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5*6월호 [민우ing]가족관계등록법, 이거 뭥미?
민우ing
가족관계등록법, 이거 뭥미?
(뭥미: “이거 뭐임”의 오타를 가장한 요즘 인터넷 속어)
따우
“2008년 1월 1일부터 호적이 가족관계등록부로 바뀝니다.”
이것은 작년 여름, 대법원이 펴낸 새 신분등록제 홍보책자의 제목이다. 어쩜 제목을 저렇게 잘 지을 수가 있을까. 바로 그렇다. 올해부터 호적이 가족관계등록부로 바뀌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거다. 호적이 ‘그대로’ 가족관계등록부라는 ‘이름으로만’ 바뀌었다는 거. 모든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철 지난 호주제의 망령, 가족관계등록법
호주제는 과연 폐지되었을까 아닐까? 호적은 없어졌을까 아닐까? 정부와 대법원에 따르면 폐지는 폐지다. 기존의 호주제에서는 호적이 호주 아래 가(家) 단위로 편제되어 있었다면 지금은 개인별 신분등록제라고 하니까. 이에 따라 기존의 호적등·초본이 총 다섯 가지 증명서, 즉 기본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혼인관계증명서, 입양관계증명서, 친양자입양관계증명서로 나뉘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뭐가 문제라는 건가. 당신이 만약 ‘(한국국적을 가진) 한국인이면서 초혼인 (그리고 생존해 있는) 이성애 부부와 그들이 낳은 자녀들로 이루어진 핵가족’의 구성원이라면 일단 안심(?)해도 좋다. 그 외에는? 자 우선, 노출을 원하지 않는 가족관계가 드러나거나 반대로 재혼을 해서 아이를 키웠는데도 가족관계증명서에는 자신의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경우들이 있다. 철저히 ‘핏줄’에 따라 가족관계를 정렬했기 때문이다. 또 어떤 입양가족의 경우에는 절차에 따라 아이를 입양했는데 그 아이의 기본증명서에 “기아 발견”이라는 사실이 기재되기도 했고,(이 문제는 상당히 충격적이라 정부와 대법원에서도 바로 대책을 마련했다는데 그 내용이 기가 막히다. ‘기아 발견’을 ‘법 제62조에 의한 작성’으로 바꿔 기재한다는 거다. 발상 한 번 기막히다. 근데 우리가 언제 언 발 녹여 달라고 했지 오줌 눠 달라고 했니?) 한국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배우자의 경우 신분이나 가족관계 증명이 전혀 되지 않아 본의 아니게 ‘유령인간’이 된 사례가 보고되었다.(구체적인 피해사례는 (사)한국여성의전화연합이 지난 3월 25일 주최한 “가족관계등록법 권리침해 실태발표 및 대안모색을 위한 긴급토론회” 자료집 참조)
또, 돌아가신 부모님은 가족관계증명서에 주민등록번호가 기재되지 않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부모님의 사망 사실까지 알 수 있다.
문제의 결과는 다양하지만 원인은 단순하다. 앞서 얘기했듯 기존 ‘호적’을 그대로 ‘가족관계등록부’로 이름만 바꾸었기 때문이다. 현재 증명서는 이 가족관계등록부에서 필요 정보만 추출하는 식인데, 이 시스템을 마련하면서 다양한 변수, 대한민국 인구만큼이나 다양한 가족상황에 대한 고민 없이 일괄적으로 ‘정상가족’만을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로써 형식·제도상의 호주제는 없어졌지만 호주제 폐지의 정신은 빛이 바래버린 것이다.
대법원은 가족관계등록제도가 ‘증명 목적에 따라 다섯 가지 증명서로 개인정보 공개(를) 최소화’했다고 자랑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증명서 하나로 파악할 수 있는 정보는 무궁무진(?!)하다. 기억할 것도 볼 것도 많은 세상에서 왜 굳이 남의 정보를 샅샅이 알거나 내 걸 알려줘야 하나. 필요할 때 필요한 정보만을 기재하도록 정보노출 수준을 다양화하는 게 ‘효율’적이다.
