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호 [민우역사기행]성평등한 직장문화를 만들기 위한 첫 번째 실천 캠페인
‘회식문화를 바꾸자’
월드컵으로 한국이 들썩이던 2002년, 민우회가 야심차게 준비한 ‘회식문화를 바꾸자’ 캠페인은 (대충 짐작은 하시겠지만) 금주운동이 아니다. 여기서 관심 있게 봐야 할 (핵심)문구는 다름 아닌 ‘성평등한 직장문화를 만들기 위한’이다. 민우회의 ‘회식문화를 바꾸자’ 캠페인이 선풍적인 인기와 관심을 모았던 당시, 적잖은 언론과 사람들은 술을 마시지 말자, 곱게 마시자는 캠페인으로 오인하여 때론 캠페인의 목적과 의도에 대한 긴 설명을 필요로 하기도 했었다.
그러게. 민우회는 왜 이런 캠페인을 했을까.
고용평등상담실을 통해, 다양한 교육에서, 여러 회원들을 만나며 듣게 되는 직장 내의 수많은 성차별의 문제들. 그래서 고민으로, 잡담으로, 수다로 존재하는 직장내 여성 차별의 현실을 좀 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나로부터 이를 바꾸는 실천을 시작하는 계기가 있어야 했다. 그리하여 마련한 것이 ‘성평등한 직장문화를 만들기 위한 실천 캠페인’이다. 지금이야 문화라는 단어가 익숙하고 그 중요성에 대해 공감대 형성도 어느 정도 이루어졌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배치, 승진, 호봉 등 여성들이 직장 내에서 겪게 되는 법·제도적 차별의 문제가 아닌 직장‘문화’에 대한 접근은 새롭고 반짝반짝한 것이었다.
그러나 남성중심적으로 움직이는 직장문화, 차별적인 의식과 관행들을 꼭 짚어 언어로 표현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고 직장에서의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자 시도하는 것도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또한 토론회, 집회, 모니터링이 아닌 ‘캠페인’이라는 방법이 민우회 내에서 그리 익숙한 것은 아니었고 무엇보다 ‘실천’ 캠페인의 컨셉과 기획에 대한 부담은 만만치 않았다.
캠페인은 고용평등상담실로 들어오는 상담내용을 기반으로 몇 가지 주제를 뽑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직장에 다니거나 다녔던 혹은 성평등한 직장문화 만들기에 관심이 있는 회원들로 기획단이 꾸려졌다. 일명 ‘날아라 기획단’. 기획단 뿐만 아니라 민우회 회원들의 능력과 힘은 막강했다. 자신의 경험, 주변 여성들이 직장에서 겪는 다양한 경험들이 쏙쏙 모이기 시작했고 인터넷을 통한 설문조사, 거리캠페인을 통한 시민들의 의견들은 직장문화을 다양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사례들을 살펴본 결과 성희롱, 승진, 인사고과 등 성차별적인 직장문화를 이끌어가는 데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다름 아닌 ‘회식자리’였다. 회식자리에서의 주량이나 버티는 시간이 인화력 또는 능력으로 평가되어 비공식적 인사고과로 이어지기도 했고 2차, 3차의 회식자리로 자주 이용되는 단란주점, 룸싸롱 등은 여성의 참여 자체를 매우 힘들게 할 뿐만 아니라 남성들에게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게 하는 훈련의 장소가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직장내 성희롱이 회식자리에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것은 모두 주지하고 있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이러한 과정 속에서 여성은 점차 배제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 구축되고 결국 남성들만의 잦은 술자리를 통해 비공식적인 부문에서의 친밀감이 형성되는 등 결국 공식적인 부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되고 있다. 물론 폭탄주, 술잔 돌리기 등 술 중심으로 진행되어 술을 거절하기 힘든 분위기는 술이 약한 사람들에게 부담과 공포의 자리이기도 하다.
