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4월호 [민우ing]함께 짓는 맛있는 노동!
[민우ing]함께 짓는 맛있는 노동!
식당여성노동자의 인권적 노동환경 만들기 프로젝트
최진협(나우) ●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
내가 해먹는 밥이라야 고작 출출할 때의 라면, 찬밥을 없애기 위한 김치볶음밥 정도다. 최근에는 건강을 생각해서 ‘집’밥을 해먹겠다고 일주일에 한두 번 고군분투해보지만 역시나 전화한통, 오천 원, 50m만 나가면 전혀 수고로움 없이 맛난 밥을 먹을 수 있기에 내 일상의 밥은 식당에 있다.
‘물수건 보다 못한 식당여성노동자’
민우회사무실 근처 고기집에 가서, 고기를 구워주는 식당여성노동자에게 말을 건넸다. 하루에 열두 시간을 일하고 한 달에 두 번을 쉬고 있다고 했다. 12시간씩 꼬박 13일을 일해야 겨우 하루의 휴일을 얻는 잔인한 노동시간이다. 그 하루의 휴일 역시, 쉼이 아니라 밀린 집안일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내가 식당에서 매일 먹는 그 밥에, 노동 외에는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는 식당노동자의 무거운 일상이 드리워있었다.
출산과 양육의 시기를 지나 특별한 경력을 쌓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중·고령 여성이 다가갈 수 있는 일자리는, 우리가 쉽게 식당을 가는 것만큼이나 식당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식당은 일하는 사람이 열 명도 채 되지 않는 작고 영세한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10시간이 넘는 장시간근무와 최저임금을 밑도는(혹은 100원도 초과하지 않고 딱 최저임금만 지불되는) 낮은 임금, 제대로 된 휴가일수가 보장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한 저임금에 연유하여 자발적으로 사회보험가입을 꺼리거나 사회보험을 보장해주지 않는 경우도 많고 일일근로, 파트타임이 상시적으로 이루어지면서 불안정한 노동환경을 만들게 된다. 더욱이 중·고령여성노동자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낮밤을 뒤집는 12시간의 야간노동이 확대되고 있어 식당노동자의 건강권은 더욱 위협받고 있다. 특히, 이러한 기본적인 고용조건 외에 고객에 의한 반말과 성희롱, 인격적인 무시 또한 심각한 수위에 다다라 식당노동자의 노동권을 흔들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먹는 밥의 위생상태만을 눈으로 쫓을 뿐 식당노동자의 노동은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구청에서 수시로 물수건 위생 실태를 점검할지언정 정작 식당노동자의 인권실태는 파악하지 않으니, ‘물수건 보다 못하다’는 식당노동자의 자조는 오히려 우리를 향해 되묻고 있다.
당신이 먹는 밥은 어떤 노동환경에서 만든 밥입니까
이제 식당만 가면 보이지 않았던 식당여성노동자의 노동이 내 눈에 들어온다. 이른 아침, 근처를 지나며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던 식당여성노동자가 퇴근 후 늦은 회식자리로 찾은 그곳에, 여전히 지친 어깨로 홀을 지키고 있는 모습은 망부석을 보듯 힘들다. 손님이 많아질수록 신경질적으로 눌러대는 고객들의 테이블벨소리, 잔반을 없애기 위해 조금씩 담겨진 반찬 때문에 반찬만 수차례 추가하게 되는 손님들, 고기도 굽고, 밥도 볶아주고, 온돌방좌식의 식당인 그곳에서 온통 무릎을 굽혀 일해야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무릎관절을 꾹 잡고 힘겹게 일어서는 누군가가 떠오르고 만다. 손님이 없으면 없는 대로, 물병에 물을 담고, 밥을 퍼놓고, 반찬을 담아놓고, 사장의 심부름까지 해야 하니 짬을 내어 쉬는 것도 오히려 일이 되는 그 곳에서 식당노동자들이, 내가 먹는 밥을 짓고 있다.
