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겨울 [인터뷰] 내 DNA속에 얼마나 많은 꿈과 희망과 욕망과 좌절이 있었을까 - 책 <쩐쟁의 기억 기억의 전쟁>의 저자 김현아를 만나다
편집자 주 : 김현아 선생님은 1998년부터 2001년까지 학살이 벌어졌던 마을들을 답사하고 그 결과를 <전쟁의 기억 기억의 전쟁>, <전쟁과 여성>이라는 두 권의 책으로 펴냈다. <전쟁의 기억 기억의 전쟁>은 베트남 전쟁에서 벌어졌던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을 처음으로 한국사회에 문제제기한 책이었다.
1998년이었다. 소수자집단의 목소리를 통해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열린 네트워크 나와 우리’가 만들어진 것은. 그리고 우연히 피스보트(peace boat, 아시아를 비롯한 지구의 각지를 배로 항해하며 교류하는 비영리NGO)에 참여하여 일정 중에 한국군에 의한 학살이 있었던 베트남의 마을에서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베트남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한국에서는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이익만 회자될 뿐, 한국군에 의한 학살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였다. “그 분은 왜 그런 이야기를 했을까? 그런데 왜 우리는 전혀 모르고 있지? 가서 이야기를 들어보자”
죽은 사람들 이름하고 나이가 쭉 있었어요.
Q. 처음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충격적이셨을 것 같아요.
A. 처음에는 되게 낯설었죠. 충격이라기보다는 ‘뭐지?’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죠. 마을에 들어가면 그 마을에서 제일 잘 보이는 곳에 위령비나 증오비가 있었어요. 거기에는 공식적인 문장으로 몇월 몇일에 한국 청룡, 남조선군대 혹은 박정희군대가 와서 우리 마을에서 몇 명을 학살했다는 말이 있었고 죽은 사람들 이름하고 나이가 쭉 있었어요. 처음에 저는 그것들을 보면서도 ‘왜 죽였지? 이 사람들이 죽을 만한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들을 했어요. 그래서 제가 끊임없이 질문을 했어요.
그들이 나에게 보여준 ‘예의’ 같은 것들.
베트남 사람은 굉장히 예의가 있어요. 손님을 대접하는 일에 마음을 다하는 사람들인데. 맨 처음에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면 논에서 일을 하시다가 오세요. 일단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으시고 정갈하게 앉으시고 나서 차를 내오면 이야기가 시작돼요. 저는 그 때 기록자였기 때문에 열심히 질문하고 기록하는 일들을 하고 있으면 파파야가 나와요. 파파야를 집어먹고 나면 손 닦는 물을 가져다주세요. 내가 손을 닦으면 수건을 건네주고. 나는 그게 결국 내가 베트남 일을 할 수 있게 된 원동력이었다고 생각을 하는 거죠. 우리 엄마를 죽인 일본군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러 어떤 일본의 낯선 청년들이 나한테 왔다면 나는 어떤 태도였을까 나중에 질문하게 되는 거죠. 나는 처음엔 그런 것까지 생각을 못 했지만, 그들이 낯선 방문자한테 대하는 그 따뜻하고 다정한 마음을 봤어요. 더군다나 한국에서 온 아무것도 아닌 여자잖아요. 기자도 아니고 방송도 아닌데도 마음을 다해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나한테는 처음으로 인상적이었던 일인 것 같아요. 나중에는 내가 질문을 했어요. “제가 이상하지 않으세요? 저 좀 밉거나 싫지 않으세요?” 그러면 아들딸을 다 잃은 할머니가 쳐다보면서 “너는 그때 태어나지도 않았잖아. 네가 밉지는 않아. 그렇지만 당시에 한국군이 온다면 물어보고 싶어. 왜 죽였는지.” 그런 얘기를 해요. 나한테는 그런 것들이 나를 추동한, 움직인 동력이 됐던 거죠. 그들이 보여줬던 인간에 대한 예의 같은 것들.
Q. 얼마 전에 로드스꼴라(김현아 선생님이 대표교사로 계신 여행대안학교) 친구들과 함께 베트남에 다녀오셨다고 들었어요. 로드스꼴라 친구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요?
지금의 청소년들한테는 3·1운동이나 동학운동이나 이 일이나 너무 흘러간 과거의 이야기인 거잖아요. 가기 전에 공부를 많이 했었고 책도 많이 읽었어요. 사실 제일 중요한 건 한국에서 읽으면 그냥 ‘그랬나보다’, ‘비겁한 역사가 있구나’ 이런 생각 정도를 하게 되는데 가서 위령비를 보게 되거나 생존자나 피해자와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면 굉장히 달라지는 것 같아요. 300명, 68명 이런 뭉뚱그려진 숫자가 아니라 알 수 없는 폭력에 의해서 휘둘리는 그런 개인의 이야기를 만나게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이 친구들도 당혹스럽죠. 실제 겪었던 이야기를 듣게 되면 울기도 하고 꿈도 꾸고 그래요.
