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1*12월호 [민우역사기행]기억하십니까?1999년, 나 여기 캠페인을!!!
◎ 연재기획 _ 민우역사기행
① 1997 민우회와 돌꽃, 지하철을 건들다
② 1988 직장내 폭력 추방운동
③ 성희롱 소송, 그 역사적 장정에 함께 하다
④ 희망선언, 여성의 노동할 권리를‘다시’외치다
⑤ 기억하십니까? 1999년 나여기 캠페인을!!!
기억하십니까?
1999년, 나 여기 캠페인을!!!
정은숙 ●
민우회는 여성들의 경험과 요구를 반영한 다양한 생활 속의 여성운동과제를 개발하고 언어화하기 위한 시도와 더불어, 함께하는 여성운동, 생활 속의 여성운동, 참여하는 여성운동의 확산을 위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삶의 현장성을 담아내기 위한 활동을 위해 노력해왔다.
이런 활동을 기반으로 나 여기(나의여성차별드러내기∙21세기평등세우기)캠페인은 1999년 한 해 동안 20세기가 가기 전에 꼭 없어져야 하는 수많은 여성차별들을 드러내고 없애 보자는 취지로 기획되었고 , 여성들의 일상적 체험으로부터 출발하였다. 1999년 당시 여성들의 차별의 체험과 배제, 소외, 억압 들은 여성운동가나 학자들에 의해서 주장되고 연구되고 있었다. 이에 여성들 ‘개인’이 직접적, 간접적으로 ‘생활’속에서 ‘경험’했던 그리고 ‘지금’도 경험하고 있는 성차별 이야기들을 듣고자 하였고, 그 목소리를 듣는 것에서부터 나 여기 운동은 시작되었다. 나 여기 캠페인은 민우회 회원들이 주체가 되어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적극적 참여 속에서 보다 풍부하게 진행되었고, 여성들이 독립된 개인으로서 자신들의 차별체험을 스스로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 나여기, 일상 속 여성들의 차별 경험을 스스로 드러내자!
나 여기 캠페인은 차별 드러내기, 차별 버리기, 평등 말하기, 평등세우기 등 전체 4단계의 과정으로 진행되었다. 첫 번째, 차별 드러내기는 ‘나 여기수첩’을 제작∙배포, 공간별(가정, 학교, 직장, 미디어, 관공서 등)로 직간접 차별사례들을 자신의 언어로 생생하고 자유롭게 기록하게 하였고, 전국적으로 2,000여건의 10대~50대 여성들의 차별사례들이 접수되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생활속 의식, 관습, 문화의 차별의 이야기들이 너무도 생생하게 전달되었고, 나 여기수첩 기록 과정자체가 여성들의 차별체감을 높이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사원 모집공고를 내면서 직장상사는 이렇게 지시했다. ‘공식적인 모집은 남자, 여자 뽑는 것으로 내고, 사원은 남자를 뽑도록 해. 그래야 오래 진득하게 있지. 여자는 조금 있다 나가고, 결혼하고”
“여성운전자의 실수로 사소한 접촉사고가 있었다. 순간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욕설들, ‘기집년이 아침부터 왜 지랄하고 쏘다녀 재수없게. 운전면허증을 빼앗아야 해!’ 그런데 많은 남자들이 욕한 그 여성은 40대쯤으로 낡은 티코에 납품할 물건을 싣고 가던 중이었다.”
“아버지는 몇년만에 처음 저녁식사로 밥을 볶고는 자랑을 하셨다. 과연 밥은 여자만 해야 하는 것인가?”
“선생님 왈, ‘이번 학생들이 선택한 교복은 너무 활동적이고 여성스럽지 못한 것 같아요. 자고로 여중생은 적당히 몸에 붙고 얌전한 치마를 입어야 교실에서 뛰지도 않고 말썽도 안 부리는데 말이에요.”
-나 여기수첩 차별사례 중에서 (1999)
나 여기수첩을 통해 드러난 내용들은 성차별이 공사 영역 모두에서 일상적인 행위, 관습, 언어, 문화, 의식으로 아직도 생생하게 뿌리 깊게 현존하고 있으며, 일상적으로 겪는 성차별은 연령별, 생애주기별 로 달리 경험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또한 가부장적 성별분업 관행과 의식, 권위주의 등의 요소로 인해, 여성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음을 잘 드러내주었다. 이는 여성운동은 여성들의 생활 속의 경험에 천착하고, 관행, 의식, 문화, 언어상의 문제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실천해야한다는 방향성을 제시해 주었고, 일상생활 속의 성 평등은 여성과 남성 모두가 함께 그 대상이며, 주체가 되어야 함을 알려주는 계기가 되었다.
생생하게 드러난 2,000여건의 여성차별사례 분류 및 분석을 통해 20세기 우리사회 성차별 11가지를 선정하고,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언론의 관심은 극대화되었고 사회적으로 이슈화하는데 성공하였다. 1999년 당시 선정된 성차별의 유형과 순위는 다음과 같다.
전체 순위별 성차별
1위 명절, 제사상의 성차별 “명절, 여자에겐 중노동, 남자에겐 쉬는 날”
2위 양육상의 성차별 “아들 하나 열 딸 안 부럽다”
3위 학교, 직장, 공공장소에서의 성희롱 “여자의 NO는 YES”
4위 도로상의 성차별 “집에서 애나 보지, 여자가 웬 운전?”