기꺼이 불편해지기는 여기서도
어쨌든 이제 증명서는 총 다섯 가지로 늘었다. 덕분에 번거롭고 돈 많이 든다는 이유로 호적이 좋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그러나 한 번 생각해 보자. 나한테 편한 건 남들한테도 편한 거다. 실제로 예전엔 내 주민등록번호와 본적만 알면 누구든 내 호적등·초본을 떼어 모든 인적사항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다. 가족관계증명서만으로는 혼인경력을 알 수 없고 기본증명서만으로는 가족관계를 알 수 없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본인, 배우자, 직계혈족만이 떼어볼 수 있다. 문제 많은 제도이기는 하지만 정보보호 차원에서 진반보(進半步)한 측면은 분명 있는 거다. 호주제가 좋다시던 그분, 이래도 호주제 때가 나았다고 하실지 궁금하다. 잠깐의 불편함, 기꺼이 불편해지기가 정보보호 사회를 앞당긴다는 사실, 잊지 말자.
비용의 문제도 마찬가지. 일부 언론에서는 다섯 가지 증명서를 다 떼면 5천원이 든다, 호주제 때보다 돈이 많이 든다고 불평을 부추기지만, 실제로 우리가 흔히 떼어보는 것은 기본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정도이다. 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입양관계증명서나 친양자관계증명서가 존재하지도 않는다. 해당인이라 하더라도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이를 발급받을 일도 없다. 그러니까 실질적으로 드는 비용은 1~3천원. 그리고 정부와 기업에서 무분별하게 가족관계증명서나 혼인관계증명서를 요구하는 관행이 사라질 경우, 필요한 것은 기본증명서 정도가 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 발급자격과 사유에 여전히 허점은 많다. 예를 들어 자녀가 있는 이혼 당사자의 경우 자녀의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 받음으로써 전 배우자의 주소 등을 파악할 수 있다. 이 경우 원치 않게 자신의 정보가 노출됨으로써 피해를 입을 수 있다. 그뿐 아니다. 자격을 제한한다고 해도 상대적 강자(기업 등)가 요구할 경우 ‘본인’이 증명서를 발급해 ‘갖다 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발급 사유와 자격을 더욱 엄격히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우리의 의식. 다른 사람의 정보를 함부로 묻거나 내 개인정보를 방치하는 행위들, 그래도 좋다는 생각이 화를 키운다. 우선 어디에 필요한지 밝히지도 않은 채 가족관계증명서, 혼인관계증명서 등을 요구하거나 주민등록등본으로 충분한 일에 굳이 가족관계증명서를 달라고 하는 정부와 공·사기업의 관행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우리 자신도 사람을 만나면 호구조사부터 하고 보는 버릇을 재고해보아야 할 것이다.
제도가 아무리 바뀌어도 결국 그것을 운용하는 건 사람이다. 사실 한 사람의 신분을 증명하는 방법을 규정한 법의 이름이 ‘가족관계등록법’이라는 것부터 지독한 아이러니다. 맙소사, ‘가족관계’가 없으면 사회에서 내 존재감은 없다는 거다. 아직 우리 사회가 딱 이 정도 수준이라는 반증. 이 수준을 높이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의식과 실천일 것이다.
따우 ● 오늘은 지면 관계상 필자 소개 대신 가족관계등록법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호주제 폐지하랄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가족관계등록제도도 반대하냐. 이 한치 앞도 못 내다보는 폐미O들아!”라거나 “부작용이 많으니까 지금이라도 호주제를 부활하라!”는 아해들에게 잠깐 강의. 호주제 폐지와 가족관계등록제도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호주제 폐지로 인해 새 신분등록제도가 필요하게 되었고, 그에 따른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 가족관계등록 등에 관한 법률(이하 가족관계등록법)이니까. 그렇지만 가족관계등록부를 명시하고 있는 가족관계등록법은 ‘호주’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다. 호주제 폐지나 입양, 자녀의 성과 본 등에 관한 내용은 개정 가족법(민법) 사항인 거다. 자 그럼 민우회? 호주제 폐지 찬성했다. 현행 가족관계등록법? 찬성한 적 없고 개인별로 편제된 목적별 신분등록제도 주장했다. 가끔은 두 사안을 별개로 볼 줄도 알아야 하는 거다. 우리 그렇게 허투루 운동하는 거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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