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을 동의하고, 확실함을 부정하는 연애(개스포일러 있음)
밥을 먹고 사무실에 들어오니 이미 점심시간보다 30분이 지났다.
역시
사무처장들이 없고, 팀장들이 휴가라 좋긴 좋아.
옆자리의 바람과 옥상으로 올라간다.
2시에 회의가 있다는 녀석은 올라가는 도중에 내가 맨발인 것을 발견하고 춥지 않냐고 묻지만
나는 괜찮다고 한다.
락: 여름궁전, 그날 신기루랑 봉달도 보고 나랑 호지도 보고, 오이, 박봉, 광년도 같이 봤거든. 근데 따로 예매를 해서 그룹이 나뉘었다? 그런데 오히려 모여있지 않아서 더 좋았던 거 같아. 모여있으면 막, 옆에서 말 걸면 답해야 되고, 괜히 지루해하면 신경쓰이고 그러잖아. 감동 방해하는 사람이 있어.
바람: 하하
락: 나는 내가 좋아하는 애들이 몇 명 있다? 란마, 주성치 이런 애들. 근데 저우웨이가 주성치 삘 나는 거야. 약간 조재진도 같고. 위홍은 수술을.. 약간 수술해서 티나는 눈. 내가 좋아하는 눈 스타일이고. 나는 이뻐보이는 애들이 나오고. 내가 연애하는 방식이랑 너무 비슷해서 좋았어.
바람: 맞아. 나는 영화를 (남자)친구랑 봤다. 나는 위홍의 행동이 너무 공감이 갔는데, 친구는 위홍의 행동이 과장되게 느껴졌대.
락: 언제?
바람: 물 빠진 겨울 수영장에서 글을 쓰다가 몸을 비틀거나, 기숙사에서 오줌 싸다가 갑자기 막 우는 행동들. 근데 그게 그 애만 그런 게 아니라, 영화봤던 다른 남자친구들 두 명도 위홍이 오바한다고 생각한대. 그래서 아.. 여남이 이렇게 느낌이 나뉠 수 있구나 생각했어.
락: 그게 순간적으로 침입하는 감정들이잖아. 나는 연애했을 때, 그 애가 짜장면을 좋아했다고해서. 그 연애가 끝나고 나서 짜장면을 보고 그 애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한번도 같이 가본 적 없는 낯선 공간에서 갑자기 생각해낸다? 나는 그런 순간적으로 들어오는 격정적인 감정을 방어할 자신이 없고. 방어할 수 없는 거고. 나는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되는 거고. 영화가 약간 극대화시키기는 하는데 나는 그 감정 속에 내가 있어서 공감했어.
바람: 섹스장면이 진짜 많이 나왔잖아.
락: 나는 그 장면이 긴 이유를 잘 모르겠어. 변영주의 <밀애>에 나오는 섹스신은 기존의 방식과는 다르잖아. 김기덕도 자기 방식이 있고. 김기덕 <악어>에서는 남자가 맨날 여자를 성폭행한다? 여자는 반항하지만 결국 당하고. 그러다가 어느 날 여자가 가만히 있으니까. 남자가 “너 왜 반항 안해.”라고 해. 그래도 가만히 있으니까 그만두고. 완전 개포르노 판타지잖아. 근데 나는 이 영화에서 섹스신의 의미를 잘 짚어내지는 못했어. 왜 저렇게 길까. 뭐 어쨌든.. 좋긴 했지만. 흐흐
바람: 초반에 들판에서 하는 섹스도 있었고, 기숙사에서도 많은 장면이 나오고. 그런데 가장 인상 남는 게 비 오는 날 갑자기 찾아가서 하는 장면이다? 그 전에는 안 그랬는데 위홍이 남자 위에 올라가서 해. 그 장면이 아름다웠어. 몸도 예쁘고, 위홍이 주체적이었다는 느낌도 있었고. 그런 것들이 전달되었어.
락: 그럼 너는 상위 체위가 좋아?
바람: 연령대에 따라 느끼고 받아들이는 게 다른 것 같애. 은지쌤이랑 이야기 했는데 은지쌤, 나, 당신 다 느낌이 다르다?
락: 너랑 나랑 2살밖에 차이 안 나거든? 결국 감수성과 취향의 차이 아니야?
바람: 은지쌤 같은 경우는 정말 20대의 격정적인 사랑에 대해 관찰자적인 위치에서 보는 것 같았고, 나는 그런 시절이 오래지나지 않아서 오버랩 되는 느낌? 누군가는 위홍을 과장되었다고 했지만 말이나 행동이 공감되잖아. 나도 저랬고 내 감정도 저랬었는데.
