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호 [민우ing] 2009년 여성노동상담경향 우리, 눈물은 나도 지지 말아요!
[민우ing] 2009년 여성노동상담경향
우리, 눈물은 나도 지지 말아요!
선백미록(신기루) ● 한국여성민우회 반차별·회원팀
2009년 고용평등상담실에 476건의 여성노동상담이 접수됐다. 올해도 직장 내 성희롱 상담은 47.5%(226건)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으로는 공허한 출산장려정책을 실증하듯, 임신, 출산관련 상담이 작년 47건에서 74건으로 늘었다.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상담은 102건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근3년 동안 단 한 번도 없었던 우편상담이 있었다는 것이다. 안산에 산다는 그녀는 모 대학 예식 홀에서 음식 서빙을 했는데 총지배인의 폭언과 성희롱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여성인 자신을 무시하는 그의 태도에 화가나있었고, 이곳이 어떤 권위 있는 기관이라도 되는 듯 처벌을 해달라고 했다. ‘마음이 아픕니다.’ 라는 또렷한 글자가 뇌리에 남았다. 또한, 올해는 식당노동자, 마트노동자가 ‘비정규직 여성’이라는 이름 대신 그 존재를 뚜렷이 했다. 정규직이 아닌 사람들은 대졸 정규직 조합원이 아니라서 비정규직이 됐고, 여전히 비정규직으로 남아있다.
사례1] 97년에 촉탁으로 입사해서 8년 넘게 계약서도 안 쓰고 13년 동안 회사를 다녔어요. 우리 같은 사람들을 무기계약직이라고 하더군요. 13년 동안 월급이 겨우 20만원 올랐어요. 10년 넘게 근속했는데 기본급이 90만원인거죠. 수당이 있긴 하지만 정규직은 특별수당을 더 많이 받고, 단체협약을 적용 받아서 해마다 임금이 오릅니다. (2009.07.03.)
위 상담사례에서는 ‘비정규직 일’에 대한 고정관념과 여기에 바탕 한 차별적 보상체계를 확인할 수 있다. 어떤 일을 13년 동안 했다는 것은 ‘숙련’이다. 그러나 정규직이 받는 수당, 보너스를 받지 못하거나 시간급 자체를 낮게 정해 숙련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 아니, ‘할 필요가 없다.’고 규정되어 있는 현실이다. 13년을 일했지만 임금은 고작 몇 만원 오른 것에 지나지 않고 기본급은 100만원도 안 된다. 이런 현실은 ‘비정규직 일=100만 원짜리’라는 고정관념을 재생산하고 다시 저임금을 유지, 존속시킨다.
사례2] 정규직으로 입사해 두 달 전에 결혼을 했습니다. 제가 입사해서 지금까지 본 것은 다른 고졸 여직원들이 결혼을 하게 되면 계약직으로 전환을 하거나, 이런 걸 잘 아는 여직원들은 자진 퇴사하는 모습입니다. 저는 업무상 남직원 일을 하고 있고 정규직이에요. 어제 윗분이 따로 절 불러서 이렇게 말했어요. 현재 하는 업무를 똑같이 하는데, 계약직으로 전환하고 급여는 연봉제가 아닌 12개월로 나눈 급여로 대체하고, 그렇게 되면 직급은 더 이상 높아질 수 없다고 했어요. (2009.08.26.)
위 사례에서는 결혼을 계기로 비정규직을 제안하는 회사를 통해 ‘남성의 일=정규직, 기혼여성=비정규직’ 이라는 생각을 확인한다. 기간을 정해 계약을 하면서 임금체계자체를 바꾸고 성과급을 없애 매해 협의를 통한 임금 상승 통로를 차단하는 것이다. 동시에 승진도 없다는 점을 못 박는다. 기간을 정한 근로계약을 하면, 매해 같은 조건으로 갱신이 가능하고, 무기 계약직이 된다 해도 처우에 대한 개선을 원천적으로 막아놓았기 때문에 100만년을 일해도 100만 원짜리 일자리다. 그렇게 오래 살 일도 없지만, ‘검은 천장’은 그만큼 견고하다. ‘2008 고용형태별근로실태조사보고서’(노동부, 2009)에서 임금총액이 월140만원 미만인 남성노동자가 전체 남성노동자의 22.8%인 것에 비해, 여성노동자는 53.4%에 이른다. 여성노동자 절반은 한 달에 100만 원 정도의 일자리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고, 80만원미만을 받는 최저임금미만 노동자는 남성(2.2%)의 3배(5%)에 이른다. 숫자는 진실이고, 사례는 증언이다.
