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8월호 [민우ing] 1998년을 되풀이 할 수 없다는 절박함에서 흔들리는 여성노동권, 대안을 모색하다.
[민우ing] 1998년을 되풀이 할 수 없다는 절박함에서
흔들리는 여성노동권, 대안을 모색하다
최진협(나우) ●
경제위기라는 말이 들리기 시작한 작년 말, 온갖 미디어는 허리띠를 졸라매야한다며 누가 시키기나 한 듯 분주했고, 대기업과 정부는 위기가 채 느껴지기도 전에 기다렸다는 듯이 ‘힘내라’ 류의 광고로 위기의 시대를 선점했다. 뭔가 익숙한 저 너머의 불길한 기억…. 역시나 경제위기를 통해 각종 기업규제완화와 노동유연화, 구조조정은 봇물 터지듯 탄력을 받기 시작했고, 실업은 모든 것에 최우선 과제가 되었다. 모든 부당함과 차별은 일자리가 있는 자들의 배부른 투정으로 치부되었고, 위기담론은 들리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까지 지배하였으니, ‘그래, 일자리가 있는 것만도 어디야, 조금만 참자’가 그랬다. 그러나 그 ‘조금’은 우리의 권리를 내어주는 전부였고, 그렇게 여성노동자의 노동권은 기층부터 흔들리며 무너져갔다. ‘10년의 성과를 1년 동안 모두 갉아먹은 98년 IMF1)’와 똑같은 궤적을 밟을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우리는 목표를 분명히 했다. 그래, 경제위기가 다시 돌아왔다면, 여성노동권도 더 탄탄히 다져주마! 그래서 올해 민우회 여성노동 활동을 관통하는 핵심은 ‘아온 경제위기, 여성노동권 탄히 다지기’, 일명 ‘돌탄’이 되었다.
화불단행2), MB와 경제위기담론
우리에게 경제위기 속 MB노동정책은 눈 쌓이고, 서릿발까지 내리는 곳에 맨발로 내몰린 막막함으로 다가왔다. 최저임금은 위기담론속에서 고령자와 수습 등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하여 호시탐탐 감액목표가 되었고, 계약기간연장과 유예를 통해 비정규직을 확대하려는 시도는 끊임없이 불안정한 노동시장을 더욱 부채질했다. 여기에 위기담론에 편승한 기업의 구조조정은 거대한 옵션처럼 따라붙었다. 이 속에서 보이지 않는 여성노동자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어떻게 권리를 잃어가고 있는지, 이겨내고 있다면, 아니 이겨낼 수 있다면 무엇이 이를 가능하게 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민우회는 시급하게 연구팀을 꾸렸고, 이를 통해 위기담론을 극복할 대응담론 그리고 우리의 노력은 무엇이 될 수 있을지 그 실천적인 대안을 모색하고자 했다. 그래서 1998년에 민우회가 진행했던 토론회와 꼭 같은 이름으로 연속포럼, ‘Again 1998, 흔들리는 여성노동권, 그 대안을 모색한다’를 진행하였다.