5위 수업내용상의 성차별 “여자가 공부는 뭐하러 해? 시집만 잘 가면 되지”
6위 커피, 카피, 잔심부름 “미스김, 커피 한잔”
7위 모집과 채용상의 성차별 “이왕이면 날씬하고 어려야”
8위 선정적 광고 “벗길수록 잘 팔린다”
9위 생활 관습상의 금기와 터부“여자가 아침부터 재수없게”
10위 신용상의 성차별 “남편의 보증이 필요해요”
11위 성차별적 민원태도 “아줌마 등본 나왔어요”
두 번째로 진행된 차별버리기는 1999년 7월 대학로에서 축제 형태로 진행, 성평등한 사회 만들기에 남녀 모두의 의식변화, 노력 그리고 참여가 필요함을 알려내는데 주력하였다. 여성들이 생활 속에서 경험한 차별의 내용들을 다양한 전시물, 노래와 춤, 퍼포먼스 등의 공연, 게임, 타임캡슐에 11가지 차별모형 묻기 등 여러 방법으로 나타내며 시민적 공감대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명절에 시댁 현관문을 들어서면서부터 나올 때까지 끊임없이 가사 노동을 하게 된다. 남편과 모든 남자들은 먹고 누워 TV보는 일뿐. 아! 나의 허리여, 물에 불은 손이여!”
“아들과 며느리가 제사를 차릴 상황이 못 될 때, 왜 딸들이 차리면 안 되는 것인가?”
“해마다 명절이면 제사가 끝난 후 나는 친정에 가본 적이 없다. 시누이 남편이나 그 밖의 손님을 맞이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도 자식인데 명절이나 제사 때 친정에 갔으면 좋겠다.”
“내 동생이 장남이라고 나보다 세뱃돈을 더 받았다. 충격!!!”
-나 여기수첩 차별사례 중에서 (1999)
차별 버리기의 일환으로 9월에는 추석을 맞아 차별빈도수가 가장 높았던 ‘명절과 제사상의 성차별 관련하여 [명절과의 평등한 만남- 웃어라, 명절!] 캠페인을 기획, 진행하였다. 이전까지 명절과 제사상의 문제를 여성의 관점에서 전면적으로 제기한 적이 거의 없었는데, 웃어라, 명절! 캠페인을 통해 명절의 문제를 전면화하고 대안을 고민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 수 있었다. 특히 여성뿐만 아니라 30~40대 남성들도 적극적 관심과 반응을 보였으며, 각종 언론에서 쏟아지는 취재요청에 사무실이 마비될 정도였다. 웃어라, 명절! 캠페인은 이후 2004년도까지 민우회의 대표적 대중실천 캠페인으로 자리매김하며, 전통과 관습이라는 미명하에 명절에서 겪는 억울함과 고통을 속내로 감춰야 했던 여성들 과 남성들에게 그들의 경험과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시대적 전환점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세 번째 단계인 평등말하기는 10월에 개최된 문화마당 [여성파워, 21세기 평등을 열어라]로서, 여성들 스스로가 21세기 대안적 삶을 말하는 자리였다. 마지막으로 12월에는 일년 간의 나 여기 캠페인을 정리하고 전문가들의 정리와 대안 모색을 시도한 “나 여기, 우리여기, 평등세상으로” 자료집을 발간, 지속적으로 성평등 사회를 향한 실천 활동들을 계획하는 등 우리사회에 평등을 굳건히 세울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 나여기, 우리여기, 평등세상으로!
나 여기 캠페인은 여성대중이 참여하는 여성운동의 대중실천프로그램의 모델로, 여성들이 겪는 생활 속의 차별들을 사회적으로 이슈화하고, 언론의 관심과 대중의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성평등의식 향상 과 확산의 계기를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뿐만 아니라 나 여기가 우리 여기로, 그리고 평등한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생활, 문화, 의식의 변화에 대한 노력, 세대별, 성별로 다양한 접근방식의 필요성, 지속적인 프로그램개발 등의 운동적 과제도 남겨주었다. 이러한 1999년 나 여기 캠페인의 경험은 이 후 성평등한 기업문화 만들기-회식문화 바꾸기 캠페인(2002년), 가족차별드러내기∙실천적 대안 찾기 캠페인(2005년), 평등한 호칭문화 만들기-호락호락(호樂호樂) 캠페인(2006~2007년) 등, 대중적 여성주의 운동을 실천하는 데 소중한 기반이 되었다. 1999년 나여기캠페인을 통해 드러내고 버리고자 했던 그 수많은 성차별들, 8년이 지난 2007년 12월 현재, 모두 사라졌는가? 물론 아니다. 다른 형태로 옷 만 바꿔 입고 여전히 우리사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렇기에 여성들의 다양한 경험들로부터 시작 되는 여성운동은 여전히 중요하다. 보다 대중적이고 긍정적인 방식으로 구체적인 삶에서의 문제의식을 끄집어내어 그것을 언어화 해가는 작업들을 활성화 하고, 나아가 여성들의 삶에서의 일상적인 문제의식, 경험, 해답들을 스스로 찾아갈 수 있도록 활동의 장을 다양화해야 할 것이다. 보다 많은 여성 들이 자신의 삶과 밀착한 공간에서의 실제 경험들을 드러내고, 그 문제들을 조직화하고 해결해나가는 과정에 대한 대안적 실천의 내용들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정은숙 ● 한국여성민우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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