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8월호 [기획 - 꼰대] 꼰대의 풍속도 또는 꼰대와 조언자 사이
[기획-꼰대]꼰대의 풍속도 또는 꼰대와 조언자 사이
이오 ●
*못말리는 꼰대 “늬들이 누구 덕에 먹고 사는데!” “젊은 것들을 어떻게 믿어” 못마땅한 ‘젊은 것들’과 그 젊은 것들에 동조하는 사람들을 스트레이트 직구로 공격함. 자신과 다른 사상이나 가치관도 결코 인정할 수 없음. 젊은이들의 기피대상 1호.
*보통꼰대 ‘한심한 젊은 것들’과 여성들에게 노골적인 적대감을 보이지는 않는 대신 여차하면 그들에게 질책과 훈계로 ‘모범’을 보이려 촉각을 세우는 편. 현실에서 흔히 보는 유형.
*갈대형 꼰대 “난 꼰대가 되지 말아야지”다짐했으나 세파에 부대끼다보니 자기도 모르게 꼰대성향을 갖게 됨. 예전에 싫어했던 행동을 어느새 자기가 종종 하고 있는 것에 놀라기도. 지나친 꼰대성향에는 여전히 거부감을 갖지만, 무소의 뿔처럼 자유로운 영혼들에 대해서도 역시 거리감을 느끼는 편. 자기모순에 난감할 때가 많음.
맘보: 내맘대로 거칠게 나눠본 꼰대의 유형인데 수긍돼요?
잠보: 분류하는 카테고리를 다르게 잡으면 또다른 유형의 꼰대들이 나올 수 있겠어요. 분야마다 갖다 붙이면 다 될 거 같기도.-_-;; 아마 이런 이유로 꼰대란 은어가 반세기 넘도록 생명력을 자랑하나 봐요. 세대차이는 역시 영원한 화두일까요.
맘보: 더구나 우리는 오랫 동안 엄격한 위계구조 속에 살면서 짧은 시간에 근대화를 겪은 반면 일상의 민주주의는 그에 따라주지 못한 까닭에 세대갈등이 더해진 거 아닐까요. 일상의 비민주성이 대물림되는 그 순환회로를 바꾸지 못하는 한 설령 권위주의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무의식중에 꼰대성향이 배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잠보: 30대 후반인 저도 마찬가지예요. 엊그제 바로 이런 문제로 직장에서 제가 잠시 꼰대노릇을... 저도 모르게 “내가 네 위치일 땐 그렇게 안했다. 일은 산더미인데 그렇게 칼퇴근하고 싶니?” 그랬어요. 급기야 “따박따박 말대꾸 좀 안하면 안돼?”라는 말까지 내뱉었어요.
맘보: 잠보가 평사원일 때 상사한테 듣던 말 아닌가요?
잠보: 입사했을 때 과장이 “난 예전에 밤샘을 예사로 했다”를 입에 달고 살아서 지겨웠거든요. 근데 이제 제가 그래요. “내가 니들 시절엔 칼퇴근은 꿈도 못꿨다. 이것들아~”
맘보: 근무시간 중에 다 못할 양과 질의 일을 빨리 하라고 닦달하는 그 시스템도 문제 아닌가요?
잠보: 그 친구들이 숙련된 편이 아니라서 업무시간을 칼같이 지키다간 정해진 시간에 다 못하기도 하죠. 그럼 결국 제가 해야 하는 구조여서 팍팍해지나 봐요. 어쩌다 한번 있는 전체회식에 빠지려는 후배에게도 한소리하게 돼요. 내 상사였던 과장이 요즘 이해되는 거 보면 나도 꼰대가 돼가나? 내가 바로 갈대형 꼰대? 으악~~~
맘보: ‘한국의 조직형’ 꼰대라고 이름 붙일만한 현상 아닐까요? 조직이 잠보같은 인간도 꼰대처럼 만든다면, 격동의 근현대사가 사람들을 꼰대로 만들기도 했죠 뭐. “니들이 일제 식민지를 겪었어, 육이오 전쟁을 겪길 했어. 등 따시고 배부르니까 헛짓거리야”처럼 노인들 혀차는 소리나 “우리 땐 칼퇴근 꿈도 못꿨다”는 잠보의 불만은 곧 ‘억울함’을 기반으로 한 꼰대성향 아닐까 싶은데...
잠보: 반면에 젊은이들은 나이든 사람들을 향해 “당신들이 해놓은 게 뭐냐. 세상을 살기 좋게 만든 것도 아니고” 식으로 반박하기 일쑤고. 결론은 서로의 절실한 경험을 잘 모르는데다 소통의 장벽을 치고 있다는 거...
맘보: 꼰대에 수구보수적인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에요. 이른바 ‘386’(지금은 486이지만)세대에 속한 사람들 중에 ‘진보꼰대’가 많다면서 젊은 친구들은 비아냥거리기도 해요.
잠보: 맘보도 ‘386’에 속하는 입장에서 그런 말 들을 때 어때요?
