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5*6월호 [기획_'중년남성']경계 밖과 안의 그들
기획_중년남성
가깝고도 먼 그들의 이름, ‘중년남성’
이 사회에서 살고 있는 여성이라면, 길거리나 공공장소에서 어떤 ‘아저씨’를 마음속 깊이 미워해(!) 본 적이 적어도 한 번은 있을 것이다. 가볍게는 공공 매너 위반에서부터 심하게는 신변의 위협을 줄 만큼의 ‘봉변’까지. ‘공공장소에서 불쾌했던 경험’이라는 주제에서 ‘아저씨’들의 활약은 대단하다.
그러나 가능한 마주하고 싶지 않은 '그런 아저씨'가, 내 지인, 내 가족으로 나의 관계망 안에 들어와 있음을 문득(소스라치며) 발견하게 될 때가 있다. 설사 내 주변엔 매너 있고 지혜롭고 깔끔한 '완소중년'만 존재한다 해도, 앞서 말한 '아저씨'들 역시 우리사회의 구성원으로 우리는 (어쨌든지간에) 함께 살아가고 있다.
고민은 두 가지였다. ‘왜 그렇게 행동할까?’와 ‘(어떻게) 함께 살아야 할까?’ 답을 내리기는 어려운 문제였지만, 이번 기획을 통해 그 실마리라도 발견할 수 있다면 좋겠다.
경계 밖과 안의 그들
꼭지
# 어느 버스 안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 처음으로 혼자 버스를 타서이기도 하고 집으로 되돌아오는 길이 마냥 멀게 만 느껴져서인지 버스 안의 노선표를 외우듯이 쳐다보며 버스좌석 손잡이를 양팔로 꽉 잡고 서 있었다. 그런데 좌석에 앉아 있던 사람이 갑자기 내 팔꿈치부터 손등까지 쓰~윽 쓰다듬으면서 내 손을 조몰락거리며 말했다. “어디까지 가? 힘들지? 여기에 앉아.” 그러면서 자신의 허벅지를 툭툭 두드리고 있었다. 너무 놀라서 “아니에요.”하며 뒤로 물러서는데, 내 허리를 감싸 당기며 다시 오른팔을 쓰다듬으며 “괜찮아.” 그러는 것이다. 내 팔을 쓰다듬는 그 손이 만화에 나오는 악당의 손아귀 인양 힘겹게 뿌리치며 도망치듯 버스에서 내려 낯선 동네에서 한참을 헤매던 기억이 난다. 버스 안의 그 묵직한 손은 50대 초반에 이마가 꽤 넓었던 아저씨로 기억한다. 이전까지 나와는 성별이 다른 존재가 위협적일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하였으나 처음으로 남성, 특히 나이가 많은 어른 남성을 두려움과 중압감을 주는 존재로 인식하는 최초의 사건이었다. ‘중년 남성’의 존재와 이미지가 나에게 최초로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 어느 바닷가
친구들과 서해 바닷가 민박집에서 20대의 마지막 여름휴가를 보내고 돌아오는 날, 주차했던 차를 빼내야 하는데, 봉고차 한 대가 길을 애매하게 막고 있었다. 봉고차 주인을 수색하여 차를 좀 빼달라고 요청하였다. 차 주인은 봉고차 근처의 컨테이너 박스 숙소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우리를 향해, ‘운전도 못하는 것들이 차는 왜 가지고 다녀’, ‘그것도 왜 못해’, ‘여자들이 무슨 운전을 한다고….여자들이란.’ 7월의 햇살보다도 강렬하게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다. 하얀 러닝과 꽃무늬 사각팬티만을 입고, 한낮의 반주로 붉어져 터질 것처럼 번들번들하던 얼굴로 우람한 작태를 자랑하며 길 한 복판에 거만하게 서 있던 40대 초·중반의 그 ‘아저씨’. 차를 빼 주지도 않으면서 우리를 향해 막무가내로 처음부터 끝까지 고성에, 반말 짓이다. 너무 화가 나서 ‘반말하지 마세요!’ 했더니 옳다구나, 대뜸 ‘야! 너 몇 살이야?, 싸가지 없는 년’하며 들어 올린 한 쪽 팔의 손은 손이 아니라 팔에 걸친 삽 같았다. 순간 그늘이 드리워지고, 덥디 덥던 그 찰나에 써늘한 기운을 느끼며 아까 보다 조금 낮아진 톤으로 ‘먹을 만큼 먹었어요! 왜요? 욕하지 말라고요!’ 라며 햇볕에 그을리고 있는 그 손을 째려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 공간을 벗어나자 온몸이 후들후들 떨렸고 ‘내가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 자문을 했을 때, ‘너무 지겨워서’라는 울림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서른이 되는 것이 인생의 신작로를 어느 정도는 닦아 놓아야 할 것 같은,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젊은 여자 아이’가 이제는 아니어도 된다는 그 안도감과 시원함이 가져다 준 자신감이라면 좀 설명이 될까? 20대를 살아가면서 ‘젊은 여자 아이’이기에 겪었던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의 반말과 무례함. 그런 일상의 반복된 경험 속에서 ‘이젠 좀 됐다고. 더 이상은 듣기 싫다’고 하는 소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이것은 중년과의 한판 승부를 벌인 최초의 사건으로 나에게는 기록되었다.
