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보도 모니터링의 의미
신문? 성폭력? 모니터링?
성폭력, 보도 모니터링의 의미
용산 성추행 살해 사건, 최연희 의원 성추행 사건, 마포 연쇄 성폭력 사건, 교도관에 의한 성추행 사건.. 2006년 상반기에는 수많은 성폭력 사건이 미디어를 통해 사회에 알려졌다. 특히 2월말에서 3월에는 몇 건의 사건이 연달아 이슈화 되면서 성폭력 사건이 연일 보도되는 전례가 드문 상황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상담통계를 보면, 언론이 성폭력 사건을 집중적으로 보도했던 이 시기의 성폭력 상담건수가 다른 달에 비해 1.5~2배가량 많다는 것(175건)을 확인할 수 있다.
내담자들은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자기에게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지내왔는데, 사실 많은 성폭력 사건들이 있었다’는 것에 놀라워했으며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한번쯤은 말하고 싶었다고 이야기한다. 이처럼 언론을 통해 생존자의 권리가 무엇인지, 어떤 사회적 자원이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접한 것이 상담을 결심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성폭력사건을 구체적으로 재현하는 언론보도 방식이 성폭력 생존자들에게 성폭력 피해경험을 두렵게 떠오르게 하고 불안감을 조성한다는 호소도 많았다. 일찍 귀가하라든가, 혼자 사는 여성이 성폭력의 표적이 된다는 식의 성폭력 보도는 여성들을 공포로 밀어 넣기도 한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2006년 상반기 상담현황 및 분석> p.5,「디딤」41호, 2006년
이렇듯 사람들의 삶에 미디어가 깊숙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공기로써의 미디어를 고민하면서 미디어를 모니터링하고 개선하는 작업들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하지만 기존의 모니터링 작업으로는 여성의 경험, 특히 성폭력 생존자의 인권에 대한 고민을 사회 공론의 장에 녹이는데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연쇄 성폭력을 보도하며 이른 귀가를 예방책인 것처럼 소개하는 보도는 얼핏 범죄 예방을 위해 필요한 사실을 보도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성의 경험을 통해 이 기사를 볼 때 문제점이 드러난다. 여성은 일상적으로 가족과 사회가 여성의 몸가짐을 통제하며 이를 위반하는 여성이 피해를 입은 경우 그 여성에게 책임을 묻게 되는 상황을 종종 겪는다. 가족들이 ‘일찍일찍 다니라’며 딸을 단속하고, 밤늦은 시간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이 ‘그 시간에 내가 왜 거리에 있었을까.’라며 자책하게 되는 것이다. (지갑을 소매치기 당한 피해자는 자신이 왜 그 시간에 지갑을 들고 다녔는지를 자책하지 않는데 말이다.) 그리고 위와 같은 보도태도는 이런 상황을 더욱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
실제로 성폭력 사건의 80%는 익숙한 장소에서 친밀한 관계에 있는 가해자에 의해 발생한다는 통계를 볼 때, 위와 같은 보도는 실질적으로 성폭력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오히려 여성을 통제하는 통념을 재생산하고 있다. 성폭력 근절이라는 공공성을 추구하는 것이 신문의 의무라면, 같은 보도를 하더라도 이 공공성에 맞게 기사의 방향-피해자로서의 여성을 통제하는 것이 아닌,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고 처벌 혹은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환기하거나, 치안에 대한 점검을 부각하며 사회적인 안전망을 이슈로 삼는 등-을 설정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나는, 성폭력을 이렇게 읽는다 2005년 1월~8월 한국 여성민우회 부설 성폭력 상담소에서는 성폭력 생존자의 인권을 보장하고 사회 전반적인 반성폭력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서 생존자의 관점으로 미디어를 통해 보도되는 성폭력 사건을 모니터링 할 필요성을 느끼며 6개 신문사 경향,동아,서울,조선,중앙,한겨레를 대상으로 청소년 성폭력 사건보도 모니터링을 진행한 바 있다.
