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노동상담]상상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자
상상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자 서민자 : 여성노동센터 상담부장 방문상담의 경우 내담자 혼자 오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7월 초 어느 날은 좀 이례적으로 여성노동자 4명이 한꺼번에 민우회를 찾아 왔고, 그녀들이 말하는 상담 내용이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어서 그런지 기억에 오래 남는다. "여자화장실 안에 뭔가 깜박거리는 게 있는 거예요. 이상해서 불빛이 있는 데를 들추어보니까 세상에나 디지털카메라였는데, 동영상을 찍도록 작동되어 있더라구요. 너무 놀라고 끔찍해서 바로 위의 상사인 실장에게 '여자 화장실에 디지털 카메라가 있었다. 누군지 찾아야한다'고 하였더니 실장은 '내 선에서 해결하겠다. 그 사람(범인)이 누군지 알면 얼굴 들고 다니겠냐? 묻어 두자' 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들이 '무슨 소리냐, 반드시 범인은 잡아야 한다'고 그랬어요" 여자화장실에 디지털 카메라를 설치한 범인은 여직원들이 사건 해결을 요구했던 바로 위의 상사인 실장이었고, 그 실장의 컴퓨터 하드에는 여자 화장실에서 찍은 4개의 동영상 파일이 저장되어 있었다. 또한 그녀들을 더욱 화나게 만들었던 것은 그 실장의 범죄행위에 대한 사장, 상사, 동료들의 반응과 말들이었다. "굳이 고소해야겠냐?", "결혼한지도 얼마 안 되었고, 가정이 있는 사람인데..고소까지는 좀...그 사람은 그래도 가장인데..." 하마터면 상담 중에 입 밖으로 나올 뻔했다. 별 개떡같은 소리 다 듣는다고. 가해자의 범법행위로 인하여 피해자들이 겪는 '피해'에 대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상도 하지 못하며,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관심을 갖는 건 가해자에게 가해지는 징계 혹은 처벌이 '가해자에게 얼마나 가혹한 수준인가'이다. 동영상 파일의 유출여부에 대한 두려움으로 모든 신경이 마비될 것 같고, 거리를 다니면 모르는 사람들도 그 동영상을 봐서 자신을 알아보는 듯하여 거리를 다니기도, 사람을 만나기도 어려워하는 등의 극도의 공포감에 떨고 있는 피해자들에게 그들이 하는 말이라곤 '그래도 가해자는 가장이니 생각해줘야 한다'이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말이다. 이런 말이 우선적으로 나오는 것은 직장내 성희롱 행위가 피해자에게 어떤 형태의 폭력을 가하는지, 피해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그들은 모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며, 상상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즉 직장내 성희롱 행위를 범죄행위라 생각하지 않기에 성희롱이 발생하였을 때 가해자가 어떤 폭력행위를 행사하였는가 보다는 피해자의 행동이나 반응, 태도 등을 문제삼아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사업주에게 성희롱 피해에 대한 해결을 요구한 면담 자리에서 한 피해자가 들은 말은 "000가 술이 취해서 그런 거다. 너도 잘못했다. 왜 술을 취하도록 마셨느냐"이었으며, 다른 상사들에게는 지속적으로 "000를 용서해라, 000가 너를 좋아해서 그런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피해자는 "그 때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고, 너무 힘들어 죽겠는데 내 입장에서, 내 편에서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회사에 아무도 없으니까 너무나 혼란스럽고, 내가 괜히 문제를 제기한 것인가 하는 후회가 든다."라고 하였다. 가해자의 잘못된 행동을 범죄 행위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나 직장내 성희롱 발생을 피해자의 행동에서 문제 삼는다거나, 직장내 성희롱 문제를 가해자와 피해자의 개인적인 문제로 바라보는 등의 문제는 성희롱 피해자에게 또 다시 폭력을 가하는 2차 가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2차 가해가 피해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자신이 지나치게 예민한 사람이어서 그런 반응을 한 것처럼 느끼게 하거나 자신의 피해사실이 성폭력이 아닌 것처럼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결국은 문제제기 자체가 정당하지 않은 행위로 받아들여지게 되고, '문제를 일으킨 어떤 존재'로 사업장 안에서 위치 지어지게 되어 피해자는 '퇴사'라는 막다른 길목에 서게 된다. 2차 가해를 당한 피해자들이 상담하는 경우 공통적으로 그녀들은 상담 내내 나에게 되묻는다. "이건 정말 잘못된 일이죠?", "제가 맞는 거죠?". 얼마나 주변에서 그런 말을 많이 들었으면, 폭력의 피해자가 "나 폭력 당한 게 맞죠? 그 사람이 잘못한 것 맞죠?" 라고 확인을 꼭 한다. 2003년 상반기(1~6월)까지 여성노동상담 중에서 가장 많았던 상담은 36.0%(105건)의 직장내 성희롱 상담이었고, 그 중에서 직장내 성희롱 피해자가 2차 가해를 겪은 경우나 회사측의 성희롱 해결 조치가 미비한 경우의 상담사례가 급증하였다. 직장내 성희롱 금지와 예방에 대한 법조항이 마련되어 시행된 지 5년이 되어 가고 있으나 여전히 현실에서 직장내 성희롱은 일상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변화하는 모습으로 때로는 변화하지 않은 모습으로 말이다. 변한 건 직장내 성희롱이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의 확산으로 직장내 성희롱 피해에 대한 여성노동자들의 적극적인 제기이고, 변하지 않는 건 가해자의 뻔뻔함, 그로 인한 명예훼손고소의 남발이다. 처벌받는 행위가 범죄라는 것쯤은 당연한데, 여전히 범죄라고 받아들이지 않는 인식으로 인해서 '피해자의 행동, 태도, 가해자의 징계수준, 처벌 수위'에 대한 논의가 끊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본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이야기하여야 하나? 우연히 집으로 향하던 버스 안에서 교통사고 줄이기 캠페인을 하는 전광판 광고를 보게 되었다. 그 광고의 내용은 교통사고가 생명을 앗아갈 정도의 위험성을 가지고 있으니 안전운행을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어떤 무엇인가를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알릴 때 효과적인 방법은 그 행위의 위험성과 폭력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직장내 성희롱의 경우 그 피해가, 폭력이 미치는 영향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무언가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 폭력이 상대방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그 폭력 행위가 얼마큼 잘못된 행동인지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며,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다. "당신은 내게서 너무 많은 것을 앗아가 버렸다. 당신은 나의 독립성, 나의 안전성, 나의 용기, 나의 강인함. 이 모든 것을 도둑질했다. 당신은 나의 존엄성을 빼앗아가 버린 것이다. 이 수많은 것들 중에서 과연 어느 항목에 대해 당신은 미안하다는 말인가?" - 성폭력 피해자가 가해자에 보내는 글 중에서(자료: '당당한 성, 즐거운 성, 안전한 성') 직장내 성희롱은 범죄행위이고, 잘못을 한 것은 성희롱을 당한 피해자가 아니라 성희롱을 한 가해자이다. 너무나도 명백한 명제가 현실에서는 그대로 통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은 가해자에게도 온정을!!이다. 성폭력조차 남성가장이데올로기를 피해가지 못한다. 으아~악. 그래서 우리 모두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출발선에 와 있는지도 모르겠다.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설명하자! 그들이 상상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서 말이다. 직장내 성희롱이 어떠한 범죄행위인지, 그 폭력으로 말미암아 피해자들은 어떤 폭력의 후유증에 있는지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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