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2월호 [민우칼럼 창] 생활 속 실천, 아들에게 집안일 시키기!_박어진
[민 우 칼 럼 창]
생활 속 실천,
아들에게 집안일 시키기!
박어진 ●
작년 고3이던 아들에게 한 해 동안 설거지 면제의 특전을 부여 했었다. 초딩 시절부터 일요일 저녁 설거지 당번으로 활약해 온 아들. 지금 녀석은 재수학원을 물색 중이다. 문제는 재수생에게도 설거지 면제 특전을 계속 주어야 할지 여부다. 가족회의의 의제로 올려야 할 모양. 당사자는 재수생 신분의 사회적, 정서적 어려움을 호소하며 설거지 면제를 읍소한다. 글쎄, 재수생만 인생 살기 어려운 건 아니잖아? 아들만 빼고는 모두들 냉정하다. 그래도 생모인 나는 대학 입학의 중압감을 이해하는 입장. 아들의 설거지 면제 쪽으로 한 표 던질 심산이다. 아들의 다섯 살 손위 누나는 일요일 저녁 설거지를 면제 하는 대신, 필요하다고 여겨질 때 부정기적으로 하는 설거지라는 대안을 제시한다. 아들이 집안일을 나 몰라라 한다고 평소 생각해 온 내 남편, 설거지 위에 빨래 개키기까지 얹어 가사노동 참여율을 높여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재수학원 개강 전까지 콩다방, 별다방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학원비 일부를 부담해야 된다고 볼멘소리도 한다. 종합적으로 비우호적 분위기에 아들은 섭섭한 눈치.
학교 교과 과목에 기술과 통합된 가정시간이 분명 들어있는데도 아들은 가정시간에 요리를 별로 배운 게 없다고 한다. 시설이나 재료준비 등 번거로움을 이유로 학교 당국도 음식 만들기를 기피해온 모양이다. 누나가 부엌에서 때때로 요리 강습을 시켜주지만 집중도가 높지 않고 열의가 부족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요즘 요리 잘하는 남자가 트렌드라는 힌트를 줘도 동기부여가 안 되는 모양이다. 그러다 보니 할 줄 아는 거라곤 라면 끓이기와 씨리얼 만들어먹기 정도. 바느질도 분명 배웠다는데 교복 단추가 떨어지면 엄마에게 기대려고 애교를 부린다. 고3 때는 왠지 아들이 불쌍해 보여 두말없이 단추를 달아 주었지만 졸업만 하면 어림없다고 속으로 굳은 결심을 한 나다. 녀석은 주민등록증까지 발급받은 어엿한 사회인 아닌가?
엄마의 왕자로 떠받들려 키워진 남편들 때문에 이 땅의 딸들은 참 많이도 분통이 터졌다. 큰 인물로 키운답시고 아들에게 부엌 싱크대에 손 담그지 못하게 한 엄마들. 그 왕자들이 한∙미관계와 중동 평화, 그리고 지구 온난화 방지에 기여했는지 여부는 모르겠다. 다만 왕자가 자라서 한 여자의 남편이 되었을 때 그가 세탁기에 양말을 제대로 뒤집어 넣기나 할까? 또 면도 후 세면대 주위에 널린 면도의 흔적들을 제대로 처리하기나 할까? 아무리 말끔하게 정리정돈을 해놓아도 일주일이면 방을 만신창이로 만들어 놓는, 어지르기 천재 아들을 둔 한 친구는 병역비리를 저질러서라도 아들을 현역 입대 시키고 싶을 지경이라고 한다.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정돈되어 있는 군대 내무반 풍경이 그리도 좋아 보인다나. 그 문제적 아들에게도 여자 친구가 생긴 모양. 밤마다 잔뜩 어질러진 방에서 한 시간씩 소곤대며 통화하는 아들을 보면 그 여자 친구의 앞날이 심히 걱정이라는 그녀. 우리 모두 각자 아들들의 비리를 생각하느라 맘 놓고 웃을 수 없는 처지다.
민우회가 내건 생활 속 집중 실천 주제들을 하나 하나 읽어본다. 11가지 ‘기꺼이 불편해지기’캠페인 속엔 ‘자기 컵 들고 다니기’나 ‘재래시장 이용하기’같이 손쉽고 즐거운 실천 방안들이 들어있어 해 볼만 하다. ‘열심히 듣고 나중에 말하기’같은 주제 앞엔 가슴이 뜨끔하다. 평소 왕수다인 처지라 말하는 만큼 열심히 들었는지 차마 대답할 수 없다. ‘나이, 학력, 결혼 여부, 출신지역 묻지않기’는 평등감수성을 높이려는 취지.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기꺼이 불편해지는’실천과 함께 ‘아들에게 집안일 시키기’는 어떨까? 아들 키우는 엄마들의 핵심 실천과제로서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다. 굳이 어렵게 말하자면 ‘가사노동 민감성’높이기가 목표일 것. 이 땅의 여성 인권과 민주주의 신장을 위해 여성인 엄마들이 나서야 한다. 집이 여성의 유일한 직장이던 시대, 여성들은 가사노동을 독점했다. 집안일과 바깥일을 둘 다 해야 하는 시대, 여성들은 가사노동 독점권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남편감들은 누군가의 아들일 터. 일단 내 아들부터 집안일을 배우게 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방 치우기나 빨래 털어 널기 요령부터 가르쳐야 한다. 엄마뿐 아니라 아빠가 집안일 가르치기에 앞장서면 학습 효과가 상승할 것이다. 평소 설거지나 청소하는 아빠를 보고 자란 아들들이 집안일에 친화적일 수밖에 없다.
주말 설거지를 둘러싸고 투닥 거리던 남편과 아들이 나란히 거실에 앉아 빨래를 개키기 시작한다. 누나와 엄마의 스타킹과 속내의까지 착착 각을 세워 접은 뒤 각자 방 서랍까지 배달하는 것으로 빨래 개키기는 끝난다. 앞으로도 집안일 훈련은 쭈욱 계속될 것이다. 내 며느리가 국 끓이고 생선 굽고 나물 무치는 멀티태스킹의 현장에서 내 아들이 숟가락 하나 놓지 않는 남편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언젠가 ‘아들 잘 키워 보내주셔서 감사해요.’뭐 이런 공치사를 며느리로부터 받고 싶다. 그 날이 오면, ‘웃어라, 명절’캠페인은 역사적 조크가 되고 말겠지.
박어진 ● 올해부터 이사로 민우회와 함께 하십니다. ^^
한겨레신문에서 칼럼<2050여성살이>에 연재하고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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