전쟁이란 게 모두에게 슬픈 건 아니거든요
그 사람들한테는 삼십년을 덮어두었던 얘기죠. 너무 큰일을 집집마다 다 겪었기 때문에 거대한 상처를 누구 하나 터트릴 수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듣는다는 것, 누군가가 겪었던 굉장히 참혹한 기억에 깊은 공감을 하면서 듣는다는 것, 그것은 고통의 연대죠. 다른 사람의 깊은 슬픔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만이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이상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우리 아이들이 참 잘 들었어요. 정말로 열심히 마음을 다해 들었거든요.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참 훌륭하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실질적으로 힘이 되는 이런 일들을 하긴 아직 미미한 나이들이지만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한 키워드가 되지 않을까, 고통의 공감과 연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하는 거죠. 그리고 분명하게 ‘전쟁은 일어나면 안 되는 거구나’라는 생각을 뼈저리게 하게 되는 거죠. 전쟁이라는 게 모두에게 다 슬픈 게 아니라는 것도 알게 돼요. 어떤 사람들한테는 돈을 벌 수 있는 기회, 자기의 명예를 드높일 수 있는 기회, 권력을 쥘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고 전쟁이 모두에게 다 슬픈 거라면 당연히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김현아 선생님은 베트남 전쟁과, 한국전쟁을 겪은 여성들을 인터뷰하여 전쟁을 여성의 관점으로 다시 바라본 <전쟁과 여성>이라는 책을 쓴 이후에 여성들의 흔적을 찾아 답사하고 그녀들의 삶, 꿈, 성취를 담은 책 <그 곳에 가면 그 여자가 있다>, <그녀들에 대한 오래된 농담 혹은 거짓말>을 쓰셨다. 역사 속에서 드러나지 않았거나 왜곡되었던 난설헌, 사임당, 나혜석과 같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여성의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는 작업이었다.
Q. 여성들을 만나면서 어떤 감정과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해요.
나는 재밌었던 게 전쟁이야기를 들으러 갔는데 오히려 당시의 시대상을 읽을 수 있는 거 그런 점이었던 거 같아요.
예를 들어서, 50년대에 남편이 좌익 활동을 했는데 부인이 그걸 몰라. 남자와 여자는 정확하게 자기 역할이 있고 남자는 밖에 나가서 뭘 하든지 간에 그걸 공유하지 않는 거죠. 결국은 남편이 왜 죽었는지 모르는 거예요. 저녁밥을 먹고 나갔다가 새벽에 들어와도 그러려니 하면서 사는 거죠. 겨우 몇십년 전인데 그 당시 가족이라는 개념이 지금과 얼마나 다른가. 그리고 인터뷰가 전쟁이야기에만 국한되지 않아요. 어차피 생애사가 다 나오는 거잖아요. “할머니, 어렸을 때 꿈이 뭐였어요?” 그런 게 없는 거지. 왜냐하면 우리 동네에 모든 언니들이 열아홉이 되면 시집가서 애 낳고 사는 거야. 다른 롤모델이 별로 없어. 그러니까 나도 그렇게 하는가보다 하고 사는 거죠. 그래서 지금처럼 “얘야, 너는 이다음에 뭐가 되고 싶니?”라고 물어보는 사람도 아무도 없고. 여성의 역사가 읽혀지는 것이 굉장히 난 재밌었어요. “할머니, 키스는 해요?” 물어보면 “어우, 더럽다. 남의 혀가 내 입에 들어오는 게 나는 싫다” 이런 이야기도 하시는데 키스에 대한 가장 새로운 정의를 할머니들에게 듣는 거잖아요. 그런 것들이 흥미로웠던 것 같아요.
많은 여자들의 등을 밟고, 밟아서 여기에 있다
Q. 여성의 역사와 기억을 기록하는 작업들이 선생님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내 몸에 집적된 기억을 찾아가는 거? 난 정말 그렇게 생각을 하는데, 우리 엄마의 꿈과 희망이 나였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 엄마가 나를 낳고, 자기 인생에서 하고 싶었지만 해보지 못했던 것을 ‘너는 하길 원해’라는 그 꿈과 희망이 나에게로 건네져서 내가 오늘날 이런 삶을 산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우리 엄마는 우리 엄마의 엄마의 꿈과 희망이었을 거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외할머니가 나는 지금 이렇게 살고 있지만 너는 그렇게 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기 딸을 키웠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나는 굉장히 많은 여자들의 등을 밟고, 밟고, 밟아서 여기에 있고. 그래서 나는 굉장히 잘 살고 있고, 왜냐하면 나는 교육도 받고 글도 쓸 줄 알고 발언도 할 수 있고 내 언어도 있잖아요. 이건 정말 그 시대에서 열심히 살아줬던, 비겁하지 않고 용감하게 살아줬던 여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내 DNA에 그게 있는 것이고, 나를 안다는 것은 내 DNA를 이해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내 DNA속에 얼마나 많은 꿈과 희망과 욕망과 좌절이 있었을까를 내가 이해하고 해석했을 때 내가 어떤 삶을 살아야 되는가에 대한 답이 나온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나한테 그 작업(여성의 역사와 기억을 기록하는 작업)은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나는 허난설헌도, 그리고 나혜석도 나에게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녀들을 보는 것, 그것이 나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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