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하반기-함께가는 여성] 기획_180818 : 용서 받지 못할 자들에게
기획
180818 : 용서 받지 못할 자들에게
무경(김지영) | 여는 민우회 회원
매일 인류애의 한계를 느끼며 불친절하게 살아가는 86년생 김지영. 복싱을 하고, 화초를 키우며 심신의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식덕’.
사실 나는 안희정의 1심 선고에 크게 관심을 두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 담당 작품의 마감으로 바쁜 생활을 이어가고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유죄가 선고될 것이라는 사실에 한 치의 의심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뉴스 속보로 1심 결과를 접했을 때, 눈을 의심했다. 온 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것 같은 감각 속에서 몇 번이고 선고 결과를 확인했다. 오래도록 덮어놓고 살았던 악몽이 되살아나는 기분이었다.
나는 10년 전, 믿고 따랐던 은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창작을 했던 나는 대학 입학 이후 빨리 무언가를 이뤄야한다는 조바심과 초조함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습작품을 올려놓았던 인터넷 카페를 통해 한 통의 쪽지를 받았다. 자신은 현직 소설가 아무개인데 내 작품을 좋게 읽었고, 혹시 필요하다면 작품에 대한 조언을 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내가 존경하던 소설가였고, 그런 분이 내 작품을 읽고 내 재능을 인정해주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떨렸다. 선생님은 나의 재능을 의심하지 말라며 따뜻한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으셨고, 때로는 작품에 대한 날카로운 조언도 해주셨다. 당연히 나는 선생님을 전적으로 믿고 따르게 되었다. 선생님이 만날 때마다 술을 권해도, 술만 드시면 내 옆자리에 옮겨 앉으셔도, 볼을 쓰다듬거나 허벅지를 만져도 그냥 딸 같아서, 예뻐서, 술이 너무 취하셔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상황 속에서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내 자신을 책망했고, 선생님의 선의에 내가 이런 ‘불손한’ 감정을 느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꼈다. 그날, 작품 구상에 도움이 되는 영화를 같이 보자며 나를 DVD방에 데리고 가셨을 때, 그리고 어둠 속에서 뻗어온 손이 내 가슴에 닿고, 물컹하고 축축한 혀가 입 속으로 들어왔을 때까지도 나는 그 불편한 공기 속에서 그런 긴장감을 느끼는 내가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눈물을 쏟으면서, 선생님께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고 그 자리를 도망쳐 나왔다.
그 일 이후, 오랫동안 나는 모든 것이 내 탓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처신을 똑바로 하지 못해서, 내가 더 일찍 이런 상황을 중단시키지 못해서, 내가 어린 여자아이라서 나를 믿어준 선생님에게 상처를 주었고, 이 관계를 망쳤다고. 그리고 마음 한편에는 혹시나 내가 나중에 문단에 나가게 되었을 때 이 일이 내게 불이익으로 돌아오면 어쩌나 하는 현실적인 두려움이 있었다. 나는 그래서 내가 비겁하고 더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아주 많이 지나고 나서야, 그 때의 사건이 ‘위력’에 의한 추행이었음을 알았다.
선고 이후, 기다렸다는 듯이 김지은 님에게 쏟아내는 말들 속에서 그때의 무력감이, 자책감이, 자기혐오가 되살아났다. 김지은 님에게 쏟아지는 모든 말들이 꼭 나를 향한 말처럼 칼날이 되어 꽂혔다. 며칠 밤잠을 이루지 못했고, 독한 술을 마셔도 정신은 생생하기만 했다. 그러다 트위터를 통해 집회 소식을 알게 되었고, 마음껏 소리라도 질러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충동적으로 집회에 나가게 됐다. 정말로 집회의 이름처럼 못 살겠다고, 소리치고 무엇이든 박살내야 지금의 분노가 나를 부수지 않을 것 같았다.
8월 18일, 안희정 무죄판결에 분노한 5차 성차별·성폭력 끝장집회. 이날, 횃불을 들었다.
