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하반기-함께가는 여성] 기획_180810 : 절망의 눈물을 흘리고 싶지 않아!
기획
180810 : 절망의 눈물을 흘리고 싶지 않아!
씽씽 | 여는 민우회 회원
고양이 하모와 함께 사는 페미니스트 모터바이크 라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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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8일, 경찰이 인터넷 커뮤니티 ‘워마드’ 운영자에 체포영장을 발부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해외에 있는 운영자를 추적하기 위해 국제공조와 인터폴 적색 수배 요청을 검토한다고 했다. 적용된 혐의는 ‘음란물 유포 방조’. 홍대 남성 누드모델 사진유출 사건에 경찰이 유례없이 재빠른 수사를 진행하면서, 불법촬영과 성차별 편파수사를 규탄하는 수만 명의 목소리가 거리에 쏟아져 나온 지 채 석 달이 되지 않은 때였다. 이틀 뒤 서울 경찰청 앞에서 여성들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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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0일 서울 경찰청 앞, 경찰 편파수사 규탄 기자회견-십수 년의 불법촬영 유포·방조, 웹하드는 왜 처벌하지 않는가? 진짜 방조자는 경찰이다
9일 오후에 회사에서 일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전날 워마드 운영자를 체포해 수사 할 거라는 뉴스가 전해졌었죠. 그때부터 너무 화가 나서 머리와 심장이 두근거렸습니다. 그 많은 불법촬영물 수사는 진척이 그렇게나 더디더니. 기가 막혔습니다. 그러다 늦은 오후에 SNS를 보다 긴급 기자회견을 연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어요. 시간을 먼저 확인했습니다. 업무 시간에는 갈 수 없어서였죠. 오후 12시라는 것을 확인하고, 회사 동료이면서 친구인 지인과 함께 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회사 동료에게도 같이 가자고 했더니 흔쾌히 함께 가겠다고 했어요. 뭐든 하고 싶었습니다. 편파수사와 불법촬영물의 신속한 수사 촉구에 대해서 목소리를 보태고 싶었어요.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기도 했고요. 꼭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였습니다.
촬영물 속의 여성들은 소비되고 여성에 대한 폭력은 지속되고 있다. 여성들은 십수 년 동안 경찰에 찾아가 불법촬영물을 신고하고 처벌을 요구하였다. 그럴 때 마다 돌아오는 답변은 “그거 못 잡아요”, “피의자를 특정할 수가 없어요”, “처벌 못해요”, “삭제 못해요”, “서버가 외국에 있어서 어쩔 수 없어요”, “포기해요”, “우리도 할 수 없는데 그냥 잊어요”라는 말들이었다.
촬영물 속의 여성이 동영상을 막지 못한다는 사실에 좌절해 생을 마감하여도 제대로 된 수사를 통해 관련자들을 엄벌하였다는 보도를 우리는 본 적이 없다. 일간베스트, 디씨인사이드 등 다수의 남성 중심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웹하드 및 파일 호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웹사이트에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불법촬영물이 십수 년 동안 넘쳐나고 있다. 특히 국내 기업 웹하드 사업자들은 불법촬영물을 유통하면서 돈을 벌고, 콘텐츠 필터링 회사를 함께 운영하면서 불법촬영물 유통을 방조할 뿐만 아니라 본인들이 유통시킨 불법촬영물의 피해자로부터 돈을 받고 삭제해주는 ‘디지털장의사’ 일을 통해 몇 백억에 이르는 범죄수익을 축적하고 있다. 수익창출을 위한 웹하드 기반의 카르텔이 형성되어, 하나의 산업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 180810 기자회견문 발췌
십수 년간 불법촬영물이 게시·유통되고 있는 국내 커뮤니티, 파일 공유 사이트 이름을 담아 제작한 현수막을 기자회견 참여자들이 펼쳐들었다.
몇몇 발언자들과 참가자들의 눈물이 자꾸 떠오릅니다. 저도 분노와 절망감에 눈물이 났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철거민들의 시위에 함께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의 절박함이 느껴졌습니다. 불법촬영 수사와 엄벌, 저에게는 ‘생존권’의 문제와 다르지 않아요. 인간답게 안전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라게 됐습니다. 불법촬영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아주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더군요. 누구나 그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무겁고 힘듭니다. 회사는 그나마 안전한 공간이라고 느껴왔지만 이제 그 믿음도 사라졌어요. 집에서도 커튼을 열기가 두렵습니다. 맞은편 건물에서 망원 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로 찍고 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요. 그런 생각에 갑자기 몰입하다보면 힘이 쭉 빠지고, 눈물이 날 때가 있습니다. 그날 보았던 눈물이 겹쳐집니다. 절망의 눈물은 이제 그만 흘리고 싶어요.
편집팀 :
그날, 할 수만 있다면 저지르고 싶은 일이 있나요?
문뜩 저 경찰청에서 나오는 경찰청장의 자동차 앞에 드러눕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경찰청 앞에서 외쳐도 듣지 않잖아요. 무전기를 들고 지켜보던 몇몇 경찰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경찰은 윗선이 지시하지 않은 이상 바뀌지 않잖아요. 경찰청장이라도 제대로 된 정보를 알기 바라요. 제발 우리가 펼침막에 친절히 적어놓은 불법촬영물 유포 사이트 이름 좀 똑바로 보고 기억하라고 외치고 싶었습니다.
편집팀 :
현장에 1명을 소환할 수 있다면 누구를 소환하고 싶었나요?
민갑룡 현 경찰청장. 대통령과 국무총리 등이 여성 대상 범죄에 대한 작은 관심을 보이니 경찰청장도 최근 ‘말’빠르게 움직이더군요. 말이 빠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국정감사에 나와서 총력 대응하겠다고 말했죠. 끝까지 지켜볼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이 어떤 심정과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습니다.
편파수사라고 비판하는 이유에 대해서 경찰은 이해하고 있습니까? 성폭력은 구조화된 문제입니다. 불법촬영 불법유포가 사회문제가 되는 것은 이게 구조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유포가 아니라 유통이고 산업입니다. 유인해서 찍는 사람이 전문적으로 있고, 이걸 도매로 사는 사람, 대량으로 올리는 사람, 수수료를 떼는 업체가 있습니다. 그리고 다운 받는 사람 수십 만 명, 포인트가 올라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광고 수십 개, 광고 클릭으로 팔리는 다른 물건들이 있습니다. 십수 년째 누군가는 큰 돈을 벌어들여 왔습니다. 그 ‘재료’는 평범한 여성들이었습니다.
- 180810 기자회견 발언 중
기자회견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자리가 많이 고마워요. 나만 이렇게 화가 나 있는 것이 아니구나, 내가 손잡을 수 있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지요. 혼자가 아니라는 그 사실에 안도할 때가 있습니다. 여성단체 활동가로 보이는 사람도 많았지만, 저처럼 일반 참가자인 사람들도 기자회견 장소 주변에 드문드문 서 있다 가는 것을 봤습니다. 마음속으로 정말 반가웠어요.
집회나 시위에 다녀온 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골몰할 때가 있습니다. 일단, 할 수 있는 것을 하자는 게 중간 결론이에요. 몸과 마음의 힘을 키우고, 그 힘을 갖고 계속 싸우고 외쳐야죠. 그리고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성차별을 조금이라도 없앨 수 있도록 회사 내 페미니스트 모임을 만들어 작지만 노력하고 있습니다. 모두들 기운 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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