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호 [나의 삶 나의 이야기] 기억으로 그리는 아빠에게
■나의 삶 나의 이야기
기억으로 그리는 아빠에게
문혜주(베짱이)■한국여성민우회 회원
아빠, 아빠를 불러본 지가 언젠지 기억조차 나질 않네. 꿈에서조차 만나지 못해 사진을 보면서 아빠 얼굴을 익히는 딸이지만, 아빠와 함께한 시간은 십년도 채 되지 않는, 그마저도 너무 어릴 때라 조각난 헝겊을 기우듯 아빠를 기억해내는 딸이지만 꼭 한 번쯤 아빠에게 긴 이야길 하고 싶었어.
아빠와의 추억들
오빠와 두 언니 뒤로 내가 태어났을 때, 아빠는 실망해서 날 보지도 않았다지? 아들일 거라는 주위 사람들 말에 내심 기대하고 있어서 말이야. 하지만 ‘내리사랑’이라고 이내 날 제일 예뻐했다고 했어. 아빠가 술을 마신 날 밤이면 어김없이 우리 사 남매는 나란히 앉아 혀 꼬인 훈계를 들어야 했고, 목청 높여 대답을 하지 않는다고 벌도 섰지. 그땐 그게 참 싫었는데, 나도 아이를 키워보니 네 명을 주르르 세워놓으면 뭘 시키도 재밌었을 것 같아. 또, 개고기에 비둘기, 메뚜기까지, 가리지 않고 잘 먹어야 튼튼하다며 어린 우리들에게 먹게 했지. 하지만 정말 먹고 싶었던 홍시나 참외 속은 늘 아빠의 몫이었어. 달콤하고 보드라운 홍시는 엄마를 졸라서야 남몰래 겨우 하나 맛볼 수 있었고, 참외는 흰 껍데기만 우리 차지가 되었지. 그 때문인지 난 지금도 참외는 잘 먹지
않아.
아빠, 아빠가 아파서 누워만 있을 때 생각나? 좋아하던 술을 돌아가시기 전 날까지 드셨잖아. 밥은 못 먹어도 술은 약처럼 챙겨 드셨지. 빨대를 꽂아서라도 말이야. 아빠는 소주를 참 달게 마셨어. 옆에서 술병을 붙잡고 있다 보면 어린 내 눈에도 그 소주가 얼마나 달게 보이던지, 지금까지도 내 입가에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입맛을 다시게 만들 정도야.
아빠가 돌아가시던 날도 기억해
그날 저녁, 언니들과 목욕탕에 다녀오면서 늘 사먹던 열 개들이 미니 약과를 사먹었어. 웬일로 언니들이 남은 하나를 내게 양보해서 날아갈 듯 기뻤지. 약과를 막 꺼내 먹으려는데, 고모가 헐레벌떡 뛰어왔어. 놀라서 집으로 달려왔지만 이미 아빤 눈을 감으셨지. 난 어리다는 이유로 혼자 다락방으로 보내졌어. 불도 켜지 않은 다락방에서 ‘이제 아빠가 없다’는 사실에 울었어. 울고 또 울다가 눈물이 잦아들즈음, 배가 고팠어. 아주 많이 슬픈데 배가 고팠어. 이런 상황에서 배가 고픈게 너무 말이 안 돼지만. 어린 나에겐 식욕은 슬픔보다 컸어. 다락방은 어두웠고 작은 창문으로 달빛만 비추고 있었어. 내 손엔 아까 먹지 못한 약과가 들려있었어. 울면서 약과를 맛있게 먹었어. 슬펐지만 약과는 달콤했어. 다 먹고나서 죄책감에 또 울었어. 배가 부르니 또 울 수 있었어. 아빠의 염을 할 때도 난 혼자 다락방을 지켰어. 삼일째 되던 날엔 집 앞에서 세발자전거를 타고 놀았어. 누구도 나에겐 역할을 주지 않았어. 아마 사람들은 나를 보며 철 모르는 막내딸로 여겼겠지? 그래도 내 나이 무려 아홉 살이었는데. 아빠를 산에 묻을 때, ‘이제 정말 마지막이구나’ 슬퍼서 또 울었어. 어느 정도 울었더니 나는 더 눈물이 나오지 않는데 사람들은 계속해서 울고 있었어. 명색이 아빠 딸인데 안 울면 이상하다는 생각 할까 봐 거짓 울음을 울었어. 아홉 살은 그렇게 영악할 수도 있는 나이야. 그 후론 잘 울지 않는 아이가 되었어.
아빠와 함께 사라진 일들
아빠가 돌아가시고 달라진 것도 많았어. 새치가 많은 아빠가 학교에 찾아오면 “너네 할아버지 오셨다!” 외치는 친구들 말에 창피 할 일도 없어졌고, 맞고 온 오빠를 위해 득달같이 달려가 혼내주는 사람도 없어졌고, 더 이상 팔 아프게 아빠의 팔 다리를 주무를 일도 없어졌고, 술 심부름 할 일도 없어졌어. 아빠 머리맡에 앉아 소리 높여 신문이나 책을 읽을 일도 없어졌고, 우리들 졸업식 사진, 결혼식사진에 아빠의 얼굴이 없어졌고, 가족 사항에 아빠 이름을 적는 일도 없어졌어.
언젠가부터 아빠가 들어간 노래도 부를 수 없었어. 동요엔 왜 이리 아빠가 들어간 노래가 많은지… 내가 노래를 부르면 사람들이 '맞아, 쟤는 아빠가 없었지' 하고 잠시라도 생각 할까봐 부르기 싫었어. 아빠와는 달리 술 담배 안 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서나서야 나의 아이를 위해 아빠가 들어간 노래를 마음껏 부를 수 있었어. 내 아이에겐 아빠가 있으니 노래를 부른다한들 아무것도 거리낄게 없었어. 그래서 참 편했어.
가리지 않고 아무노래나 생각나는대로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이.
엄마가 아직까지 하는 어릴 적 이야기가 있어. 어린 내가 엄마는 일하고 아빠는 누워서 TV 보고 있을 때 슬그머니 다가가 “아빠, 내가 노래 하나 불러드릴게요.” 말하고는 문 뒤로 가서 고개만 빼꼼 내밀고 “엄마는 개미고요~ 아빠는 베짱이래요~” 노래를 부르고 달아났다는 얘기를. 언니,오빠가 그랬으면 아빠가 쫓아가서 혼냈을텐데 막내 꼬맹이가 그러니 “허허, 참!” 하며 아무 말도 못 하고 황당해 했다고. 그랬던 내가 이제는 개미 같은 남편을 둔 아빠를 닮은 베짱이가 되었네. 우리 아이들도 언젠가 나처럼 노래를 불러주는 게 아닐까?
아빠…, 오늘도 그냥 액자 속에 가둬 놓을게. 그리고픈 모습으로만 마음 속에 새겨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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