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상반기-함께가는 여성] 민우ing_우리가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
[2020 상반기-함께가는 여성] 민우ing
우리가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
여성노동 위에 세워진 나라
코로나19의 확산 이후 우리의 일상은 빠르게 변했다. 주말마다 붐비던 거리는 한산해졌고, 서울 지하철은 운영시간을 단축했으며, 수많은 사업장이 재택근무 체제에 돌입하거나 무기한 임시휴업에 내몰렸다. 팬데믹* 이 초래한 비일상의 단면이다. 전세계를 강타한 팬데믹 비상에 무수한 노동자가 직격탄을 맞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3월 취업자는 전년 동월 대비 19만 5000여 명 감소했고, 감소폭의 대부분은 영세 서비스업·자영업, 아르바이트에 밀집된 것으로 나타났다. 세대별로는 20대가, 성별로는 여성이 가장 피해를 봤다. 우리 사회가 청년, 그리고 여성을 언제든 쉽게 해고할 수 있는 불안정한 일자리에 위치시켜왔기 때문이다.
*팬데믹(pandemic), 전염병이나 감염병이 범지구적으로 유행하는 것을 일컫는다.
‘한강의 기적’으로 대표되는 급속성장을 이뤄온 한국의 경제는 사실상 여성에 대한 착취 위에 세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OECD(2017)에 따르면 한국의 성별임금격차는 34.6%로, 여성노동자의 평균임금은 남성의 65.4% 수준이다. 단적으로 말해 남성이 월 100만 원의 평균임금을 받을 때 여성은 고작 65만 원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OECD가 성별임금격차를 통계로 잡은 이래 한국은 놀랍게도 단 한 번도 1위 자리에서 내려온 적이 없다. OECD 가입국 중 최악의 성별임금격차. 동일한 임금을 받는다면 사실상 여성노동자는 3시 이후부터는 무급으로 일하는 셈인 것이다.
민우회가 함께하고 있는 ‘3시스탑공동행동’이라는 이름도 여기에서 기인했다. ‘3시스탑공동행동’은 매년 3·8 세계여성의날마다 성별임금격차를 가시화하고 해결을 촉구하는 활동을 벌여왔다. 그리고 올해, 우리는 전국적인 여성파업을 만들어내기로 했다. ‘여성파업’, 상상만 해도 가슴 설레는 단어가 아닐 수 없었다.
‘여자라서’, ‘여자니까’… 파업에 나섰다
파업의 힘은 크다. 흔히 ‘불법(不法)’이라는 오명이 덧입혀져 있기도 하지만, 파업은 엄연히 민주주의 국가에서 노동자가 스스로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합법적 수단이다. 여성파업의 역사는 유구하다. 이제는 명실상부 페미명절이 된 3·8 세계여성의날도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했던 미국 여성 섬유노동자들의 파업을 기념하면서 시작되었고, 한국에서도 70년대 노동운동을 대표하는 동일방직투쟁에서부터 최근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한국도로교통공사와 맞섰던 톨게이트 여성노동자 투쟁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여성노동자들의 투쟁과 파업이 존재해왔다.
우리는 여성총파업일을 금요일인 3월 6일로 예정하고 일터에서 감내해야만 했던 성차별에 지친 여성노동자들의 경험을 모아냈다. 총 404명이 참여한 설문에서 많은 여성노동자들이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일터에서 웃음과 친절을 강요받거나 외모 지적에 노출되고, 탕비실 정리나 손님맞이 등 소위 ‘여성의 역할’로 여겨지는 노동을 전담하고 있었다. 지금이 21세기가 맞는지 되묻게 되는 결과에 암담함을 지울 수 없었다. 이렇게 모아진 분노는 감정노동과 꾸밈노동, 가사·돌봄노동 각각에 대한 주간파업으로 이어졌다. 웃기지 않은 농담에 웃지 않고, 강요되는 꾸밈노동에 반기를 들었으며, 여성의 몫으로 강제되어온 돌봄노동을 거부했다. ‘이런 것도 파업인가?’ 질문을 이끌어낸 거라면 좋겠다. 그렇다. 이런 것도 파업일 수 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강요되어온 노동에 반기를 드는 일.