사실 나는 집회에 나간 경험이 많지 않았다. 대학 시절, 몇 번 집회에 나간 적이 있지만 집회의 집단적인 분노와 그것을 부추기는 선동성, 정형화된 형식들과 과도한 프레임이 나에겐 와 닿지 않았다. 하지만 서울역사박물관 앞 차도에 앉아 먼지와 매연을 마시고 앉아있을 때, 못 살겠다고, 박살내자고 분노로 가득 찬 구호를 목이 터져라 외칠 때 나는 어느 때보다도 편안함을 느꼈다. 특히 해질녘 광화문을 바라보며 함께 걸었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하늘은 높았고 노을이 드리우고 있는 고궁과 고궁을 받치고 있는 북한산은 무척 아름다웠다. 견고하게 선 광화문을 바라보며 행진한 길이, 유모차를 끌고,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휠체어를 밀고 소리를 지르며 함께 걸어가고 있는 여성들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나는 무엇 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눈을 깜박이며 한 순간 한 순간을 가슴에 담았다. 그리고 이상한 평화가 마음 속에 은은하게 번지는 것을 느꼈다. 혐오와 놀라움, 두려움과 몰이해가 뒤섞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을 하나하나 똑바로 바라보며 안희정의 유죄를, ‘미투’는 끝나지 않을 것임을, 당신들 모두 공범자임을 소리 높여 부르짖을 때. 일주일 내내 나를 고통스럽게 하던 분노가 힘이 되는 것을 느꼈다. 어느 때보다도 강한 확신과 용기가 나를 채우고 있었고,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위력은 있었으나, 위력을 실행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문재인 다음으로 지지를 받았던 사람, 다음 대통령이 되었을지 모르는 사람, 개헌이 되면 10년간 대통령을 할 거라고 했던 사람, 법원, 검찰, 국회, 정부, 청와대, 언론, 기업, 학계, 시민단체까지… 문자 한통, 전화 한통으로 다 연결되는 사람. 이런 사람에 대하여 위력은 있었으나, 그걸 실행한 건 아니라고 한다면 위력에 의한 성폭력 형법 303조와 성폭력 특별법 제10조는 누구에게도 적용될 수 없습니다. 1심 재판은 위력의 지형이 그대로 드러난 전시장 같았습니다.
- 180818 집회 발언 중
1부 집회 후 도심을 행진하는 가운데 참여자가 2만을 넘겼다. 방송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인사동 길에서는 참여자들이 육성으로 구호를 이어갔다.
그들이 말하는 일반적인 피해자는 대체 누구란 말입니까. 100명의 성범죄 가해자가 있으면 100가지의 성범죄 방법이 존재하며, 그에 따른 피해를 입은 100명의 피해자가 있습니다. 왜 피해자를 일반화시키고 그 틀을 벗어난 이들을 피해자답지 않다면서 더욱 괴롭게 하는 걸까요. 피해자다운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것의 기준은 누가 만드는 것입니까.
저는 제 스스로 성폭력 피해 생존자라는 것에 한 치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씻을 수 없는 상처는 제가 입은 것이 아니며 가해자가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저는 하늘 아래 당당합니다.
- 180818 2부 집회 자유발언 중
온갖 매연과 먼지를 마시며 목이 잠겨들었지만, 몇 시간을 소리 질러도 힘이 달리기보다는 계속해서 힘이 솟아났다. 그리고 그 순간, 그동안 내게 필요했던 것은 이렇게 있는 힘껏 소리 치고 분노를 쏟아낼 자리였다는 걸 알았다. 이렇게 내가 화가 나 있다고, 이대로 있지 않겠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악을 쓰는 시간이 필요했다는 걸. 그리고 그 날 마주쳤던 사람들의 눈, 함께 걷고 입을 맞췄던 여성들의 눈을 보면서, 나는 오랫동안 10년 전 그 시절의 나를 스스로 용서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그 시절의 나를 온전히 안아줄 수 있었다. 내가 나를 용서해야 하는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용서를 받아야 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는 것을 이제 나는 분명하게 안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스스로를 자책하고 의심하고 있을 수많은 그녀들을 위해, 몇 번이고 다시 그 길에 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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