사례3] 일식집에서 홀서빙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장님의 막무가내 폭언 때문에 일을 그만두고 싶어요. 한 달 이상 근무해야 월급을 준다고 해서 참고 일은 하고 있는데 당장 나가라고 소리 지르고 다른 직원들 모두 세워놓고 “씨X~X같은 년”이 일도 못하면서 폼 잡고 다닌다고 당장 나가라고 욕을 퍼부어 댔습니다. 여자 동료들도 다 수없이 하루에 몇 번씩 욕을 먹고 종종걸음으로 뛰어다니며 일하고 있습니다.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년”, “목을 비틀어 버린다”는 둥 “확 밟아 버린다” 등 참 어이없습니다. 요식업계통은 내가 싫으면 그만두는 형식이라 월급 받을 동안만 참자 하는 식이지만 너무 분하고 억울합니다. (2009.03.28.)
서비스·판매직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69.4%다. 상담사례를 통해 만난 식당노동자, 마트노동자는 폭언과 욕설, 성희롱이 일상인 공간에서 하루 종일 서서 ‘종종대며’일한다. 한 달만 참자고 버티다가 ‘그만두면 그만’인 삶을 반복하고 있다. 어머니의 퇴직금을 받을 수 없겠냐고 물었던 또 다른 사례에서는 4대 보험, 퇴직금 없이 사장에게 전적으로 종속되어 하루 11시간씩 일하는 여성이 있었다.
사례4] 판촉파견직으로 마트에서 일하다가 일주일 전에 짤렸어요. 이유는 빵(초코파이)를 먹었다는 것입니다. 규정상 스티커 받아서 먹어야 되고 그 장소에서 먹으면 안 돼요. 보안이 별거 아니라고 해서 경위서를 쓰고 끝난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 일을 타 업체 직원들이 말을 만들어서 나를 교체를 하라고 업체에 얘기를 했습니다. 2년이 넘어서 정규직 되는 줄 알고 있었는데 다른 지점에서 일자리가 있을지……. (2009.7.14.)
‘초코파이’를 먹었다는 이유로 해고당하는 것도 가능하다! 마트노동자들은 타 협력업체와의 극심한 경쟁 속에서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업주, 정규직 관리사원, 협력업체, 본사의 이해관계 속에서 혹사당한다.
비정규직 법이 올해도 사회적으로 논란이 됐다. 2년 고용 후 정규직 전환조항을 유예하네, 마네, 대량해고설도 있었다. 전에도 ‘법이 능사가 아니다’라는 관용구였지만 요즘은 법이 더욱 무력하다. 우리가 어떤 종류의 일을 낮게 평가하는지, 어떤 존재를 구별 짓고 어떤 존재를 무시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정규직이 아닌 사람들은 대졸이 아니라서, 비정규직이 남자가 아니라서 됐고, 같은 이유로 여전히 비정규직으로 남아있다. 우리는 결국 연결되어 있는데, 작은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서 ‘책임’이 무겁다.
몇 해 전에 정은임이 방송에서 말했다. “이 세상에 겨우겨우 매달려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 버틴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그 날은 크레인 노동자들이 고공농성을 시작한지 100일째 되는 날이었다. 보이지 않는 삶을 인정해주고, 목소리를 들어주는 것이 법보다 강하다. 식당노동자, 마트노동자... 비정규직 여성들이 눈물 나는 현실 속에서도 단단한 의지로 끝까지 지지 않도록 올해도 고용평등상담실은 의미 있는 저항을 지지하고 다른 대안을 찾아가려고 한다. 꿈틀!
선백미록(신기루) ● 상큼과 시큼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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