달콤한 초콜릿과 신나는 축구공의 이면에 바다건너 어린아이의 13시간 노동과 저임금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초콜릿이 쓰디쓰고 축구공이 더 이상 신나지 않았던 것처럼, 내가 먹는 밥의 이면에 존재하는 식당여성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나의 밥 한 끼를 쓰게 한다.
한마디 말이 만드는 맛있는 노동!
밥을 해주는 일은 으레 ‘엄마’의 일이였기에, 반찬투정만 익숙했지 엄마가 해준 밥에 대한 ‘맛있다’, ‘고맙다’는 말은 낯선, 혹은 불필요한 일이었다. 밥을 하는 엄마의 노동에 대한 철저한 저평가가 숨어있었던 게다. 그러나 그 일에 대한 저평가가 각인되어 있으면 그 일을 하는 사람에 대한 존중도 기대하기 어렵기 마련이다. 밥이란 먹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이였고, 밥이란 매일 먹어야만 하는 필수조건이기에 그의 노동에 대한 평가는 무엇에도 뒤질 수 없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이제라도 내가 먹는 밥이 누군가의 ‘노동’이 되었을 때, 그 노동에 대한 정당한 평가와 인정을 담은 말을 통해 그 노동을 맛있게 만드는 실천을 시작해보자.
그런 실험이 있었다. 어떤 밥에는 듣기에 참 행복한 말들 ‘사랑해, 고마워’를 이야기하고, 어떤 밥에는 ‘짜증나, 이런XX’등 욕과 악질적인 말을 한동안 하는 실험이었는데, 결과는 놀라웠다. 행복한 말을 들은 밥은 하얗고 구수하게 발효가 되고, 한쪽은 악취가 날정도로 까맣게 썩어버리는 거다. 사람의 말은 그렇게 큰 파장을 갖는다. 그것이 밥이 아니라, 서로에게 닿을 경우 더욱 놀라운 힘이 만들어진다. 예컨대, 식당노동자에게 고객이 던지는 반말은 식당노동을 절반이하의 가치로, 욕설은 그 노동을 쓰디쓰게, 성희롱은 역한 노동을 만들어 참담한 노동환경을 형성하게 된다. 그러나 존중을 담은 호칭과 말투, 먹고 난 뒤의 감사함, 인정을 표현할 때 식당노동자의 노동은 비로소 하얗고 구수한 인권적 노동환경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식당노동자의 맛있는 노동을 위해 모두의 실천이 함께 필요한 이유다. 인권적인 환경에서 만들어진 것을 공정하게 소비하는 것이 우리를 기쁘게 했던 것처럼, 식당여성노동자의 인권적인 노동환경을 만들기 위한 나의 작은 실천이 맛있는 노동환경을 만들어 우리가 먹을 그 밥을 더욱 건강하게 할 것이다.
최진협(나우) ● 취사에서 보온으로 전기밥솥의 ‘탈칵!’하고 넘어가던 그 소리가
너무 아름다워 우리 모임을 ‘밥소리’라 지었었다.
밥소리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라고 생각했던 그 날들에 친구들이 그립다. 밥소리, 힘내라!
맛있는 노동!
여러분과 함께 짓고 싶습니다
하나, 월급이 최저임금보다 많기는 한지, 듣도 보도 못한 근로계약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휴일이 이렇게 적어도 되는 건지, 일하다 아프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식당여성노동자가 스스로 고용환경을 점검해볼 수 있는 ‘식당여성노동자의 인권길라잡이(가)’를 드립니다. 식당에서 일하시는 본인도 좋고, 식당에서 일하는 엄마, 이모, 언니, 친구, 친구어머니, 옆집 아줌마, 내가 가는 단골식당에서 일하는 분에게 드리고 싶은 분도 연락주세요. 팍팍 드립니다. 더불어, 식당에서 일하면서 겪게 되는 부당함(해고, 차별, 임금체불 등)에 대한 상담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언제든, 연락주세요.
두울, 식당노동자의 맛있는 노동을 위한 감칠맛 나는 고객의 말. 말. 말! 인권적인 노동환경에서 만들어지는 밥- 당신과 상상하고, 당신과 짓고 싶습니다. 이야기를 나누어주실 분들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여성노동팀 02-737-5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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