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8월호 [민우ing] ‘좋은 일터’를 제공하는 ‘참 좋은 음식점’을 만들자
▣ 민우ing
‘좋은 일터’를 제공하는 ‘참 좋은 음식점’을 만들자
- 차림사 노동환경 변화를 위한 지역 조례운동을 준비하며
문성훈(나은) ·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
2010년부터 시작된 민우회의 ‘식당여성노동자’에 대한 관심 덕(?)에 식당에 가면 사실 밥 먹는 것보다 관찰에 집중하게 된다. 식당에 들어서면 차림사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노동강도는 얼마나 될까, 휴일은 어떻게 될까, 휴식 시간은 얼마나 있고 쉴만한 장소가 따로 있나, 일하는 분위기나 사장 스타일은 어떨까?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본다. 2011년에 민우회가 전국에서 35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식당노동자 실태조사 경험 때문이다. 당시 실태조사를 통해서 우리는 훨씬 구체적인 소중한 자료들을 얻을 수 있었다. 하루 평균 11.6시간의 노동, 한 달에 쉬는 날은 보통 이틀에서 사흘 정도. 그에 비해 임금은 노동법 기준으로 계산해 보니 시급으로 따지면 최저임금도 안 되는 현실. 그래서 올해는 본격적으로 이런 현실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사업계획을 짰다.
카페라떼 나오셨습니다. 손님
아마 대부분 높임법을 잘못 썼다고 생각하겠지만, 트위터에선 이에 대해 촌철살인이라 할 만한 지적이 유행했다. “카페라떼가 알바생 시급보다 비싸기 때문입니다.” 최저임금이 내년에는 시급 4,860원이 된다. 한 시간 노동해도 식당 밥 한 끼 값, 커피 한 잔 값이 안 되는 것이 지금 한국사회의 현실이다.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각종 노동법 등 노동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들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이 법규들은 현실에서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작년 실태조사를 통해서도 확인했다. 식당노동자(차림사)들의 노동환경은 영업주들이 제반 노동법규만 잘 지켜도 많이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단시일 내에는 쉽지 않다. 영세사업장일수록 노동조건이 좋지 않은 경향을 보이기 마련인데 음식점업은 영세 업종의 대표격이다. 누구나 쉽게 창업할 수 있다고 여겨지지만 폐업 역시 잦다. 실제 힘들게 일하는 것은 사장이나 노동자나 별반 차이가 없는 경우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는 노동법 준수 캠페인이나 강력한 단속과 처벌같이 이른바 “채찍 휘두르기”만으로는 쉽게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대화와 소통을 바탕으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것이 바로 (가칭)‘상생하는 마을 공동체를 위한 - 참 좋은 식당 조례(이하 참 좋은 시당)’(가)다. 최근 각 지자체마다 대형마트 휴무를 규정하는 조례를 제정하면서 소규모 상공인들의 생존권 보장이 화두가 되고 있다. 지역 차원에서 상생-더불어 살기를 모색하자는 거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 태도로 조례를 준비했다. 서울 마포구의 경우에만 음식점 업체수가 3,505개로 관내 사업체의 12.1%를 차지하고 종사자 수도 1만 2천 명에 달한다. 이 정도면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 음식점을 이용하는 이들은 대부분 그 지역 주민이거나 그 지역에 직장을 가진 사람이고, 식당 차림사들 역시 대부분 지역 주민이다.(노동시간이 길기 때문에 거주지와 가까운 식당에서 일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사업주 역시 그 지역 주민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음식점업은 지역 내에서 영업과 고용, 소비가 이루어지고 그 이익은 지역 내에서 순환되기 때문에 지역 차원에서 문제를 풀어가려는 접근이 유효하다.
즐겁게 일할 수 있어야 좋은 식당
“차림사(식당노동자)에 대한 기본적인 노동기준을 충족하는 식당을 지원하자.”는 것이 ‘참 좋은 식당’(가) 조례의 핵심 내용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한 ‘좋은 식당’의 기준은 맛이 좋은지, 서비스가 좋은지, 친절한지, 값이 적절한지, 위생적인지 등이었다. 하지만 이것으론 부족하다.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즐겁고, 정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일하는 지도 ‘좋은 식당’의 기준에 포함되어야 한다. 물론 지역 차원에서 음식점을 지원하는 기존 제도들이 있긴 하다. 대표적인 것이 모범음식점 제도이며, 지자체 별로 관광진흥의 목적으로 다양한 지원제도들이 있지만 노동자 처우까지 고려하는 조례안은 우리가 마련한 것이 유일하다.
만약 이 조례가 만들어진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지역 주민과 전문가들이 주축이 되어 지역 내의 음식점을 심사한다.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지, 건강한 먹을거리를 제공하는지, 종사자와 식당 이용자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환경을 제공하는지를 따져 ‘참 좋은 식당’으로 선정한다. 선정된 음식점은 지역차원의 홍보와 더불어 매출 증대에 도움이 되는 각종 인센티브를 받게 된다. 이렇게 지정되는 음식점들이 처음에는 얼마 되지 않을 수 있다. 이 지원책이 자리를 잡아가면 좋은 일터를 만드는 흐름에 동참하는 음식점들 역시 늘어갈 것이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차림사들의 노동환경이 바뀌어 나갈 것이다. 음식점들이 영세하기 때문에 노동기준을 충족하기 어렵지 않냐는 볼멘소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식당 영업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가장 큰 고민은 잦은 인력 교체였다. 열악한 노동조건은 잦은 이직을 낳고 이는 영업에 마이너스로 작용한다. 좋은 일터를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음식점의 지속가능성의 바탕이 될 것이다.
조례제정운동에 관심을
상반기 내내 민우회 김원정 정책위원을 필두로 고양파주여성민우회와 민우회 여성노동팀이 함께 조례안을 준비해 왔다. 음식점 관련 법령과 제도, 각 지자체 조례들을 검토하며 조례의 내용과 취지를 구성해 왔다. 초안을 구성하여 법률전문가·지자체 의원·관련 공무원·식당 영업주들의 자문과 조언 역시 구했다. 하반기에는 이 내용을 세상에 내어놓고 제도화하는 것이 목표다. 이 조례의 의미와 내용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도록 홍보물을 발간하고, 9월 초에는 토론회를 개최한다. 민우회가 소재하는 지역에서는 민우회가 주축이 되어 조례제정운동을 펼쳐 나가겠지만, 이 조례의 취지와 내용에 동의하는 이 누구라도 자신의 지역에서 운동을 펼쳐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친환경 무상급식 조례, 학생인권조례 등은 지역을 기반으로 조례제정운동이 펼쳐졌고 그 과정에서 조례가 지향하는 가치를 널리 알릴 수 있었다. ‘참 좋은 식당 조례’ 역시 제정운동 과정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좋은 일터’이며 좋은 일터가 더 좋은 세상을 만든다는 가치를 업종과 지역을 넘어 전 사회적으로 퍼뜨릴 수 있었으면 한다.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