2005년의 작업에서 모니터링 대상을 청소년 성폭력 사건 보도로 한정했던 것은, 수많은 상담건수에 익숙한 성폭력 상담소 활동가들이 신문에 보도되는 성폭력 사건 역시 많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작업의 편의를 위해 범위를 정했던 결과이다. 그러나 2005년 모니터링 결과, 8개월간 6개 신문사의 청소년 성폭력 사건은 총 30건의 보도밖에 없었고 이는 평균적으로 한달에 한 건도 보도 되지 않는 미미한 수준이다. 경향3건, 동아7건, 서울4건, 조선6건, 중앙3건,한겨레7건 이에 2006년의 모니터링 작업은 범위를 한정하지 않고 성폭력 사건 보도 전반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2006년의 모니터링 작업은 2006년 1월부터 6월까지 경향, 서울, 조선, 동아, 중앙, 한겨레 6개 신문을 대상으로 했다. 스크랩한 기사들의 내용을 분석하고 좋은 보도 내용과 지적이 필요한 내용들을 골라내는 1차 작업을 거쳤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성폭력 사건 보도를 모니터링하면서 주목해야할 부분들을 모니터링 틀로 정리했다.
2005년과는 달리 용산 아동 성추행 살해 사건 이후 성폭력 사건이 연일 신문지상에 보도 되면서 기사의 양은 많아 졌지만, 질적 측면에 있어서는 선정적인 보도태도, 성폭력 사건을 단지 엽기적인 일로 보도하면서 사소화하는 등 작년에 지적되었던 보도태도가 올해도 여전히 반복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이는 모니터링 작업이 의례적인 비평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 모니터링 결과를 기사작성과 편집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기자사회 내부의 반응이 필요함을 말해준다. 취재와 보도의 현장에 이 모니터링 결과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녹여 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현장감있는 제언과 토론, 제도화 작업이 있어야 할 것이다.
모니터링 틀을 정리하기 위한 긴 토론 속에서 여전히 정리하지 못했던 한 가지 논쟁점은 소수자의 경험을 재현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었다. 2006년 상반기에 기사화된 성폭력 사건은 아동이 살해된 사건, 가해자가 국회의원인 사건 등 공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고 특히 아동이 살해된 사건의 경우에는 피해자 가족의 고통을 부각시키는 보도가 많았다. 이후 아동 성폭력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후속보도에서도 피해 아동이 겪는 고통을 강조하는 특징적인 보도태도가 발견된다.
이제까지는 성폭력이 순결에 대한 범죄이거나 물리적 폭력이 있을 때에만 범죄로 인정하는 수준으로 논의 되던 것에 비해 성폭력 피해가 피해 생존자 개인의 삶에 어떤 충격으로 남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피해 생존자의 모습이 언제나 무기력하고 고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모습으로만 재현될 때에, 이것이 피해 생존자에 대한 또 하나의 고정관념으로 굳어지지 않을까 우려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상담 현장에서 만나는 피해자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상황에 따라 무력하기도 하고, 한순간 분노하기도 하며, 슬퍼하다가도 어느 순간 냉정을 되찾고 차분한 태도로 상황을 대하기도 한다. 그리고 성폭력 피해라는 주어진 상황의 특수함이 피해 생존자에게 끼치는 영향 속에서 이런 모습들이 이해되고 지지받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성폭력이 사회적으로 이해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전형적인 피해자의 모습을 강화하는 방식으로만 피해가 이야기 된다면, 그 전형성에 들어맞는 피해자에 대해서만 사회적인 연민을 베푸는 방식으로 성폭력이 논의될 뿐일 것이다.
이런 우려 속에서도 성폭력의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키는 한 방법으로 피해자의 고통과 열악함을 호소하는 방식을 채택하는 것이 유효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이 부분은 결론을 내리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모니터링 틀 속에 이 고민은 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여론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사 생산자들 역시 신문을 통해 성폭력 피해를 어떻게 재현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피해 생존자의 인권을 보장하고 성폭력을 근절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지를 지속적으로 고민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정리되지 않은 고민이나마 글로 남긴다.
모니터링을 함께 한 자원활동가 한 사람이 이런 말을 전한다. “신문을 읽으면, 그냥 읽잖아요. 이 기사의 영향력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사실 영향을 받는데. 모니터링 작업을 통해 이 기사가 사건의 당사자에게 혹은 다른 피해 생존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생각하면서, 이제까지 신문기사를 그저 볼거리로 소비하는 독자였던 나의 위치를 다시 볼 수 있었어요.”
우리의 신문 모니터링 작업이 차곡차곡 쌓여 기사 생산자에게도 독자들에게도 이런 고민들이 전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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