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5*6월호 [기획_'중년남성']'명랑공존'을 위한 중년아저씨 최소 매뉴얼
기획_중년남성
‘명랑공존’을 위한 중년아저씨 최소 매뉴얼
이오
중년남성에 대해 그동안 느낀 것들을 말해보라 하니
·내가 올린 서류를 마구 흔들고 큰소리를 치면서 “말하지 말고 그냥 내 말 듣기만 하라”고 그러더라. 동료 교수가 아니라 말단 직원한테 명령하는 말투.
·지하철에서 졸고 있는데 아저씨가 구둣발로 ‘조인트’를 까서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났더니 “니는 에미 에비도 없냐” 그러더라.
·거래처 □□이사가 지난번 회식자리에서 내 손목을 잡고 팔을 쓰다듬고 그러길래 순간적으로 어느 책에선가 읽은 게 떠올라서 “그냥 이 손목 잘라드릴까요?” 그랬더니 되레 화를 내면서 “딸 같아서…”운운하며 섭섭하다 그러더라.
·남편과 부부 동반 모임에 갔는데, 남편이 포도를 먹고 나서 씨를 테이블에 마구 탁탁 뱉아서 기절할 뻔 했다. 식은땀을 흘리면서 치우고 옆구리를 찌르고 째려보고 그래도 눈치를 못채더라.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새는 법인데 내 책임도 크다. 게다가 종업원한테 대뜸 반말을 하는 거다. 온갖 점잖은 시늉은 다 내던 사람이 그러니까 사기당한 기분이었다.
·비즈니스 관계로 알게 된 유부남인데, 내가 이혼했단 얘길 어디서 들었는지 저녁마다 전화를 걸고 끈적거리더라. 열받아서 “저도 보는 눈은 있거든요”그랬다.
·일 관계로 아는 조선족 출신의 남성이 양식있고 괜찮은 분이어서 무슨 얘기 끝에 상사 앞에서 칭찬을 했더니, 상사가 정색하며 “그건 □□씨 미모에 반해서 그 놈이 그러는 거다, 조선족 출신이 뭐 별 수 있겠나. 당신이 사람보는 눈이 없는 거다” 그랬다. 박사까지 돼갖고 왜 그렇게 배타적인지. 근데 자기보다 지위가 높거나 학벌이 뛰어난 사람한테는 할 말도 잘 못한다.
·고교 동창회에서 친구놈한테 “니네 여걸 대표님은 요즘 잘 지내셔?” 물었더니 “한번 따먹고 싶다”고 천연덕스레 답하더라. (중년남성이 동년배의 친구를 한심해 하며)
·술집에서 뒷자리에 앉은 아저씨들이 어찌나 욕설과 음담패설을 심하게 하는지 스트레스가 팍팍 쌓였다.
·자기 아내의 후배한테 초면에 왜 설교는 늘어놓고 난리인지. 결혼안하고 사는 내가 문제투성이 인간인 양 온갖 훈계를 늘어놓는 자기 남편을 안말리고 옆에서 웃기만 하던 그 선배언니도 꼴보기 싫어져.
·지하철에서 중년 아저씨한테 봉변도 당해보고 지하도에서도 느닷없는 폭력을 당해봤는데 그 때마다 도와준 건 아줌마나 대학생 같은 청년이다. 젤 방관하는 건 중년아저씨들인데, 젊은 여자들한테 소리는 잘 지르면서 불의는 너무 잘 참더라.
·외국에서 살다 왔다고 성적으로도 자유분방할 거라고 지레짐작해서 불쾌하게 굴길래 자릴 박차고 나왔다.
써놓고 보니 숨차다. 중년남성에 대해 그동안 느낀 것들을 말해보랬더니 나오는 내용이 죄다 “이래서 싫고 저래서 재수없다”는 거다. 소통불능, 언어폭력, 권위주의적인 태도, 고래심줄 편견, 공공장소 에티켓 부족, 반말, 대놓고 훈계하기,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여성이라면 동등한 인격체가 아니라 ‘여자’로만 보기(‘딸같아서’ 성희롱하고, 여자상사에 대해선 뒷담화 성폭력 등)… 반면, 질문을 던지면서 내심 기대했던 긍정적인 답변은 거의 없었다. 예를 들면 ‘중후하고 지혜로운’ 중년아저씨같은… 꿈이 너무 컸나보다. 다만, 저 위에 나열한 사례들에 하나도 안 걸리는 아저씨가 있다면 최소한 ‘찌질한’ 중년남성이란 불명예는 안 뒤집어써도 되고, 그만큼 ‘중년훈남’의 길도 가까워진다는 현실은 일러두고 싶다. 이를 바꿔 말하면 “타인에 대한 약간의 배려”, “큰소리 내지 않고 합리적으로 소통하기”, “남의 말을 귀기울여 듣기”, “나이를 앞세운 횡포부리지 않기”, “여자를 동등한 인격으로 대우하기” 등등의 매우 상식적인 지침이 대한민국 남성들에게는 무엇보다 어려운 ‘임무수행’이 될 수도 있겠다는 것이다.
어떤 남성은 “무한경쟁의 원리 속에서 위계서열구조와 속도전에 적응하면서 온갖 스트레스는 다 받은 채 ‘처자식을 먹여 살리느라’ 문화적·감정적 문맹이 돼버렸는데 이런 현실을 모르는 여자들은 욕만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도 일리는 있다. 그런데 이런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남자들은 힘들다.”는 쪽으로 몰고 가기만 하면 ‘공존하는 삶’에서 점점 멀어진다. 지구와 국가를 논하며 의기양양해 하는 한편으로 “나는 돈 버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여자와 아이들 앞에서 쓸쓸한 표정을 짓는 이율배반적인 아저씨들. “니들이 남자들의 삶을 알아?”식의 태도를 바꾸지 않은 채, 앞서 언급한 ‘상식적인’ 덕목들을 사소한 것으로 밀어버리는 이런 아저씨들이 결국 자신의 소외를 부르지 않을까. 더구나 동년배의 남성써클이라는 우물 안에서 암묵적으로 합의되고 굳어진 문화가 다른 시공간에선 전혀 통하지 않을 뿐 더러 환멸만 초래할 뿐이란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이에 더해 ‘문화적 감정적 문맹’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으로 소통하는 길 밖에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다.
중년남성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범주를 정하기에는 중년남성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면면이 너무 다양한데도 왜 싸잡아 욕을 먹어야 하느냐고 반발하기 전에, 우리 사회의 중년아저씨 문화라는 ‘매트릭스’에 대해 한번 성찰해보면 좋겠다. 중년 아줌마문화도 할 말 많은데 왜 아저씨만 걸고 넘어지느냐며 형평성을 문제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대해선 이렇게 답할 수 있겠다. 그동안 중년 아줌마 문화의 장단점은 도마 위에 많이 오르내렸지만 아저씨문화는 공론화된 적이 없다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런 문화적·감정적 문맹 아저씨들 중 많은 숫자가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으며, 약자들은 상처받는다고 말이다.
이오 ● 전혀 지혜롭거나 중후하지 않은 중년여성으로서
중년남성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게 솔직히 ‘쪽팔리기’도 했다.
하지만 중년아저씨들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중년남성 문화에 대해
한번쯤 얘기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무릅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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