맘보: 나야 그런 식의 세대구분에 민감하지 않은 편이라 욕을 먹어도 상관없는데, 문제는 그런 주제의 논쟁이 자칫 ‘상호비방’처럼 흘러버리면 난감하죠. “무기력한 88만원 세대들아, 386선배들이라면 너희들처럼 가만 엎드려 있지 않았을 것이다.”같은 주장들이 젊은이들을 ‘걱정’하는 취지로 인터넷게시판에 오르면 반발하는 그런 패턴 말이죠. 내가 가끔 들르는 게시판에 최근 이런 논쟁이 며칠 동안 격렬하게 벌어져서 세대론으로 벌집쑤신 듯 했어요. 20대와 30대와 40대의 주장들이 서로 극심한 대립양상으로 흘러서 안타까운 마음에 나도 껴들 뻔 했는데, 혹시 꼰대소리 들을까 두려워 소심하게 굴다가, 끙끙대며 쓴 글을 올리지도 못한 채 그 주제의 쓰레드는 판을 접고 말았다는 슬픈 이야기...
잠보: 써놓은 글 아까워서 어째요! 논쟁의 요지와 맘보가 썼다는 글을 요약해주세요.
맘보: 어떤 30대 후반의 남성이 쓴 “20대들에겐 희망이 없다”는 글이 게시판에 퍼 옮겨지면서 토론이 과열돼 감정싸움이 일어났어요. 그 논쟁을 초간단 요약하자면 “20대는 제 밥그릇도 못 찾아 먹는다. 위기의식이 희박하다. 좀 들고 일어나 봐라”vs "자기 목소리 내다가 다른 20대에게 자리 뺏길까 염려하는 현실에서 투사되기 쉬운가. 이런 현실을 만든 책임에서 386들이 자유롭지 못한데 꼰대처럼 훈계나 한다”이런 거죠.
잠보: 젊은 친구들은 또 ”386 자기들도 보수화되어 옛 추억이나 먹고 살면서 20대 더러 보수화되었다고 야단치는 건 위선”이라고까지 하죠.
맘보: 하지만 각자 자기상황에 갇힌 이분법적인 주장만 되풀이하지 말고, 서로의 상황과 맥락을 이해하는 노력을 전제로 연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자는 섬세한 논지를 펴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내가 머리를 쥐어 뜯어가며 원고지 40매 분량의 글(결국 못 올리고 말았지만)까지 썼던 건 결정적으로 “그럼 우리더러 어쩌라는 건데~” 라며 폭발하는 20대 네티즌을 보고 오지랖이 발동해서... 내가 말하려 했던 내용을 압축하자면 ”한 세대의 어느 특정 시기를 거치며 공유한 문화에 대해 우월감을 드러내는 한, 다른 세대와의 소통은 불가능하다. 아무 의심 없이 내면화해온 것들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만 소통의 전제는 물론 도덕적 정당성도 세울 수 있다”는 부탁을 동년배에게 우선 하고 싶었어요. 한편으로는 “40만 청년실업시대라는 말이 개그프로의 유행어로 등장하는 현실에서, 청년들의 드라이브가 ‘눈에 보이지 않는’ 까닭에 노땅들이 대리로 ‘시일야방성대곡’하는 모양이 돼버렸는데, 결국 답답한 자가 우물을 파야 하지 않나, 지금 선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써봐라, 그래야 내면의 좌절과 패배감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다, 투표 꼭 해라, 거창하게 사회정의까지 갈 것도 없다, 당신들의 이익을 지켜줄 조직을 만들 자신이 없으면 그 비슷한 단체에라도 참여하자... 당신들이 말하는 ‘진보꼰대’들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자리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상상력을 발휘해 잠재력을 모으는 사람의 숫자가 많을수록 싸우는 것도 장기적이고 재미있지 않겠나, 그러려면 고립되었다고 절망만 하지 말고 몇 명이라도 모여 토론하자, 나이든 사람으로서 돕겠다...” 이런 얘기를 꼰대스럽게 하지 않으려 고심하고 망설이다가 시간을 놓쳐버렸다니까.
잠보: 이번에 놓친 기회, 언젠가 꼭 잡으시기 바래요. 좀 용감해지시고! 근데 은근 탈꼰대 노력파들도 보이지 않나요?
맘보: 글쎄 ‘무늬’를 꼰대스럽지 않게 바꾸려는 시도들은 많이 보여요. 젊은 스타일을 벤치마킹해 패션과 피부 관리에 공들이거나 최신 유행에 호흡을 맞춤으로써 청춘을 되돌리려는? 근데 꼰대티를 벗고 미중년, 미노년이 되려는 이런 안간힘도 좋지만, 거기에 스스로의 꼰대정신을 되돌아보며 어른스러운 성숙함을 조화시킨다면 10점 만점에 10점!
잠보: 꼰대와 조언자, 꼰대와 스승의 중요한 차이도 그거겠죠. 자기 속에 갇히지 않고 스스로를 되돌아볼 줄 아는 것, 상대방이 처한 상황에 대한 이해의 노력!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인데 말은 참 쉽네요.
이오 ● ‘한국적 꼰대들’의 두드러진 공통점이 “너희가 윗세대의 고난을 아느냐?”라면, <그랜 토리노>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등의 미국영화 속 꼰대들은 “이제 좋은 시절은 갔다”면서 불평하는 그런 느낌이더군요. 나라마다 역사적.문화적 배경이 다르니 꼰대풍속도에도 각각 차이가 있겠죠. 맘보와 잠보는 알쏭달쏭한 말, 싱겁고 객쩍은 이야기 등을 뜻하는 mumbo-jumbo에서 딴 닉네임으로, 두서없는 수다떨기에 안성맞춤이라 종종 애용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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