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하반기-함께가는 여성] 민우ing_우리는 함께 한 걸음 더 나아간다
[2020 하반기-함께가는 여성] 민우ing
우리는 함께 한 걸음 더 나아간다
7월 10일, 대법원 인근 도로를 1,500여 명의 여성들이 점거했다.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 사이트 운영자의 미국 송환 불허를 규탄하는 자리였다. 공교롭게도 하루 전, 그리고 당일 새벽에 걸쳐 서울시장의 실종과 사망 소식이 연달아 전해졌다. 쏟아지는 뉴스에 쫓기듯 퇴근했다. 잠들지 못했다. 집회 현장엔 불면의 밤을 함께 한 얼굴이 보였다. 정확하게는 마스크 위로 드러난 눈. 분노와 허탈, 피로감 속에서 ‘법과 국가가 지운 여성이 바로 여기 있다고, 이 전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 고 외치던 눈이 거리를 가득 채웠다.
7월 6일 미국 송환 요청이 최종 불허된 날, 직장 내 성폭력으로 복역 중인 전 충남도지사의 가족 장례식이 있었다. 대통령의 조화도 함께였다. 더 뒤로 가보자. 전 부산시장, 함평군수, 충남도지사의 연이은 직장 내 성희롱, 텔레그램성착취사건, 서지현 검사의 고발로 촉발된 미투운동까지. 여성들은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성차별과 성폭력이 반복되고 용인되어 왔음을 고발하고, 성폭력은 개인의 ‘사건’이 아닌 구조의 문제라고 이야기했다. 여성에게 국가란 무엇인지, 국가·사법정의에 여성의 자리가 있는지 질문했다. 돌아온 답은? 없었다.
시간은 흐른다
“왜 이제 와서?”
“떳떳하면 얼굴 공개해야 하는 거 아니야?”
“순간 실수로 그 사람 전체를 평가하는 건 너무 가혹하잖아.”
“저 정도 흠도 용납할 수 없는 고결한 사람인데”
“고소인이 시장님과 함께 일하는 것이 영광이라고 했다던데? 근데 무슨…”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고소한 후 ‘누군가의 말’과 함께 100일이 지났다. 행위자(들)가 소속된 집권여당은 ‘피해호소인’이라는 모호한 명칭과 함께 구체적인 재발 방지 대책 대신 형식적인 사과에 그쳤다. 정부 역시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 사이 서울시는 장례식을 서울특별시장(葬)으로 강행했다. 전직 비서실장들은 공개적으로 피해자를 비난했다. 누군가는 피해자의 신상정보를 유포하고 ‘정치적 음모’를 주장한다. 익숙한 행태다. 행위자의 사망으로 법적 처벌은 불가능하지만, 수사를 통해 사건의 진실은 규명할 수 있다. 경찰과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를 주시하는 이유다.
‘일부’ 조직의 ‘사건’이 아니다
직장 내 성폭력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지 않는다. 조직문화의 연장선이다. 상급자의 기분을 살피고 담배, 속옷 체크가 여성비서의 주요 업무가 될 때, 성폭력은 쉽게 ‘허용’된다. ‘일부’ 조직의 문제가 아니다. 사건은 계속되었고, 그 중 일부만 피해자의 선의와 용기로 ‘사건화’되었을 뿐이다. 피해자의 신상(얼굴) 공개여부, 주고받았던 문자 이모티콘, 성폭력 전 후 행동 등으로 사건의 ‘진실성’을 판단하는 건 구실일 뿐이다. 전 충남도지사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인 김지은씨는 얼굴과 실명을 공개했다. 그 이후 벌어진 일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서 배우 김혜수는 외환위기를 앞두고 팀원들에게 “정신 차리자. 지금부터 우리가 시스템이야.”라고 말한다. 시스템 대신 ‘답’이라는 단어를 한번 넣어보자. “지금부터 우리가 답이야.”
우리가 답이 될 때: 서울시에 인권을, 여성노동자에게 평등을
민우회를 포함한 8개1 여성단체들은 지난 7월 기자회견을 열어 “서울시에 인권을! 여성노동자에게 평등을!”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국가인권위원회의의 엄중한 조사를 촉구했다. 이어 10월 15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서울시장 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 출범 기자회견이 있었다. 여성, 노동, 인권, 환경, 정치 등 290여개의 시민단체가 모여, 정부와 서울시의 책임 있는 대응을 촉구하고, 피해자의 일상복귀, 공공기관 내 성차별적 조직문화와 성폭력 재발발지 대책마련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공동행동은 선출직 공무원에 의한 성폭력이 중단될 수 있도록, ‘성평등 없는 민주주의는 더 이상 안 된다’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모아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대응하고자 한다. 그 첫 번째로 11월 세계여성폭력주간에 맞춰 피해자를 지지하고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해결을 촉구하는 ‘천만시민연대’(가)를 모집한다. 1,000원 이상 후원, 성평등한 민주주의를 위한 일상 실천 약속에 동의하면 누구나 참여가능하다.
다시 쓰는 정의로움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기사에 달린 댓글을 기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는) 정의로웠다.’ 틀렸다. 그 문장은 다시 쓰여 져야 한다. “그래서 피해자(들)는 정의롭다.” 성폭력 피해 상담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정의로움은 한 사람의 몫이 아니라는 것이다.
“(신고한 건) 화가 나서도 있지만, 다음 피해자가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 컸어요.”
“처벌받으면 좋겠지만, 못 받아도 경고 정도는 되겠죠. 이런 행동하면 최소한 조사는 받게 된다는 걸 알면 조금 다르지 않을까요?”
“어쩌다보니 여기까지 왔어요. 신고했다니까, 다들 저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더라고요. 그래서 ‘아 내가 정말 잘 했구나. 잘했다’ 했어요. 다음 사람은 덜 이상해 보일거니까.”
만약 정의로움을 재정의 할 수 있다면, 다음 사람을 위해 ‘어쩌다보니’ 첫사람이 되는 것이 아닐까. 11월 ‘천만시민연대(가)’에 ‘어쩌다보니’ 참여할 당신이 바로 그 첫사람이다.
1)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10월 15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진행된 ‘서울시장 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 출범 기자회견
눈사람(최원진)
❚여는 민우회 성폭력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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