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6월호 [민우ing] 고용평등상담실 집중상담 ‘당신은 직장에서 안전하십니까?’
[민우ing] 고용평등상담실 집중상담 ‘당신은 직장에서 안전하십니까?’
경제위기 시대, 여성노동자의 피/땀/눈물로 빚은 10년+10년
선백미록(싱기루) ●
고용평등상담실은 지난 4월말까지 경제위기시대 여성노동자의 직장살이 집중상담 ‘당신은 직장에서 안전하십니까?’를 진행했다. 거리, 온라인, 전화, 방문 상담을 통해 위기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현재를 집중조명하고 쏟아지는 위기극복 담론 속에서 한 사람이라도 밀리지 않게 되기를 바라는 절박함이 배경이었다. 사용자, 여성노동자, 동료 간의 관계와 그 역학, 내면까지 보고 싶어 ‘직장살이’였고, 실제로 노동은 삶이기에 부당한 해고, 복직이 전제되지 않는 무급휴가, 도저히 갈 수 없는 장거리 발령 통보 속에서 단절되는 것은 경제적 수입만이 아니었다. 총체적인 삶의 비전, 존재감, 자존감에 남긴 상흔은 슬프고 우울하고 무력한 인간1)이라 느끼게 했고, ‘여자’라서 선택적으로 적용되는 비상조치는 자신의 왜소함을 각인하는 계기였다. 2009년 봄이 이렇게 아프게 가고 있다.
2008년 12월~ 2009년 4월2)까지 총 242건의 여성노동상담이 접수됐고, 이는 작년 동기간에 접수된 147건에 비해 65% 증가한 수치이다. 이중 63건이 경제위기 상황과 관련된 내용이었고 회사가 어렵다는 것을 이유로 한 해고, 정리해고, 임금삭감, 무급휴가, 대기발령, 전환배치, 일방적인 임금삭감, 퇴직금 강제 정산, 연차휴가 소진 강요 등이 주요내용이었다. 반복적인 일대일 면담을 통해 암묵적인 것에서 노골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각종의 압력을 주어 스스로 사직서를 쓰도록 만드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었다. 회사상황, 조직개편, 인원감축 등을 이유로 ‘여성’을 선정, 비정규직이거나 나이가 많거나 임신했거나 출산휴가·육아휴직 중인 여성 중 누군가 또는 그 전부가 이러한 인사조치의 대상자가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집중상담기간에 접수된 주요 사례를 중심으로 사용자들의 경영논리를 해부한다.
거짓말: 위기담론에 편승해 긴박한 어려움을 가장하다
● 지금은 국가적인 어려움에 처해있다면서 나를 해고할 수밖에 없단다. 경영상 해고라고 하면서 신입사원 채용은 이루어지고 있다. (2008.12.26.)
● 3년 동안 적자라고 말하지만 회사가 지금 그렇게 어려운지는 모르겠다. 왜냐면, 파주에 지금 또 공장도 새로 짓고 있고, 정리해고 이런 얘기는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식적인 통로 말고 몇몇 대상을 정해서 강압적으로 퇴사 압력을 넣고 있는 거다. (2009.1.9.)
● 경제위기가 언급되고 사옥을 새로 지었다. 빚에 시달린다고 하는데 사옥을 새로 짓나? 회사가 어려우니까 나가란 이야기를 했지만 웃기는 이야기다. (2009.3.30.)
인원감축을 요하는 정도의 긴박한 경영상의 어려움은 해고의 사유로 언급된다. 그러나 사례와 같이, 신규사원을 채용하거나 새로 공장을 짓고, 사옥을 짓는다. 한 사람의 고용을 유지하는 비용이 과연 사업 확장에 필요한 비용을 넘어설 수 있겠는가? 위기담론은 편의적이기까지 한 해고 통보로 이어진다.
● ‘골치 아픈 직원은 요즘에 경기가 안 좋으니까 (짜를 사람은) 짤라야지.’라면서 그동안 해고에 대한 암시를 계속 줬다. (2009.2.19.)
● 팀장님들을 시켜 직원들에게 사직서를 쓸 것을 강요했다. 사직서 제출은 전 직원이 초심으로 돌아가 열심히 일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그 후 2월 27일 회장님이 매출이 계속 적자니 조직개편을 다시 하라면서 회사에 잘 안 따르는 사람은 잘라버리라고 했다. 3월 2일 조직개편안에 나는 교체대상이 됐다. 만약 회사 사정이 정말 안 좋아 인원을 줄이는 거라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다.(2009.3.17.)
사업주에게 경제위기는 하나의 ‘호기’로서 골치 아픈 직원이나, 바른 말을 하는 직원을 해고하는 기회가 되고 심지어 사례와 같이 본인의 폭언에 문제제기한 직원을 조직 개편을 가장해 해고하기도 한다. 실질적인 경영상의 어려움에 처해있지도 않으면서 재택근로의 도입, 계약직 전환 등, 보다 사용자 편의적인 조직 개편의 근거로 매출저하, 경기불황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비겁함: ‘여성’, ‘비정규직’에게 책임을 전가하다
여성들은 대게 수십 년을 근무하고도 남성초임 임금을 받거나 남성의 60%를 받는다. 비용절감의 차원이라면 임금이 고액인 사람에 대한 고용조정을 하는 것이 경제적이다. 그러나 저항수단이 없는 약자부터 순위는 정해진다. 여성은 ‘유휴인력’이자 산전후휴가나 육아휴직을 보장해야 하는 손해를 끼치는 존재이므로 해고대상 1순위이고, 해고되더라도 집에서 육아에 신경 쓰면 될 존재가 된다. 이런 말 속에 여과 없이 드러난다.
