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10월호 [특별기획]당신과 함께해서 행복했습니다. - 하늘로 가는 길에도 남녀가 따로 있더라
[특별기획] 당신과 함께해서 행복했습니다.
하늘로 가는 길에도 남녀가 따로 있더라 -여성장을 치르며
박봉정숙 ●
처음이었다. 장례식에 손님이 되어 가보긴 여러 번이나 장례절차를 진행해야 하는 당사자가 되어보긴 난생 처음이었다. 슬퍼할 새도 없이, 머리가 텅 빈 채 차질 없이 언니의 장례가 치러지도록 똥글과 나는 병원에서 필요한 절차를 밟았다. 빈소를 정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빈소의 꽃을 주문하고, 영정사진 꽃, 음식, 관, 수의, 장의차, 장의차 꽃에 이르기까지 생각보다 결정해야 할 것이 많았다.
이 결정의 과정에 의외로 성별이 끼어들었다.
언니는 화장을 했다. 화장을 해도 관은 매장을 할 때와 같은 크기의 관이 쓰인다. 장례 물품 방에 가니 관이 여러 개가 전시되어 있고, 그 중 화장용 관은 두 개가 있었다. 이 두 개는 무엇이 다르냐고 물으니 하나는 여성용, 하나는 남성용이란다. 으잉? 관에도 성별이? 세상은 참… 내가 모르는 사이에 많은 걸 구분해놓았다. 그러면서 붙이는 설명이 남성용은 관의 네 모서리에 사각의 기둥을 덧붙여 단단해 보이는 느낌이 나게 하고, 여성용 관은 관의 네 모서리를 기둥의 덧댐 없이 나무끼리 부드럽게 연결했다는 것이다. ‘그 외의 차이는 없냐?’고 물었더니, 없단다. 우린 각 잡혀 있는 그 관으로 골랐다.
이런 의미 없는 성별구분은 장의차를 고를 때도 맞닥뜨려졌다. 장의 차량의 선두는 캐딜락으로 운구를 하고 뒤에 버스가 따르기로 했다. 계약하러 오신 분, 안내 파일을 꺼내시더니 흰색 캐딜락과 까만색 캐딜락이 있는데, 고인이 여자 분이라서 흰색 캐딜락을 빼놨다고 하신다. 하지만 장의차하면, ‘까만 캐딜락’이 아니던가. 드라마에서 뉴스에서 멋있게 보이던 그 까만 차. 우린 그 차에 언닐 태우고 싶은데… 언니는 여자였네… 우리는 까만색이 ‘가오’가 사니 까만색으로 다시 주문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이미 주문을 넣어놓아 어렵다는 기색이었다.
이미 우리가 이것저것 태클을 건 다음인지라 여성단체사람들 무지 ‘까다롭네’ 라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이런 것까지 이미지관리 하고 다녀야 하는 우리들...아...), ‘뭘 장례 운구차까지 남녀를 따져 색깔을 달리하느냐’며 은근히 투덜거린 후 그냥 흰색 캐딜락으로 양보했다.
장례 물품 방에 앉아 수의에, 장갑에, 이렇게 하나씩 챙기다가 장례사가 완장 이야기를 한다. 조문객을 맞는 사람들 중 남자들이 하는 완장이 있는데 몇 개나 필요하냐는 거였다. 상주는 이미 모두 여성. 장례위원회와 민우회, 그리고 유족대표는 명숙언니의 언니인 길용 언니.(장례식장 입구 현황판의 ‘최명숙’빈소 안내에는 상주가 최길용, 권미혁이라고 적혀 있었다. ‘최길용’이라는 이름 때문에 남동생이나 남자조카인 줄 알고 민우회가 ‘상주=남성’이라는 장례문화를 꺾진 못했구나 하고 생각했다며 나에게 말씀을 건네시는 분들도 간혹 계셨다 - 유가족 대표로 상주는 명숙언니의 투병기간 동안 옆을 지켜온 최길용 언니가 맡는 것에 대해 부모님도 남동생들도 흔쾌히 동의, 아니 직접 추천해주셨다.) 물론 조문객을 맞는 남동생이나 남조카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잠시 남녀 모두 차겠다고 할까, 아니면 실질 상주인 여성들이 차겠다고 할까 고민하는 중에 길용언니, 산뜻하게 답변하신다. “완장, 이런 거 안차면 안 될까요? 번거롭고 가족손님은 가족들이 다 아니까 굳이 완장으로 구별할 필요도 없고, 괜히 격식 같아요. 우리 그냥 다 안 찰래요.” 나이스~. 그래, 이렇게 또 언니의 지혜로운 대응으로 스트레스를 벗어나는 구나.
관례대로 안 하길 참 잘했구나라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든 건 바로 운구였다. 명숙언니의 관은 6명의 후배 활동가가 운구했다. 모두 여성들이다. 처음에 관을 정할 때 병원측에서 운구할 남자 6명이 필요하니 정해놓으라 했다. 우리는 관이 매우 무거울 거라 생각해 감히 우리가 들겠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평상시 우리 힘으로 보아 들지 못할 바는 아니나 혹여 우리 예상을 벗어난 무게여서 옮기다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언니 가는 길이 편해지지 못할까 싶었다. 그런데 해결은 이상한 곳에서 시작되었다. 유가족 측에 여쭸더니 남자 6명을 채우기 어렵다고 하시면서 오히려 괜찮으니 민우회 측에서 알아봐 달라 하셨다. 어떡하나 궁리하는 와중에 흰색 캐딜락을 미리 빼놔 미안해하던 아저씨, 우리의 이야길 엿들으시곤 ‘직접 하세요’라고 말하신다. 안 무겁냐고 물었더니 화장용 관은 매장용 관과 달리 가벼워 여자 6명이서 충분히 들고도 남는단다. 불안하면 8명이 들으란다. 애초 6명으로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었던 거다. 우리는 얼마나 고정관념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가. 어떤 행사든 온갖 짐을 우리의 힘으로 다 날랐던 평상시 실력으로 보았을 때 사실 못 들 이유가 없다. 여자들은 힘이 없어 못 드는 게 아니라, 못 들게 되어 있어 안 드는 것이고, 그것에 그다지 대적할 이유도 필요도 못 느껴 왔을 뿐이다. 결국 운구는 언니와 오랫동안 함께 했던 민우회 후배 활동가 5명과 여성연합의 노동담당 활동가 1명, 이렇게 6명이 함께 하였다.
자그마한 소품에서부터 상주라는 상징에 이르기까지 자연스러운 듯 묻어나던 남성중심의 장례문화지만, 겪어본 바에 의하면 장례를 치르는 당사자들이 다르게 하겠다고 하면 되는 것이었다. 물론 우리는 가족들의 전폭적인 동의와 지지가 있었던 상황, ‘여성장’이라는 명명 때문에 과정이 훨씬 수월하긴 했지만 말이다.
언니는 하늘로 가는 마지막 길에서조차 여성운동을 하고 간 듯하다. 언니, 우리 잘 했지?
박봉정숙 ● 한국여성민우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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