치와 그들의 전형적인 역할이 영구화되는 근본적인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인 방법 중의 하나”로 간주하고 “여성의 인권과 본질적 자유를 누리는 데에 폭력이 심각한 장애물”임을 명확히 하며 “성폭력을 신변 안전 및 육체적, 성적, 정신적 온전성에의 권리에 반하는 범죄”로 규정한다.1) 인간이 당연히 누려야할 기본권의 보장과 이의 침해에 대한 사회적 정의의 관점에서 성폭력을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정조’라는 봉건적 낡은 인식의 틀 안에 갇혀있다. 1953년 만들어진 형법에서 성범죄를 규정한 장의 제목은 ‘정조에 관한 죄’였다. ‘여자의 곧은 절개’라는 ‘정조’의 사전적 의미가 상징하듯 ‘정조’는 여성 개인이 지켜야 하는 것이었고, ‘죽을 힘’을 다해 항거하며 지켜야 할 것이었다. 물론 반성폭력운동을 통해 1995년 ‘강간과 추행의 죄’로 장의 제목이 바뀌기는 했지만 이런 봉건적 낡은 인식의 틀로 만들어진 형법의 판단기준을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성폭력은 ‘항거불능 상태’이거나 ‘항거가 현저히 곤란한 정도의 폭행·협박이 동반될 때’에만 성폭력 범죄로, ‘죽을 힘’을 다해 저항한 피해자만이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죽을 힘’을 다해 저항한 피해자조차도 ‘정조’를 잃은, 훼손된 몸을 가진 부끄러운 존재 취급을 받았다. 때문에 성폭력 피해자들은 피해를 제대로 말할 수 없었고 용기 내어 피해를 드러내도 끊임없이 의심받거나 가해자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을 기대할 수 없었다.
이제 성폭력의 개념, 판단기준은 젠더혁명 시대에 맞는 인식의 틀로 새롭게 바꿔야 한다. 낡은 봉건적 인식 틀로 만든 제도로는 촛불혁명 이후 젠더 혁명의 시대를 반영할 수 없다.
강간죄는 명백한 동의 없는 성적 침해행위(비동의 간음죄2))를 기본으로
미투운동은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서의 여성, 보호받아야 하는 사회적 약자로서의 여성이기를 거부한다. 당연히 존중되고 보장되어야 할 기본권인 자신의 몸과 성에 대해 침해받지 않을 권리, 성적 침해로부터의 자유를 가진 존재로서의 관점으로 성폭력범죄는 구성되고 판단되어야 한다. 따라서 성폭력범죄는 기본권 침해여부, 즉 피해자의 명백한 동의가 있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하도록 형법이 새롭게 구성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성폭력범죄를 규정하는 장의 제목을 ‘성적자기결정권 침해의 죄’로 변경해야 하고, 강간의 개념을 ‘명백한 동의 없는 성적침해행위(비동의 간음추행)’를 기본으로 설정해야 한다. 그리고 폭행·협박과 같은 유형력이 행사된 경우(현행「형법」제297조)와 소속된 집단내부 권력관계로 인한 무형의 지배력을 행사한 경우(「형법」제303조)를 가중요소로 고려하여 엄격하게 처벌해야 한다. 이를 위해 현재 형법의 법정형은 조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기존의 이성애, 성기 중심의 성폭력 개념 규정에 대해서도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
현재 성폭력 판단과정에서 피해자의 성 이력을 질문하는 경우가 많다. 보호받을 자격이 있는 피해자와 그렇지 않은 피해자로 나누는 이분법을 적용하는 것이다. 이는 낡은 봉건적 정조 관념에서 유래한 것으로 반드시 해체되고 금지되어야 한다.
피해자의 의사에 따른 처리나 해결은 성폭력범죄를 개별화·개인화하는 것. 사회적 책임 고민해야
형법에 규정된 범죄와 이에 대한 처벌과정은 사회 정의를 훼손한, 사회적 규범을 어긴 사람 또는 행위에 대해 사회가 책임을 묻는 것이다. 그런데 성폭력범죄는 그동안 ‘피해자 의사에 따른 처리’를 중요한 원칙이나 가치로 설정해왔다. 이 또한 정조라는 봉건적 낡은 틀과 연결된 것은 아닌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미 친고죄 폐지 논의과정에 얘기되었듯 ‘피해자 의사에 따른 처리’는 성폭력 피해 경험이 감춰야 하는 ‘부끄러운 문제’라는 잘못된 생각을 확산하기도 했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심각하고 이 때문에 발생하는 2차 피해가 엄청나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한 노력은 분명히 필요하다. 그러나 성폭력범죄 처리를 피해자의 의사와 선택에 맡기는 것은 피해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사회적 책무를 방기하는 것이거나 피해자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것일 수 있다. 특히 사회적 정의의 문제를 피해자 개인의 문제로 개인화, 개별화하고 결국 모든 책임을 피해자에게 넘기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어 위험하다. 따라서 사회적 정의를 어떻게 바로 세울 것인가, 규범을 훼손한 범죄에 대해 사회가 어떻게 책임을 다할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1) 일반권고 35호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철폐에 관한 협약>
2) 일반적으로 ‘비동의 간음죄’라는 용어로 사용되지만, ‘간음’의 사전적 의미는 ‘배우자 이외의 사람과 부정하게 맺은 성관계, 부정한 성관계’이기 때문에 의미가 왜곡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본 글에서는 두 개의 용어를 병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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