그렇게 3월 6일 금요일이 되었다. 코로나19의 확산세를 우려해 오프라인 집회를 하지는 못했지만, 내가 속해 있는 단체 채팅방에 친구들의 인증이 속속 올라왔다. ‘나 오늘 휴가 냈어!’, ‘오늘 애는 남편이 보기로 했음’, ‘난 출근은 했는데, 화장 안 하고 나왔어. 뭐라고 하면 맞받아치려고 연습했다’ 온라인을 통한 인증샷 캠페인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여럿이었다. 얼굴을 드러낼 수 없는 사람들은 사무실 모니터를, 정리되지 않은 싱크대를 찍기도 하면서 집, 학교, 사무실 등 성별임금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여성파업에 참여한다는 인증샷을 올렸다.
물론 아쉬움은 남았다. 코로나19로 인해 개학이 미뤄지면서 공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거 무급휴직, 권고사직으로 내몰리고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무소득 상태가 장기화되는 등 비정규직, 임시직, 특수고용노동자처럼 더 열악한 노동에 종사하는 여성노동자들은 당장 일거리가 시급해진 상황에 놓였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 파업은 요원한 일처럼 들렸다.
그러나 여성 노동자에 대한 파업의 높은 문턱이 단지 코로나19 때문 만일까. 안정적인 고용·소득보장이 시급하다는 말은 역으로 말하면 그만큼 불안정한 노동에 종사한다는 뜻이고,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입장에서 파업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얘기가 된다. 전체 비정규직 중 여성의 비율이 높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파업은 여성에게 더 어려운 선택지일 수밖에 없다. 노동조건을 개선하고자 파업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또 일정 수준 이상의 고용보장이 선행되어야 한다니, 가슴 아픈 아이러니다.
코로나19 이후, 노동정책에 성인지적 관점을!
문재인 대통령은 4·19 기념식에서 ‘포스트 코로나’를 준비해야 한다며 그 핵심으로 고용 유지를 꼽았다. 그러나 이런 말이 무색하게도 통계청이 발표한 3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전년 대비 여성 취업자는 11만 5천 명이, 남성은 8만 1천 명이 줄었다고 한다. 채용 시장이 점차 문을 닫는 이 와중에도 여성은 후순위로 밀리는 것이다. 경남의 경우에는 더 놀라운데, 3월 8천 명의 실업자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 와중 남성 실업자 수는 –1천 명을 기록했다. 이 말인즉 여성 실업자 수만(!) 9천 명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여성노동자들이 우선적으로 해고되고 더 열악한 일자리로 복귀해야만 했던 IMF의 악몽이 반복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대통령이 말하는 포스트 코로나의 노동정책에 성인지적 관점이 필요한 이유다.
600만이 참여한 스페인, 50만이 참여한 스위스 여성파업처럼 한국에서도 수많은 여성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외치는 광경을 상상해본다. 기업은 경악하고 언론은 대서특필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껏 여성의 노동을 저평가하면서 그 노동에 의존해 성장해온 한국사회가 긴장할 것이다. OECD 부동의 1위, 한국의 성별임금격차. 이제 수십 년간 움직이지 않은 저 괴물의 엉덩이를 걷어차 줄 때다.
〈3시스탑 공동행동 2020 여성파업 요구안〉
하나, 여자라서 탈락, 여자라서 나쁜 일자리, 반복되는 채용성차별 중단하라!
하나, 언제까지 여성임금은 최저임금이냐, 여성노동 가치 제대로 인정하라!
하나, 열심히 일해도 임금차별·승진차별, 성평등 직 장문화 마련하라!
하나, 페미니즘 사상검증, 노동자 권리침해 중단하라!
이편(이지원)
여는 민우회 여성노동팀/
포켓볼 수퍼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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