여성노동, 숙제로 가득차다
연구는 세 가지부분으로 나눠 진행했다. 첫 번째는 현재 경제위기를 경유하며 고용과 삶의 위기 속에서 여성노동자들은 자신의 일, 가족 내 삶과 관계를 어떻게 전망하고 있는지, 또 어떤 미래를 설계하고 있는지를 여성노동자 13명의 이야기를 통해 저항과 미래를 기획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몇 가지 안이 제시되기도 했는데, 영세 자영업과 임시·일용직을 전전하는 여성들의 삶을 드러내어 다양한 여성노동자‘들’의 존재를 사회적으로 가시화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 그리고 ‘사회적 해고’의 메커니즘을 이해하여 누적된 성차별에 대한 일상적 대응을 강화하고 ‘엄마노동자’를 지지하는 담론형성을 하는 것은 어떤지에 대한 것이다. 더불어 여성노동자들이 자존감을 회복하고 스스로 미래를 기획할 수 있도록 일하는 여성의 ‘자기 비전’을 만드는 일도 놓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적어도 ‘찍소리’를 내는 것만으로도 협상력은 달라질 수 있다는 등의 고용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일상적인 행동전략을 보다 상세히 안내하여 여성노동자의 자신감을 키워 줄 수 있는 매뉴얼을 만드는 것이 제시되었다. 두 번째 연구는 경제위기를 관통하며 여성노동권이 서 있는 현실과 미래좌표를 가늠하기 위한 ‘현 경제위기시 노동유연화 전략이 여성노동권에 미치는 효과’를 분석했다. 이 중 비정규직 사용기간제한을 늘리는 현 정권의 시도에 대해 여성노동자의 생애주기에 비춰 바라보았던 부분이 있다. 지금도 20대에 여성노동자가 정규직 전환에 한번만 실패3)하면 다시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비정규직법이 유예되어 기간이 연장되면 여성은 임신, 출산, 양육과 결부되어 전 생애에 걸쳐 비정규직화를 경험하게 될 공산이 매우 크다. 향후, 비정규직문제를 여성노동이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여성노동자의 생애와 연결하여 좀 더 심화된 접근을 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여성고용의 위기와 여성일자리 정책의 방향’을 통해 여성노동이 저임금, 비정규직, 불안정한 노동에 하향평준화 되고 이와 함께 여성빈곤의 가능성 역시 확대되고 있음을 통계를 통해 드러내었다. 특히 현 여성고용정책 중 여성일자리확대 부분은 돌봄 서비스 중심으로 편중되어 있고, 실효성이 의심스러운 백화점식 나열정책, 일자리 정책에 대한 종합적 평가체계구축과 이에 대한 사후관리의 부재하여 이에 대한 대책마련이 필요함을 알렸다.
‘밀어 부쳐보자’
연구결과뿐 아니라 연속 심포지움 자리에서 실천적 대안과 관련해 많은 얘기들이 오갔는데, 토론자분들이 대안을 얘기하며 말미에 가장 많이 붙인 말은 ‘밀어 부쳐보자’였고, 이는 ‘더 많이 수고하셔야 된다’로 수렴됐다.
‘남들은 사치스럽다고 할지라도 적극적 고용개선조치 시행계획을 기획할 수 있도록 사례를 발굴하거나, 모델을 제시하는 공격적인 모니터링 해보자. 고평법4)에서 말하는 기본계획들, 그래도 쓸 만한 것들이 꽤 있으니, 파고들어 구체적으로 지적해보자’, ‘우리는 지나치게 빨리 안을 내놓고, 지나치게 빨리 접는다. 우선순위를 정하고 중점사업을 한 오년잡고 가자.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근에 관해 여성우선해고 반대운동처럼 각인시킬 수 있는 표제를 만들어 연차계획을 세워서 밀어붙여보자. 그리고 경제위기로 흔들리는 여성노동권 뿐 아니라, 거기에 더해 MB의 기치아래 가해지는 민주주의의 역행이 주는 흔들림도 놓치면 안된다’, ‘여성노동자 범주’를 더 크게 봐야한다. 많은 여성들이 저항할 힘조차 잃어가고 있다는 것. 저항할 수 있는 내공이라도 남아있을때 더 많은 여성노동자들에게 손을 내미는 적극적인 운동방식을 밀어 부쳐보자.’
이번 연구와 토론은 답이 아니라, 민우회가, 여성노동운동이, 여성노동자가 이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있는, 해야 할 것들에 대한 숙제를 찾기 위함이었다. 누군가 정말 숙제를 내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욕심껏 연구자들을 힘들게 하고, 토론자분들에게 부담을 드렸는데 많은 분들이 애써주신 덕분에 포럼이 끝나고 민우회 수첩 안에는 숙제로 가득 채워졌다. 이제 남은 건, 정말 있는 힘을 다해 밀어붙이는 일이다.
최진협(나우) ● 혹시,“나씽폴”을 아세요?
나씽폴이 궁금하시다면
반차별블로그(http://blog.daum.net/tostar)로 오세요!
1) 연속포럼시, 토론자 정강자 선생님(전 민우회 대표)의 말씀 中
2) 화불단행(禍不單行), 화는 혼자 오지 않는다했던가. 정말이지 2009년엔 모든 악재가 다 같이 몰아치는것 같다.
3) 현 노동시장은 정규직전환에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의 한계에 직면해 있기도 하다.
4)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양립지원에 관한 법률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