# 다가 온 어느 시간에
IMF당시 명예퇴직으로 안정적인 직장을 박차고 개인 사업을 시작한 오빠는 가족의 근심을 ‘걱정하지 마라, 잘되고 있다’는 말로 일축시켰고, 명색이 장남인 자신을, 누구도 부여하지 않았지만 이미 주어진 집안의 가장인 자신을 믿지 못하는 우리를 책망하곤 하였다. 그렇게 몇 해가 흐른 어느 날 집안은 휘청거리며 꼬꾸라졌다. 집안의 재산을 탕진한 자신의 무능력함과 그로 인해 장남의 역할을 해내지 못하였다는 자신에 대한 책망과 ‘못남’에 대해서 오빠는 소주잔을 들이키며 딱 한마디 했다. ‘미안하다고’ 소주잔을 들이키는 오빠의 손은 내 손만큼이나 작아 보였다.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검게 그을린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떠받들려 살아온 손처럼 하얗지도 않은 누런 손,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닳아진 손. 모나지도 매끄럽지도 않은 뭉툭한 손에 가슴이 먹먹하였다.
이제껏 놓지 않았던 가장의 권위대신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며 꾸밈도 과장도 없이 아픈 속내를 들어낸 오빠. 이전에 내가 경험한 중년 남성과는 전혀 다른 또 다른 ‘중년 남성’을 최초로 만난 날로 기억된다.
# 내 관계망 속의 ‘중년남성’
몇 해 전 상담을 받았던 사건 중에 오빠가 근무했던 사업장이 있었다. 직장내 폭력 상담이었는데, 상담을 받는 순간부터 오빠가 그 사건에 연루되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까지 물 한 모금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밤잠을 설친 추적조사 끝에 오빠가 그 사건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고 나서 처음으로 두 손 모아 말했다. ‘하느님!, 너무 감사합니다.’라고.
나의 일상에 촘촘히 얽혀 있고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가족(친인척) 중에 누구이거나, 친한 선배, 동년배 친구가 나의 불쾌한 경험 속에 있는 ‘중년 남성’이 될 수 있는/되어가는/되어버린 현실과 마주하였을 때 느끼는 당혹감은 공포에 가까울 정도다. 내게는 익숙하고 친밀한 그들이 밖에서는 누군가에게 내가 받았던 것과 같은 불편함을 주는 존재라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하고 또 나는 그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가에 대해 나는 아직 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때로 비인간적인 야근과 자격증 시험 준비로 인해 회식자리를 안 가는 오빠의 모습에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끼고, 술 대신 마라톤에 취미를 가져 술자리에는 얼씬도 안하는 오빠의 생활패턴에 감사해한다. 내가 보기에 이미 어느 자리이건, 어느 순간이건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는 존재가 되어버린 내 가족의 ‘중년 남성’들이 문제를 발생시킬 수도 있는 상황들이 최소화 되는 것에 대해서 그나마 안도감을 느낀다.
나에게 ‘중년남성’은 언제나 위협적이고, 물리력을 행사하던 존재,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존재로, 그들은 늘 나의 ‘경계 밖’의 존재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내 ‘안’으로 중년남성인 가족들이 들어오면서 안과 밖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한편에서는 나의 중년남성 가족이 사회공동체의 누군가에게 불쾌함을 주는 경계 밖의 사람이 되지는 않을는지 늘 불안해하고, 한편에서는 흔들림 없이 거만하였던 그들의 ‘나약함’과 ‘힘겨움’의 모습이 나를 먹먹하게 만들곤 한다.
모호해진 안과 밖의 경계에서 아직 나는 얼마큼 잘 소통하며 잘 지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실 정답이 없을 것 같기도 하다. 때로는 적극적으로 토론을 하거나, 싸우거나, 어쩔 때는 아연 질색할 정도의 말을 듣고 절망하여 대화를 순간 포기할 수도 있겠고, 때로는 소원해질 수도 있겠고. 그래도 중요한 것은 함께 잘 살기 위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싶다.
꼭지 ● 부끄러운 기억들을 지우려 걷는 시간이
짧아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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