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6월호 [나의 삶, 나의 이야기] 날아라, 갈치~! 초보아빠의 육아휴직 이야기
[나의 삶, 나의 이야기] 날아라, 갈치~! - 초보아빠의 육아휴직 이야기
박성우 ●
갈치가 막 잠이 들었습니다. 갈치가 이렇게 낮잠을 자주는 2시간이, 둘이서 함께 하는 하루 중 유일한 제 자유시간입니다. 보석 같은 시간이죠. 간혹 과일장수 트럭의 요란스런 확성기 소리에 갈치가 중간에 깨기라도 하면... 정말이지 그 속상함은 아... 생각만 해도 손발이 오그라듭니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아빠!” / “엄마가 싫어, 아빠가 싫어?” “아빠!”
갈치는, 태어난 지 만 19개월이 조금 더 지난 제 딸입니다. 본명은 “가윤”인데 저희는 별칭인 “갈치”라고 부릅니다. 두발로 걷기 시작한지는 이제 갓 5개월이 넘었고 밥은 숟가락대신 젓가락으로 줘야만 잘 먹고, 얼굴은 제 손바닥만 하고 키는 겨우 80센티 정도 되는, 정말 귀엽고 예쁜... 참 작은 사람입니다.
갈치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불어 같기도 하고 중국어 같기도 한 말로 종알종알 의사표현을 합니다. 얼른 갈치랑 대화를 할 수 있으면 참 좋겠는데(너무 신기할 것 같습니다.), 갈치가 하는 말을 알아들 수가 없어서 갈치한테 미안하기도합니다. 그래도 “엄마”, “아빠” 만큼은 발음이 정확하답니다. 그 역시도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듯하지만 말이죠. 저랑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해서 그런지 “엄마”보다는 “아빠”라는 말을 훨씬 더 많이 합니다. 제가 갈치엄마 보란 듯이 “갈치야,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물어보면 갈치는 씩씩하게 “아빠!”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갈치엄마가 갈치에게 묻습니다. “갈치야, 엄마가 싫어, 아빠가 싫어?”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갈치는 역시 씩씩하게 대답합니다. “아빠!”
애 키우는 아빠가 느끼는 몇 가지 불편한 시선들
육아휴직을 시작한지 8개월째에 접어듭니다. 놀이방에 보내기에는 너무 이른 듯 했고, 부부가 다 직장생활을 하니 돌아가면서 육아휴직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었고, 그리고 제 직장에는 기혼 출산 남성 상근자들이 모두 육아휴직을 해온 전통 아닌 전통도 있고 하여 자연스레 육아휴직을 결정하였지만, 실은 다시 군대 가는 심정이었습니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에다가 제 일정과 제 시간을 가질 수 없다는 무료함과 갑갑함이 가장 큰 단점입니다만(갈치는 오리새끼마냥 저를 졸졸 따라다닙니다. 화장실에도 당근 따라옵니다. 어쩔 수 없이 저는 갈치랑 쎄쎄쎄~를 하면서 큰 볼일을 보고, 다리로 그네타기를 해주면서 머리를 감습니다.), 전체적으로 가사와 육아생활에 큰 어려움과 힘듦은 없는 듯합니다. 그런데 그보다는, 남성 육아휴직에 대한 우리사회의, 뭐랄까... 의식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너무 척박한 환경임을 느낀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 외부에서 오는 답답함이 오히려 육아생활을 더 힘들게 하는 요소가 종종 돼주는 것 같습니다.
작년 11월에 망원동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이삿짐센터 팀장님과 인사를 나누다 제가 육아휴직 중이라는 얘기를 하게 되었죠. 그랬더니 정말 근심어린 표정으로 팀장님이 하시는 말씀, “저런... 얼른 좋은 직장 구하게 되시길 바래요.” - 멋쩍은 웃음으로... 그게 아니구요~
갈치랑 동네 소아과에 처음 갔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엄마들과 아기들을 한자리에서 보는 건 처음이었습니다. 처음 만난 엄마들끼리도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는데, 약간은 신기한 눈초리를 받기도 하고... 원래 숫기가 없기도 하고 괜히 더 머쓱해진 저는 저를 닮아 역시 숫기가 없는 갈치랑 가만히 병원 한 구석에서 조용히 껴안고만 있었습니다. - 뭐, 숫기 없는 아빠를 만난 갈치만 불쌍하죠~
유모차 끌고 나온 동네 아줌마들 사이에 끼기도 쉽지 않고... 저야 괜찮지만 친구라고는 저밖에 없는 갈치한테 너무 미안해서 구청이나 백화점에서 하는 유아 교육프로그램이라도 가볼까 하고 홍보지를 뒤적여봤습니다. 근데 제목부터가 이렇습니다. “엄마랑 애기랑 - 엄마와 함께 하는 유아 감성 발달 놀이학교” - 아빠가 와도 안될 건 없다고 하긴 합니다만~
육아정보를 나눌 친구가 없는 저한테 인터넷은 정말 보물종합세트입니다. 어느날 규모도 크고 내용도 엄청 풍부해 보이는 육아카페를 발견, 기쁜 마음에 회원가입 버튼을 얼른 클릭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글이 뜨네요. “이 곳은 육아정보를 함께 나누는 엄마들의 공간입니다. 남자는 가입할 수 없습니다.” - 아, 나도 주부라고요~
부모가 함께 자식을 낳았으니 굳이 구분할 것 없이 같은 모습으로 함께 키우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싶은데... 엄살 좀 피우자면, 아빠가 애기 키우는 게 엄마들보다 더 힘든 세상입니다.^^;
갈치야, 우리 재미있게 잘 지내보자구~
세상에 어느 경험 속엔들 배움이 없겠습니까만, (누구는 육아휴직 1년간이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365일’이었다는데... 솔직히 그 경지까지는 도저히 동화되기 힘듦을 먼저 밝히겠습니다만), 육아휴직을 하지 않았더라면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을 많은 의미와 소소한 소중함들이 분명 제 삶의 큰 자양분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11시간의 진통을 갈치엄마와 함께한 끝에 갈치가 세상에 나오는 모습을 보았던 그 특별했던 순간은 이미 예상을 했었지만 그보다 직접 아이를 키우면서 더욱, 생명과 사람과 삶에 대한 많은 사색과 성찰의 시간을 문득문득 갖게 됩니다. 종종 참 신기하고 놀라운 체험들까지. 물론 하루하루 늘어가는 갈치의 예쁜짓을 보는 것이 무엇보다 아이 키우기의 더할 수 없는 매력입니다.
세월이 흘러 갈치가 저와 대화를 하고 함께 한 추억을 나눌 수 있는 나이가 되어도 그때는 아빠와 온종일 함께 했던 이 1년의 시간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아무도 모르는 혼자만의 기억으로도 저는 충분히 흐뭇하고 뿌듯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갈치야, 남은 4개월도 우리 재미있게 한 번 잘 지내보자구~^^ 날아라~ 갈치~!
박성우 ● 민주노총 서울본부 휴직 중, 기간제 전업주부.
민우회 상근자 나우랑 같이 살고 있음. 5월이 가기 전에 파마를 해볼 생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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