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10월호 [민우ing]이제 그만, 나이야 가라!
이제 그만, 나이야 가라!
강선미(폴) ●
지난 3월 연령차별금지법1)이 시행되었다. 말 그대로 나이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법이다. 이 법은 ‘고용’에 한정되어 있지만 나이차별 문제를 제도적으로 보완하는 점에서 충분히 유의미하다. 실제로 면접 시 ‘어린 상사와 일할 수 있겠는가?’ 혹은 ‘나이가 어린데 잘 할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을 받는 상황이나 모집 공고에서 ‘몇 세 이하/이상’의 ‘단서’를 보고 좌절하는 상황은 표면적으로나마 줄어들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법으로까지 나이차별이 금지된다는 건 우리 사회 내 나이차별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현실의 반영일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나이차별은 사실 우리의 일상과 동떨어진 문제가 아니다. 일상 속 나이주의 인식에서부터 비롯된 문제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신입사원이라면 -마음만이 아니라 몸도-젊고 패기 넘치는 인재여야 한다는 편견, 소위 중년의 나이라면 청바지보다 점잖은 정장차림을 입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그러하다. 나이주의 및 나이차별은 공적 영역에서 일어나든 일상 속에서 소소하게 벌어지든 어린 사람들은 어린대로 나이 든 사람들은 나이가 많은 대로 힘들게 한다.
#. 또 다른 이름으로서 ‘나이’와 ‘생애주기’
처음보거나 알게 된지 얼마 안 된 사람이 뜬금없이 나이를 물어보면 갑자기 나이를 왜 물어 보는 건가하고 당황스럽다. 서로의 나이를 밝히고 나면 은근히 암묵적인 ‘위계’가 세워진다. 대화중에 상대방이 나보다 나이가 많으면 종종 말이 반 토막이 된다. 반말 외에도 나이 때문에 빗어지는 당황스러움은 적지 않다. 다 큰 ‘어른’이 만화책을 즐겨본다거나 소위 점잔하지 못한 옷차림을 할 경우 그리고 요즘에는 아이돌 그룹 노래를 즐겨듣는다고 하면 쯧쯧 혀를 차는 반응과 의외라고 놀라는/놀리는 반응과 마주해야 하기도 한다. 이런 단편에서처럼 나이주의에는 단순히 나이가 적거나 많아서뿐만 아니라 각 나이별로 이래야 한다, 저렇게 살아야 한다는 식의 일종의 규칙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 ‘8살이면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13살이면 중학생이고 19살이면 대학을 들어가겠지 그리고 25살 정도면 어딘가에 취업해 돈을 벌고 30살 전후로 결혼은 했겠지 또 30대 초반이면 첫 애는 낳았겠지’ 이런 식의 생애주기를 익숙해한다. 초등학교 다니는 사촌동생에게 몇 살이냐고 물으면 초등학교 몇 학년이라고 대답한다. 동문서답이지만, 동생의 나이가 바로 ‘계산’된다. 나이에 따라 그 사람의 ‘상황’이나 ‘소속’이 ‘보편적 생애주기’에 따라 일반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주기가 절대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결혼 하지 않거나 취업보다 공부에 뜻을 둔 사람들에 대해 ‘이기적’이라거나 ‘철없다’는 부당한 비난이 쏟아진다. 취업이나 결혼시기에 대해 유연할수록 그 선택은 ‘치기’로만 치부되기 쉽다. 다양한 삶의 방식은 다른 것뿐 틀린 게 결코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처럼 우리의 일상 속에서 나이는 지금까지의 삶이나 경험을 ‘생애주기’에 따라 가늠하게 하는 측정기로 작용하고 있다. 문제는 그 측정 기준이 너무도 표준화, 절대화, 보편화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준에서 벗어난 이들은 비난/비하의 대상으로 되기도 하고 결국 이를 따르도록 강요받기도 한다.
#. 적령기 고정관념을 넘어서
처음 ‘보편적 생애주기’에 따른 나이문제 즉, 적령기 고정관념은 잡힐 듯 말듯 딱 잡히지 않았다. 이에 먼저 적령기 고정관념이 우리의 일상에 어떻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고자 일반화 된 적령기(교육, 취업, 결혼, 기타/문화) 고정관념에 대한 모니터2) 활동을 진행하였다. 각 적령기와 관련한 특징적인 세부 사례들은 다음과 같았다.