● “우리는 임신한 너를 배려해서 해주겠다고 하는데 서로 양보하면서 가야지 왜 그렇게 막무가내냐?”며 저를 혼내고 있습니다. (2008.12.31.)
● “임신으로 3개월 공백 기간이 생기니깐 니한테 그런거 아니냐? 생각해봐라 회사사정이 어려운데 3개월 공백이면 얼마나 손해냐? 내가 무슨 차별을 했냐?”(2008.12.23.)
이와 같이 희생이데올로기는 여성에게 선택적으로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경우 설득의 과정조차 없다. 애초에 비정규직을 만들고 확산한 이유는 바로 이런 경영 위기에 가장 용이하게 인력 조정을 하기위해서다. 비정규직은 ‘해고가 불가능’한, 정확히 말하면 해고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아르바이트 직원들은 이미 줄였다. 요즘 경기가 불황이라고... 비용 줄이는 차원에서 알바들을 해고했다. (2009.3.19.)
●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면서 9년을 일했습니다. 회사가 워크아웃 중에 있어요. 두 개로 나뉘어서 하나는 A회사에 인수합병, 나머지는 별도 법인이 됐어요. 그런데 제일 먼저 정리한 것이 계약직들이에요. (2009.3.16.)
무기력 : 애사심에 호소, 마음까지 착취하다
경영상의 위기는 원칙적으로 사용자의 귀책사유다. 그러나, 회사는 조직중심의 분위기 쇄신을 주장하며, 개인에 대해 애사심을 강조하는 한편 언제든지 누구든지 해고될 수 있다는 공포의식을 조장한다. 이렇게 학습된 경영자의 논리는 여성노동자에게 내면화되어 회사의 과도한 요구를 수용하는 근거가 되거나 스스로 권리를 포기하게 만든다.
● 회사가 어려운 부분도 알고 있고, 나도 회사와 나쁘게 싸우고 싶지 않고, 얼굴 붉히면서 문제제기를 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회사가 어려우니까 회사에 어떤 돈을 요구하고 싶지 않다. 회사에 어떠한 손해도 없게 하고 싶은데 무슨 방법이 없을까.(2009.1.21.)
● 다시 근무하고 싶긴 하지만, 육아휴직을 두 번이나 썼기 때문에 회사한테 미안하기도 해서 더 다닌다고 주장하는건 어렵지 않을까. 그리고 사람도 정리하는 마당에 내 자리에 다른 사람을 구해서 내가 일할 자리가 없다고 하는데 그런 와중에 내 자리를 만들어달라고 하는건 너무 막무가내가 아닌가 싶다. (2009.4.8.)
한편, 불황 속에서 매출 증가가 회사의 최대 목표가 되면서 영업 수주 따내기 회식이 늘어나고 매출 목표의 증액과 이를 이용한 성희롱이 발생하고 있어 경제위기는 곧 가해자의 논리가 되기도 한다. 경기가 어려워 매출 추진이 어려운데 ‘폭탄주 한 잔을 마실 때마다 목표액을 100만원 씩 빼주겠다’는 회식자리, 거래처 발주가 줄어드는 것을 우려해 거래처 사람들을 모아 놓고 여직원에게 접대를 강요하는 회식자리가 이어지고 있다.
실업에 대한 보상은 회사 나름대로 정한 ‘위로금’과 실업급여의 보장뿐이다. 더 이상 해고는 ‘희망’과 ‘명예’가 아니고 여성노동자의 내면까지 착취하는 무기력한 상태의 개인에 대한 폭력에 가깝다.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지위는 10년 전의 경제위기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10년 전에 경영위기라는 이름으로 쟁취한 주요한 조치들-경영상해고의 도입, 비정규직의 전면 확대, 노동의 유연성 강화-이 그야말로 빛을 발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정부는 사용자의 경영논리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있고, 경제위기는 사용자들이 요구를 관철하고 노동환경을 근본적으로 전환하기 위한 여러 가지 조치들의 토대가 되고 있다.
1944년, 국제노동기구(ILO)는 필라델피아 총회에서 다음과 같은 원칙을 채택했다.
①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② 표현과 결사의 자유는 진보를 위해 불가결한 요건이다. ③ 일부의 빈곤은 사회 전체의 번영에 있어 위험이 된다. ④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 ·노동자 ·사용자 대표들이 계속적이고 협조적인 국제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는 ‘필라델피아 선언’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인권보장의 시초가 되고 있다.
전 세계는 지금 이러한 원칙과 정반대의 길로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경제위기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일련의 조치들은 일시적인 조정이 아니라 전체 노동권의 후퇴로 이어지고 있다. 10년 만에 다시 경제위기가 아니라 10년간의 경영자 논리가 비로소 결실을 맺고 있는 시기다. 그들의 거짓과 비겁함에 대해 대응할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한 무력한 여성. 사업장을 벗어나 나와 당신은 누구를 지지할 것인가? 어떤 논리로 당신의 마음을 채울 것인가?
선백미록(싱기루) ● 일을 하고 있음에, 썩 나쁘지 않은, 사실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음에 감사한다.
퇴근길에는 이런 것들을 생각한다. 노동부 지원금, 월세, 도시락. 직장도 나도 가난하다.
그리고 초라한 가부장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갉아먹은 그의 기억과 그의 뼈에 대해.
1) 방문상담 사례 中 “제가 이런 사람 밖에 안 되서 이런 취급을 받는 구나 생각하니 슬프고 우울합니다.”(2008.12.31.)
2) 2008년 하반기 이후 경제위기설이 본격적으로 유포되고 12월에 고용관계변동이 많아, 경제위기관련 상담이 다수 접수되었다. 그러므로 통계 기간을 2008년 12월에서 2009년 4월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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