이에 2002년 3월부터 10월에 걸쳐 20회가 가까운 날아라 기획단의 회의, 남성실천단 회의, 웹 싸이트 제작, 설문조사, 개인/직장/시민단체들의 실천선언 받기, 3번의 거리 캠페인 등이 진행되었다. 반응은 과히 열광적이었다. ‘남성 1000인 실천선언’에는 1114명이, 성평등한 직장문화 만들기 위한 회식문화 바꾸자 캠페인에 20개의 기업, 7개의 단체가 동참하겠다는 선언문에 싸인을 하였다. 40여 곳 이상의 라디오, 신문, 방송 인터뷰와 보도로 이어졌고 남산, 명동, 여의도, 춘천, 원주, 진주에서 열린 거리캠페인에는 사람들이 북적였다.
‘현재 회식문화의 문제점 중 가장 심각한 점’을 질문한 웹싸이트 설문조사에 총 3076명이 응답을 하였고, 1위는 회식자리에서의 여성직원 끼워 앉히기, 술 따르기, 블루스, 음담패설 등 성희롱, 2위는 일방적인 회식약속(날짜, 장소 등), 3위는 폭탄주, 술잔 돌리기 등 술 강요였다. 이는 거리 캠페인에서의 현장 게시판 결과와도 비슷했다.
평소에 인터뷰나 캠페인, 기사 등에서 민우회가 언급되면 심심찮게 항의전화나 메일을 받게 되는데 ‘회식문화를 바꾸자’ 캠페인은 언론 보도 후 지지한다는 전화나 글을 보게 된 보기 드문 일이 있기도 했다. 거리 캠페인에 대한 반응도 좋았고 특히 남성 실천선언 등 남성들의 참여가 돋보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8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현재, 직장 내 회식문화가 조금이나마 변화했다고 믿는다.
그러나 여전히 오늘의 회식자리가 괴롭다면, 혹은 당신의 회사에 변함없이 위계적이고 성차별적인 문화가 팽배하다면, 또는 회식자리에서의 정보공유와 인맥이 인사고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지금 당장 민우회 회원으로 가입하셔서 민우회의 활동에 지지를 보내시길! 민우회가 제안하는 유쾌한 10가지 실천내용을 출력하여 공유하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이임혜경 ●수많은 영감과 애정을 던져주는 그대들,
항상 고마워요.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많이많이.
직장인의 유쾌한 10가지 실천
▶ 회식날짜와 장소는 모두의 일정과 의견을 고려하여 함께 정한다.
▶ 자율적인 회식참여를 보장하고 억지로 술을 권하지도 먹지도 않는다.
▶ 술 따르기, 블루스 강요, 끼워 앉히기 등 성희롱을 하지 않는다.
▶음담패설은 하지도, 재밌는 척 듣지도 않는다.
▶ 고기굽기, 수저놓기, 안주찢기 등 회식자리 도움일은 모두가 함께 한다.
▶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는 단란주점, 룸살롱 등 퇴폐향락업소에 가지 않는다.
▶ 회식자리 성희롱, 폭언, 폭행 등을 문제제기하는 동료의 든든한 지지자가 된다.
▶ 가정과 직장의 양립을 저해하는 잦은 장시간의 회식을 삼간다.
▶‘여자니까’, ‘남자니까’, ‘니가 어리니까’, ‘밥하러 안가?’ 등 권위적이고 성차별적인 발언을 하지 않는다.
▶ 평등한 관계에서 소통하며 팀웍을 다지는 회식문화를 만들어간다.
상사의 5가지 실천
▶ 회식약속을 일방적으로 통보하지 않는다.
▶ 단란주점이나 룸싸롱을 가자고 하는 사람들에게 ‘자네, 아직도 그런 데 가나?’라고 한마디 한다.
▶ 술 따르기, 끼워 앉히기, 블루스 등을 여직원에게 강요하는 것이 상사를 위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직원들에게 단호하게 원하지 않음을 밝힌다.
▶ 회식자리에서 나눈 이야기로 직원들을 판단하여 인사고과에 반영하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 회식참여를 강요하거나 술로 충성도를 확인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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