#1. 교육 적령기의 경우 탈학교청소년의 청소년증3)에 대한 사례가 흥미로웠다. 좋은 취지에서 만들어진 청소년증이지만 실제 탈학교청소년들의 발급 비율이 무척 낮다고 한다. 이유는 청소년증을 내밀면 ‘학교를 다니지 않는 청소년 = 불량청소년, 문제아’로 비춰지기 때문이란다. 사실 10대 청소년이 학교를 다니지 않는 것을 부정적으로 문제시 하는 것이야말로 문제가 아닐까?
#2. 신규 채용 시 나이제한이 여전하다는 신문기사에서 나이제한을 두어 나이든 취업자를 채용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상사나 동료 간의 불편함’과 ‘위계질서가 무너지는 것에 대한 부담’을 들었다. 이러한 고정관념 때문에 결국 일할 권리 자체가 첫 단계부터 차단된다.
#3. 20대 중반부터 30대 초반(그 이상까지도)의 비혼 여성이라면, 주변의 결혼 압박에 자유롭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결혼 압박이나 강요를 대중매체에서 특히 여성 연예인이 출연할 때마다 자주 확인할 수 있었다. 결혼 적령기 해당되는 여자 연예인에게 단골로 묻는 질문은 ‘나이가 찼다. 결혼 적령기 아닌가?’, ‘결혼 적령기인데 언제쯤 할 예정인가?’와 같은 것들이었다. 질문을 받은 이들은 난감해하기 일쑤였고. 방송 등 대중매체를 통한 결혼 적령기 연예인이 감내해야 하는 결혼 ‘압박’은 보는 것만으로도 왠지 씁쓸하고 괴롭다.
#4. 기타/문화 측면에서 본 적령기 사례 중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 대통령에도 나이제한이 있다는 것이다. 40세에 달해야 한다는데4) 딱 40세라니 왜 이렇게 나이가 제한된 것인지 의문이 든다. 또 다른 사례로서 보통 ‘낭만’은 소녀 혹은 젊은이들의 전유물로 이해된다는 것이다. ‘낭만’을 비롯하여 각 연령대별로 향유하는 문화 콘텐츠가 너무 확고히 나눠져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이돌 그룹의 팬 카페에 가입하려고 보니 회원 가입이 40세 이전으로 제한되어 있기도 하다. 즉, 문화를 즐기는 데에도 각 문화 영역마다 일종의 적령기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 외에도 흥미로운 사례들이 많았는데, 모니터를 하면서 정리된 것은 이렇게 일생에 걸쳐 삶을 고단하게 하고 팍팍하게 하는 나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거나 놓아버리자는 것이다. 나이에 집착하지 않는 삶에 대한 상상이 ‘잔인한 환상이 아닌 희망’이 될 수 있도록, 나이 어림이 억울한 일이 아니며 나이 들어감이 서글픈 건 아닐 수 있도록 정말 나이를 숫자로만 생각할 있게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그렇기에 적령기 고정관념 모니터 활동은 여기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인식의 전환을 위한 캠페인 활동으로 잇고자 기획 중에 있다. 캠페인의 기조<나이야 가라!>는 쉽게 와 닿을 것 같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나이야 (제발 이제 그만) 가라는 뜻이므로. 앞으로 이어질 캠페인 활동도 재미있고 발랄하게 진행될 것 같다.
1) 정확한 법률명은 ‘고용 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로서 올해 3월 22일 부터는 모집, 채용에 대해 시행되고 임금, 임금 외 금품, 승진, 퇴직·해고에 대해서는 2010년 1월 1일부터 적용된다고 한다.
2) 적령기 고정관념 모니터단(내 멋대로 산다!)은 7월부터 활동하기 시작하여 9월 현재 모니터 작업을 마치고 모니터 결과를 외화 시키고자 하는 활동을 기획 중이다.
3) 청소년증이란 신분증(학생증)이 없는 탈학교청소년(만 9세~18세)에게도 재학생과 같은 혜택(문화시설, 대중교통 등 이용 시 할인)을 주기 위해 2004년 만들어져 개별 신청에 의해 발급되고 있다.
4) 헌법 67조 4항에 의하면 “대통령으로 선거될 수 있는 자는 국회의원의 피선거권이 있고 선거일 현재 40세에 달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강선미(이상한 나라의 폴) ●
오늘은 홍대에서 열린 ‘나이 없는 날’ 행사에도 다녀왔답니다.
반차별 별나라 블로그에 오시면 이 날의 풍경을 보실 수 있습니다.
블로그(http://blog.daum.net/tostar)에서도 만나요! :D
참! 모니터 활동을 열심히 하신 와와님, 잔차님 최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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