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노동칼럼] 기업에 양육책임 있다!
영유아보육법은 ‘상시 여성근로자 300인 이상 고용하고 있는 사업장’에 대해서 직장보육시설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주목할 부분은 '상시 근로자 300인 이상’이 아닌, 일방의 성별 '상시 여성노동자 300인 이상'이라는 점이다. 이는 영유아를 키우고 있는 남성노동자가 아무리 많아도 그 사업장에 여성노동자가 3백명이 넘지 않으면 직장보육시설을 만들 의무가 없다는 의미이다. 즉, 양육을 온전히 여성의 몫이라 법으로 규정한 셈이다.
'여성근로자’에서‘상시 근로자’로
이에 대해 여성부는 영유아 보육이 여성만의 책임이 아닌 부모 모두의 책임이므로, '여성근로자 300인 이상'을 ‘남녀근로자 300인 이상’으로 개정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안을 제출했다.
경영계는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는데, 그 입장을 요약하면 “경제적 비효율성을 증대시키는 탁상행정의 표본으로 기업부담 급증이 우려된다. 직장 내 보육시설 이용률은 국공립이나 민간보육시설에 훨씬 미치지 못하여 경제적인 비효율성이 존재한다. 그리고 영유아 1인당 시설면적을 4.29제곱미터로 확대하는 것 역시 추가공간확보에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더 요약하면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직장 내 보육시설의 이용률이 낮아서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이라고 주장하려면, 먼저 직장 내 보육시설의 이용률이 왜 낮은지 그 이유를 먼저 분석해야 한다. 왜 다른 시설을 더 선호하는지 분석해 본다면, 직장 내 보육시설이 필요하지 않다는 결론 대신 직장 내 보육시설이용 여건과 질적인 면 등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기업은 직장 내 보육시설을 단순히 기업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아니라 새로운 노동력과 소비의 주체를 재생산해 내는 투자임과 동시에 사회적 책임임을 인식해야 한다.
‘일이냐 아이냐’의 강요된 갈림길
“저출산의 원인은 육아 문제 때문이지, 출산의 고통여부의 문제가 아닙니다. 육아=여성입니까? 어째서 직장에서 불이익 당하는 건 여성의 몫이고, 아이를 낳으면 왜 해고 0순위인건가요? 저도 일하는 여성인데 나중에 아이 낳을 일이 걱정입니다. 여자들도 남자들처럼 사회에 나가 일을 하면서 돈도 벌고 자아실현도 하고 그러고 싶은데 현실이 그렇게 하도록 놔두지 않습니다. 여자들에게는 아이를 낳는 것이 엄청난 모험입니다. 여자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이기적이어서가 아니라 사회가 아이를 낳기 어렵게끔 만들기 때문입니다.”
평등한 일출산양육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접하게 된 한 여성노동자의 이야기인데, 양육의 사회적 의미와 책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토로하는 내용이다. 즉, 양육은 정부와 기업, 개별가정이라는 세 주체에 의해 분담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개별가정-그 가정 내에서도 온전히 여성-에게 책임이 전가되고 있어서 여성노동자가 아이를 낳는 것은 '엄청난 모험'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여기서 영육아보육법 개정안과 관련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그 '엄청난 모험'을 하기 위해서 여성노동자들은 ‘야근’을 강요하는 직장분위기 속에서 상사의 눈치에도 불구하고 정시에 아이를 데리러 갈 수 밖에 없다. 사회는 여성노동자에게 직장과 양육의 양립을 요구하지만, 하루하루가 ‘일이냐 아이냐’라는 양극단의 선택만을 강요하고 있다. 그런 불완전한 줄타기 속에서 출산과 양육을 하는 여성은 해고 0순위가 되는 것이다.
그럼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남성노동자는 어떨까. 가족의 생계를 온전히 혼자 짊어진다고 생각하는 남성노동자는 반복되는 야근과 회식 등, 양육에 접근하기 힘든 직장문화를 등지지 못한다. 결국 여성노동자는 출산의 포기 또는 직장의 포기라는 양극단의 선택을 하게 되고, 남성노동자는 양육을 회피하는 직장문화에 매몰돼 양육책임을 아내에게 전가하거나 혹은 양육의 권리를 박탈당하는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되기 쉽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효율성’
기업의 양육책임은 단순히 직장 내 보육시설을 설치하고 확대하는 것만이 아니라, 직장과 가정을 조화롭게 양립할 수 있는 기업정책과 기업문화를 만들고 실현하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회식이나 습관적인 야근문화에 대한 비효율성에 대해선 이미 지적된 바(<일다> 10월 10일자 여성노동칼럼 “효율성없는 회사, 야근이 지배한다”) 있다. 정시 퇴근의 생활화는 가정과 직장의 양립가능성과 노동의 집중도를 높이고, 종국에는 기업의 효율성을 높이는 일이 될 것이다.
또한 출산과 양육을 이유로 여성노동자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어왔던 관행을 깨야만 한다. 기업의 효율성을 위해선 여성노동자의 경력이 단절되거나 침해되지 않도록 여성인력을 발전시키고 활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여성이 출산할 경우 배우자에게 유급으로 출산휴가를 부여하거나, 육아휴직 중 일정기간을 남성이 사용하도록 하는 남성육아휴직 할당을 만들어 남성의 양육참여를 독려하는 문화를 만든다면 어떨까. 남녀노동자의 애사심은 이런 때 발휘되지 않을까.
기업은 무책임하게 “국가나 개인이 부담해야 할 보육비용을 기업에 일방적으로 전가시키는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에 반대한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기업이 분담해야 할 사회적 책임을 어떻게 기업의 효율성과 연결시킬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다.
※ 이 칼럼은 여성주의 저널 일다(www.ildaro.com)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2004.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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