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12월호 [기 획 ] 다시 어른아이처럼
▣ 기 획 어 쩌 면 이 건 당 신 의 이 야 기
다시 어린아이처럼
유경희(생기) ● 한국여성민우회 이사
올해 초 생일 모임에서 후배가 내게 한 말, “이제 딱 반 살았네요.”
나는 손사래를 쳤다.
와 닿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오래 살고 싶지는 않았던 거다… 50대 중반의 내 나이.
정확히 55년, 와우! 그만큼 살아냈다. 물론 후배는 내가 느낄 수 있는 부담감을 덜어보려는 의도에서 한 이야기라는 걸 안다. 희끗해진 지 오랜 나의 머리칼은 지하철에서 자리 양보 받는 경우가 심심치않게 일어나고, 어느 자리엘 가도 나이 많은 사람 축에 속한다. 나이 듦을 두려워하거나 싫어하는 것은 아니나, 사회∙문화∙경제가 돌아가는 장(場), 여기저기서 일깨워주는 숫자에 대한 부담감, 나이 듦의 무게가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50대 또래 친구들을 만나면 대화 내용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여기저기 아프다는 것, 여행, 그리고 자식 떠나보낼 걱정들.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팔이 안 올라가 병원엘 가니 오십견이래, 무릎관절이 안 좋대, 눈이 침침해서 돋보기 없이는 신문도 못 봐. 난 왜 이리 갱년기가 오래가는지 몰라.”
서로 질세라 아프다는 이야기에 열을 올린다. 그러고는 이제 ‘살림과 양육’ 이란 여성살이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훨훨 시공간을 돌아다니고 싶은 욕망을 드러낸다.
마지막으로 놓지 못하는 주제는 자녀에 대한 책임감인데 결혼이든, 독립이든, 자식을 ‘잘 떠나보내는 것’에 대한 염려로 애닳아 한다. 그 중 몸이 말하는 건강 수위에 대한 관심과 나름의 처방이 최우선 순위다. 몸이 온전해야 여행도 가고 자식 뒷바라지도 할 수 있다는 거다. 그만큼 몸의 중요성을 자각하는 나이라 할까.
나 역시 오십대에 들어서면서 사십대와는 확연히 다른 몸의 상태를 느꼈다. 40대 후반에 갑자기 찾아온 허리 디스크, 완경(폐경)을 전후하여 몸 곳곳에서 내는 아우성의 강도가 달라졌다. 툭하면 담이 걸리고, 혈액 순환이 안 되어 잘 붓는 데다, 눈의 피로도는 높아져 시시때때로 눈물을 쏟는다.
얼마 전엔 책읽기용과 컴퓨터용 돋보기를 따로 장만했다. 의사들은 당연하다는 듯 ‘퇴행성’ 을 강조했다. 그래서 내가 내린 몸에 대한 결론은‘아프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 느긋하게 살살 달래가며 살아야지!’이다. 그런데 이건 웬걸 마음의 소리 또한 만만찮게 시끄럽다.
나는 누구인가? 이제까지 잘 살아왔는가? 내가 원하는 삶의 그림은? 알고 보니 그 시끄러움은 보다 집중하여 ‘나’ 를 만나는 소리였다. ‘나’를 중심에 놓고 돌아보는 과정에서의 혼돈이었다. 스스로 이전의 삶을 해석해 보고 아쉬워도 하며, 다가올 미래를 긍정하기도 하고 한껏 기대도 가져본다. 헌데 마음 한쪽에서 일어나는 알 수 없는 불안감. 그 모호함의 정체는 무엇인지. 혹 나이 들어감에 대한 불안인가? 찬찬히 잘 들여다보니 그건 나이가 주는 불안감이 아니었다. 또 다른 삶의 전환점에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는 데 따르는 긴장감, 바로 그것이었다. 지금까지의‘나’와 다른 모습의‘나’를 만들어가려는 데 따르는 자연스러운 감정이었다. 여성으로 살기 55년, 보다 여유로움으로 사소한 일상에 관심을 기울이며, 자신에게 우선순위를 두는 너그러움을 실천하는 나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지난 2년 반, 나는 휴식이 있는 외도를 했다.
아주 특별한 나만의 즐거움을 찾는 아티스트 데이트!
그건‘줄리아 카메론’의 말대로 자신의 창조적인 자아와의 데이트라 하기에 충분했다. 동네 구민회관에서 오랜 꿈이었던 수채화를 만나고 목공 작업을 시도하였으며, 틈틈이 동글동글 포근한 발도르프 인형 만들기에 도전하였다. 아르쉬지(수채화용지)와 물감, 나무와 천을 매개로 한 다양한 손작업으로 머리는 가벼워졌고, 손은 뿌듯하였고, 마음은 더 없이 풍요로웠다. 새로운 나의 발견으로, 오묘한 충족감으로 신이 났다.
하.지.만. 휴식의 기간이 길어지면서 내 안에는 갈증이 생겨났다.
다른 질문이 ‘스멀스멀’올라왔다. 내게 물었다. ‘원하는 게 뭔데?, 어떻게 살고 싶은데?’
곧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음…. 사람들을 만나고, 공부하고,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함께 생각하고, 그 과정을 즐기고, 의미 있으되 재미나는 뭔가를 만들어 내는 것들을 하고 싶다.’
꽤나 긴 여성 운동의 과정에서 내가 얻은 키워드는 관계, 열정, 변화다. 내 삶을 채워간 귀한 경험이며, 자산으로 남아 있기에 가능했던 질문과 답이다. 스멀스멀의 범인은 여성 운동이었다!
다시 시작이다!
50대 중반에 다시 길을 나선다.
혼자는 살 수 없기에, 관계의 소중함을 알기에, 배움에의 욕망이 있기에, 세상 변화에 대한 호기심의 발동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 ‘생기랑마음달풀’을 만들어 내는 힘이 되었다.
만남과 소통의 공간, 조금은 가볍게 출발하려 한다. 놀이처럼.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시작하려 한다. 니체의 말처럼.
“어린아이는 순진무구요,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 놀이, 스스로의 힘에 의해
돌아가는 바퀴이며 최초의 운동이자 거룩한 긍정이다.”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이렇게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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