락: 맞아
바람: 나는 영화를 봤을때 맥이 빠져서 못 일어나겠는거야. 끊임없이 다가오는 두려움과 공포. 내가 막아낼 수 없는 것에 대한 공포지. 위홍의 모습을 정당하게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고, 이유 없는 거고. 그러나 이해할 수 있었고. 불안함과 두려움 때문에 2시간 내내 힘들었지.
바람: 너는 저우웨이가 사랑한 사람이 리타인 거 같아? 위홍인거 같아?
락: 음.. 저우웨이가 정말 사랑을 한 걸까? 내가 불편하게 동의했던 건, 저우웨이랑 위홍의 태도가 나랑 너무 똑같은거야. 내가 가장 상처받지 않는 쪽을 택하는 것. 그게 꼭 상대에 대한 상처와 연결되는 것은 아닌데, 어쩔 수 없이 연결은 되고. 둘은 서로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유보하잖아? 그건 마지막에 재회했을 때에도 동일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차를 타서 고속도로를 달리고, 몇 년만에 만났는데도 아무 말 않고 자리에 앉고, 가는 내내 앞만 보고. 뒷자리에 앉으면 혹시라도 저우웨이를 보게 될까봐 옆자리를 택했겠지. 둘이 할 말이 없거나 하고 싶은 말이 없는 게 아니라, 할 수 없는 거지. 내가 먼저 표현하지 않는 것.
바람: 근데 왜 제목이 여름궁전일까?
락: 중국어 제목은 여름중전이 아니었어.(우기기) 근데 잘 모르겠다.(도망칠 구멍)
락: 맞다. 바닷가에서, 둘이 같이 옆에서 걷지는 않았다? 그런데 둘이 카메라의 시선에 의하면 떨어져있지 않았어. 그니까 앞뒤로 간격은 있었는데 떨어져있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은거지. 계속 그랬어.
바람: 짐쟈무시감독의 <브로큰플라워>를 보면 이유는 다르지만 옛사람을 찾아가는 여정인거고. 저우웨이도 갑자기 찾아서 만나는 거잖아. 지나간 기억을 봉인하고 들춰내고 싶지 않았을텐데. 저우웨이가 사랑을 한 건 누구였을까 생각했었는데 락이랑 이야기 하면서 사랑을 하지는 않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 저우웨이가 굳이 봉인된 것을 헤집고 와서 누군가를 주체할 수 없는 격정적인 감정으로 빠뜨리는 것은 어떤 심리에서 그런 걸까?
바람: 근데, 그 영화 카피가 너무 마음에 안 들었고, 사람들이 영화를 평하는 방식이 혁명기의 중국 속에서의 격정적인 여남의 연애를 이야기 하는 듯해서 싫었어.
락: 맞아. <타인의 삶>카피 봤어? 진짜 어이없다? 한 여자를 사랑한 세 명의 남자. 웃기지 않냐?
바람: 나 그 영화 안봤어..
바람: 정말.. 다시 한 번 더 보고 싶은 영화야. 감동. 감동.
락: 나도. 어? 30분 지났다. 이제 회의하러 가야지. 내려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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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는 옥상에서 삼자대면을..
짜증나는 이유가 짐작이 될 것 같기도 허고.. 궁금해 담 문화산책에 올려줌 잼겠다 ^^
한 영화 두시선~
당신들의 틀린 감수성이 그저 놀라움. 움..이 영화가 좋았구나..난, 좀 짜증나던데...히
영화 끝나고 광년, 오이, 나 이렇게 셋이 이야기 하고 나머지가 같이 이야기했잖아?
분위기 완전 틀릴줄 알았음. 우린 분위기 안 좋았음. 하지만 그쪽팀은 영화좋다라고
이야기한거 같다고 궁시렁 거리며, 나중에 왜 좋은지 꼭 물어보자고 서로 이야기했었다우. 참 다르기도 하지..근데 재미없었다는 건 아냐.
난 저우웨이가 위홍을 사랑한 거라고 생각하는데. 리타도 다른 방식으로 사랑했고.
그럼 결국 둘 다 사랑하지 않은 거랑 별로 차이가 없어지는건가?
하튼 엄청 맘에 드는 영화였음..
달수야 명동CQN 에 아직 하던데~
연소락 글 읽고 보고싶어서 찾아봤더니,, 벌써 막 내렸나봐여--;; 아쉽당
롹 글 좋아요.짬을 내서 이야기 한 옥상 위 담화군요. 근데 제목이 왜 여름 궁전 일까?
불확실성을 동의하고, 확실함을 부정하는 연애
제목_캬_! 라기 놀라운 기억력의 소유자!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