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보도 사례6] 성폭력을 '딸'들과 '딸 가진 부모'가 조심해야 하는 범죄로 다루지 않는다.
성폭력 보도 사례 6.
6. 성폭력을 '딸'들과 '딸 가진 부모'가 조심해야 하는 범죄로 다루지 않는다.
기자칼럼, 기자메모 등 에세이 란을 통해 성폭력에 대해 이야기한 기사들은 특징적으로 ‘딸 가진 부모의 마음’으로 성폭력 사건에 대한 분노와 안타까움을 표현한 기사가 대부분이다. ‘딸 가진 부모의 마음’을 강조하며 성폭력에 대해 서술하는 것은 성폭력 사건을 내 딸의 문제로 환기시켜 사건을 사람들에게 가깝게 다가가게 하고 그 심각성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보도로 판단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점은 있다.
<사례1> 기사는 마치 여성에게는 성폭력이라는 굴레가 어쩔 수 없는 것이며 이에 대해 ‘옷을 가려 입는 등’의 무력한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는 듯이 말하고 있다.
<사례2> 기사에서는 여성이 조심해야 하는 현실을 씁쓸해하면서도 연쇄 성폭력 사건을 두고 왜 아들 가진 부모가 아니라 딸 가진 부모와 장모가 눈물지어야 하는가를 되묻게 된다.
성폭력 사건을 두고 통제규칙을 엄수하지 않은 ‘딸’과 딸을 보호ㆍ관리하지 못한 ‘어머니’의 문제로 이야기 하는 것은 성폭력을 여성들만의 문제로 국한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그럼으로써 정작 논의되어야 할 가해자와 사회의 책임을 생략하며 성폭력을 이야기하게 한다.
이런 기사들 속에서의 여성은 분홍 옷을 입어서는 안 되며 택시를 마음대로 탈 수 없고 부모는 그저 눈물지어야 한다. 이런 보도 태도는 나이를 불문하고 여성을 부모 혹은 남편 즉, 가족과 남성이 보호해야하는 존재로 위치 짓는 효과를 낳는다. 청소년에 대한 무조건적 보호논리가 청소년의 주체성을 박탈하는 통제의 함정을 함께 가지고 있듯이, 여성을 ‘보호’의 대상으로만 한정짓는 태도는 여성을 ‘보호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고정시키는 잘못된 사회적 통념을 재생산 하는 효과를 낳는다.
<사례1> 서울 3.18 오피니언-여담여담 <돌려주고 싶은 분홍원피스> 황수정 문화부기자
(‥전략) 아이가 외투에다 티셔츠, 치마, 심지어 긴 양말까지 몽땅 분홍색만 고집하고 나서는 거였다. 아이의 생떼가 난감했지만 나 역시 금방 물러서지 않았다. 촌스러운 분홍색이 내키지 않는 건 둘째 치고 머릿속에서 열심히 주판알을 튕기던 불안감. 이렇게 화려한 옷을 지켜줄 세상이 아닌데... 속으로 흉흉한 세상을 탓하며 미적거리는 내게 판매원은 한술 더 떴다. “요즘 엄마들은 눈에 띄는 원색 옷을 사주지 않는다.”며 오히려 아이를 달래주는 거였다. 아동성범죄라는 단어조차 입에 올리기 싫은 건 세상 엄마들의 하나같은 마음일 것이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귀엽다며 딸아이의 볼을 꼬집는 낯선 남자를 나도 모르게 빤히 쳐다본 게 한두번이었나.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동심의 시력으로만 읽어낼 수 있는 팬터지는 그대로일 터. 어린 딸들에게 눈부신 분홍색 원피스를 돌려주기 못하는 이 봄, 오호 통재라!
<사례2> 경향 2.24 종합 기자메모 <“딸 키우는 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이기수 기자
(‥전략) 허양이 하늘나라로 간 날부터 정치권과 정부는 '성범죄자 집에 문패를 단다' '전자팔찌를 채운다'며 성폭력 대책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때늦은 호들갑이지만, 그것은 허양의 죽음이 이 땅에 남긴 큰 유품입니다. 국회엔 지금도 많은 성폭력 관련 법들이 자고 있습니다. 기자아빠로서 '나는 그동안 뭐 했나' 자책하게 됩니다.
정작 고민은 다시 시작됩니다. 아내는 '애를 비디오가게에 심부름 보냈다가 그랬대. 이제 어떻게 키워야 하지'라고 물었습니다. 답답했지만, '그럼 애를 응석받이로 키울 거야'라고 잘랐습니다. 예전부터 무남독녀라면, '성깔 있겠다'고 말하던 어른들의 걱정을 덧붙였습니다. 초등학생 외동딸을 키우는 친구도 전화가 왔습니다. '애 잘 크지. 이번 사건 보고 아내랑 하나 더 낳을까 고민하다 그만뒀다'며 씁쓸해했습니다.
허양은 그렇게 딸을 둔 모든 이의 가슴에 무덤을 만든 것입니다. 얼마전 연쇄 성폭행범 '발바리 사건'을 보며, 아내에게 '밤 늦게 택시를 타면 전화하라'고 했습니다. 장모가 이 글을 보면 또 눈물지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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