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4월호 [생생한 시각] '해적 방송', 해직 언론인과 파업 언론인들이 만드는 "착한 방송"
▣ 생생한 시각
‘해적 방송’, 해직 언론인과 파업언론인들이 만드는 ‘착한 방송’
박영선 ● 언론개혁 시민연대 대외협력국장
요즘 장안에 ‘해적’이 난리입니다.
예전엔 해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어린 시절 동화책으로 만났던 [피터팬]의 ‘후크 선장’과 캐리비안의 해적 ‘조니뎁’이었는데요. 요즘은 아이들 동화책을 읽어주면서 다시 만나고 있습니다. 어른이 된 후로,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의 매력적인 배우 ‘조니 뎁’을 통해 몇 년에 한 번씩 극장에서 해적을 만납니다.
국내에서 ‘해적’과 관련한 인물로는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납치됐다 살아난 석해균 선장과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반대를 위해 ‘해적’ 피켓을 들었던 고대녀로 더 유명한 ‘김지윤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제주 강정마을을 지키기 위한 피켓시위 문구가 해군이 해적으로 표기된 것에 대해 보수매체 ․ 보수단체들의 집중 공격을 받았는데요.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 없이 공권력을 동원해 주민들을 짓밟고 구럼비를 폭파하면서까지 해군기지를 강행하는 행태를 해적에 빗댄 표현 이었습니다. 이 표현은 주민들이 먼저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즘 유명한 해적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본격적으로 ‘해적 방송’을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해적 방송’의 원래 사전적인 뜻은 방송 면허 없이 전파를 통해 방송을 내보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요즘 전파 없이도 인터넷 팟캐스트, 유튜브 등을 통해 많은 수의 다양한 해적 방송이 줄줄이 생겨날 수 있는 환경입니다. [나는 꼼수다(나꼼수)], [나는 꼽살이다(나꼽살)] [이털남], [희뉴스], [저공 비행] 등이 있습니다. 올해는 팟캐스트와 유투브를 통해 [뉴스 타파], [손바닥 TV], [제대로 뉴스데스크], [파워 업 PD수첩] 등에 '해적 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해적 방송’의 대거 등장에는 지난 해 등장한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의 공로가 가장 컸습니다.
‘나꼼수’는 탄생과 함께 몇 개월 만에 폭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여론을 주도했습니다. 대규모 오프라인 모임에 전국 순회 공연, 해외공연까지 이어지면서 팬클럽까지 만들어졌습니다. 언론인들에게는 일본 쓰나미 이상의 큰 충격이었습니다. MB의 낙하산들이 장악한 방송과 대부분의 언론들이 ‘MB만을 바라보고, MB만을 위한 방송’을 할 때 [각하 헌정 방송: 나꼼수]는 정권의 부정 부패와 사회적 문제를 매회 특종으로 정면 고발하고 파헤친 것입니다. 게다가 유쾌 통쾌한 조롱과 웃음까지 더해 진실에 목말라하는 시민들의 해우소가 된 것입니다.
이에 대한 언론인들의 자성은 기존 지상파 방송이 아니라 축출당한 해직 언론인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명박 정권 들어 해직된 MBC 이근행 PD와 YTN 노종면 기자, 권석재 기자 등 해직 언론인들과 CBS 변상욱 기자, 1인 미디어 미디어몽구, MBC 춘천 박대용 기자, KBS 박중석 기자 등이 뭉쳐 [뉴스 타파]를 시작했습니다. 형식 또한 기존 지상파와 같은 형식의 정규 뉴스 포맷으로 첫 회 50만 명 이상의 조회로 조중동 종편보다 100배 이상의 시청률을 자랑하며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해직된지 4년만에 카메라 앞에 앉은 노종면 기자를 바라보는 언론인들과 시민들의 감회는 신선함이라기 보다는 그동안 해직 언론인들을 잊고 살아온 세월, 그들의 고통을 나눠 갖지 못한 미안함에 눈물이 나왔습니다.
특히 [뉴스 타파]는 그동안 언론에서 눈감고 침묵했던 지난 서울 시장 보궐 선거 당시 선관위의 투표장소 변경 문제와 부실 공사로 강행되고 있는 4대강 사업의 문제점, 제주 강정 특집 까지. 그 외에도 위키리크스의 비밀 문건과 한미 FTA, 이명박 대통령 등 굵직한 문제들을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MBC 노조가 김재철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가면서 탄생한 [제대로 뉴스데스크]의 인기도 만만찮습니다. 유튜브에서 1회 방송분이 60만 명 이상의 조회로 [뉴스 타파]를 뛰어 넘었습니다. 파업에 들어간 기자들이 만들다 보니 MBC의 파업 사태에 대한 기사, 김재철 법인카드 문제 등 파업 상황을 설명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무한 도전]과 [해를 품은 달]까지 방송되지 못하는 초유의 상황이지만 시청자들은 MBC의 파업을 응원하면서 ‘착한 방송’인 [제대로 뉴스 데스크]를 보며 시청 투쟁에 가담하고 있는 것입니다.
MB 특보 출신인 김인규 낙하산 사장 퇴진을 촉구하며 KBS 노조도 3월 5일부터 파업에 들어갔습니다. KBS노조는 그동안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권력을 비호하는데 앞장서 온 KBS뉴스를 반성하고 언론 본연의 비판적인 자세로 강한 뉴스를 제작해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며 [리셋(Reset) 뉴스 9]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권력의 비리 의혹과 국민의 방송 KBS를 청와대에 헌납한 김인규 사장 관련 비위 의혹은 물론 KBS의 파업 상황도 상세히 담는다고 합니다. YTN도 이에 질세라 낙하산 사장 연임을 규탄하며 파업에 돌입했고 연합뉴스, 국민일보, 부산일보 등 방송사뿐만 아니라 신문사까지 파업 열기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한결 같이 언론인들은 펜과 마이크, 카메라까지 내려놓으면서 “부끄럽다” “국민을 향한 언론”으로 다가가겠다며 반성과 참회의 고백을 담아 방송에서는 보도하지 못했던 ‘해적 언론’을 앞다투어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명박의 언론 장악과 낙하산 사장의 폐해가 어느 정도인지 기존 뉴스와 파업 뉴스를 비교 해본다면 극명한 차이가 납니다. 그동안 기자들이 제대로 방송 보도를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못해왔던 것을 보여주는 역사의 현장이자 반증이기도 합니다.
올곧은 언론인들이 장비도 없고 예산도 없는 허름한 곳에서 마치 해적판을 만들 듯이 방송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바로 2012년 대한민국 언론의 현주소입니다.
해직 언론인들과 파업 언론인들이 이제라도 각자의 현업으로 돌아가 파업 당시 만들었던 영상을 전파를 타고 방송 뉴스로 볼 수 있길 꿈꿔봅니다. 이를 위한 최선의 방안은 낙하산 사장의 퇴진과 해직 언론인들의 복직 ․ 징계 철회가 첫 단추일 것입니다. 이렇게 장안에 화제가 된 ‘해적’은 나쁜 해적도 있지만 국민을 위한 ‘의적’들이 ‘착한 방송’을 만들 수 있다는 것 잊지 말고 ‘해적 방송’을 응원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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