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더빙모니터링보고서2] 성격은 남자만 있다? - 역할표현에 쓰이는 반말, 여성은 적용제외
[외화더빙모니터링보고서 2]
2. 성격은 남자만 있다? - 역할표현에 쓰이는 반말, 여성은 적용제외
흔히 말투는 그 사람의 성격이나 성품을 드러내기도 하고, 상황을 보여주기도 한다. 영화에서도 말투가 이러한 장치로 사용되었는데, 예를 들면 악당캐릭터이거나 긴박한 상황을 표현해야 하거나, 극도로 화가 난 상황을 표현할 때에는 성별이나 연령, 계급 등이 무시된 채 그 상황과 캐릭터효과를 강조하기 위해 일관되게 반말이 사용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러한 말투에 의한 역할과 캐릭터표현을 성별로 살펴보았을 때는 다른 결과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악당, 혹은 주인공에 대립되는 역할(대부분 남성)은 반말사용을 기본으로 하고 특히 남성의 거친 성격을 표현하는 경우는 대부분 반말이 사용되었다. 하지만 여성은 아니었다. 여성은 그 캐릭터와 상관없이, 관계와 맥락에 상관없이, 대부분 존칭을 사용한다. 여성에게는 늘 위계가 작동하는 것일까?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 것. ‘나쁜’ 사람을 표현하는 데 적절한 것이 반말이라면, ‘반말’이 ‘나쁜 행동’, ‘올바르지 못한 행동’이라는 것인데, 여성이 착하고,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번역상 자제하는 것인지, 아니면 여성은 누구에게나 반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인지 참 의문이다.
1) 누구에게나 반말하고 반말당하는 악당! 그 악당에게 존대하는 그녀들
자, 아무에게나 일관되게 반말을 하는 나쁜 캐릭터 악당은 당연히 주인공을 비롯한 모두에게 반말을 ‘당’하지만, 이들에게 유일하게 존칭을 써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여성이다.
다음은 영화 [이탈리안 잡]에서 악당(스티븐)이 상대방 여성(스텔라-주인공들 중 유일한 여성)이 자신이 죽인 사람의 딸이란 걸 의심하는 순간의 대사이다.
영화 | 원 대사 | 번역 대사 |
이탈리안 잡 | 스티븐 : There's only person I've ever heard say that 스텔라 : I don't remember. You are hurting me. |
스티븐 : “그거 알아? 너와 똑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지” 스텔라 : “이거 놔요. 아파요.” |
또 영화 [캐러비안의 해적]에서 엘리자베스(주인공 여성)와 해적 바르보사의 대화다.
영화 | 원 대사 | 번역 대사 |
캐러비안의 해적 | 엘리자베스 : It’s poisoned. 바르보사 : There would be no sense to be killing ye Miss Turner. 엘리자베스 : Then release me. |
엘리자베스 : 독을 넣었군요. 바르보사 : 아니, 내가 터너양을 왜 죽이겠나? 엘리자베스 : 그럼 놔 주세요. |
위의 두 영화에서 모든 출연진은 아무도 악당에게 존대를 하지 않는다. 오로지 두 여성만이 악당에게 사로잡히거나 고통을 당하는 순간에도 예의바르게 존대해주신다. 혹시 남자쪽이 더 나이가 많아서가 아닐까 의문이 생긴다면? 자, 생각해보자. 우리는 얼굴로 나이를 알 수 없다. 다만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나이차이가 현격해서 추측이 확신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제외하고(트루크라임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얼굴생김새로 나이를 예측하는 건 불가능할뿐더러 예의에도 어긋난다.(--;) 그것은 번역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번역자가 보는 시나리오에 캐릭터의 나이가 나와 있지 않을까라고? 원문시나리오를 찾아서 대조해봤다. 그런 거 없다.
2) 거친 그들은 반말, 거친 그녀들은 거친 와중에도 존대
영화 [블레이드2]와, [캐러비언의 해적]은 소위 ‘액션’영화이고 이 ‘액션’영화의 주인공인 남성들은 거칠고 험한 캐릭터를 표현한다. 그래서 모두들 주로 거침없이 반말을 사용하는데, 특히 애인관계이거나 사귀는 관계에서는 여지없다. [블레이드2]에서 블레이드도 [캐러비언의 해적]에서 해적도 모두 반말이다.
다음은 ‘캐러비언의 해적’ 의 대사다.
영화 | 원 대사 | 번역 대사 |
캐러비언의 해적 | 엘리자베스: How did you escape last time? 잭 : Last time…I was here a grand total of three days, alright? Last time …the rum runners used this island as a cache. Came by and I was able to barter a passage off. 엘리자베스 : So that's it then? |
엘리자베스 : 저번엔 어떻게 탈출했죠? 잭 : 사흘 쯤 지났을 때였을까? 이 섬에 밀주를 숨겨두는 놈들을 만났기에 한 몫 단단히 약속하고 배를 얻어탔지. 엘리자베스 : 그게 다란 말이예요? |
하지만 여성은 다르다. 영화에서 여성이란 늘 보호의 대상이나 말썽의 대상이거나 구색맞추기 캐릭터인 신세라 그닥 거친 주인공, 혹은 주체적으로 영화를 이끄는 악당역으로 나오는 경우가 별로 없어 비교할만한 것이 거의 없었다. 유일하게 거친 여성캐릭터가 나오는 영화는 [시카고]였는데, [시카고]에서 르네 젤위거는 살인자에다가 교양도 없고 무례한 캐릭터로 분했다. 그러나 이 거친 캐릭터는 남성들에게 꼬박꼬박 존칭을 사용한다. 자신의 사건을 맡은 변호사(리차드 기어)에게 존칭을 사용하고 그 변호사가 ‘의뢰인이자 고객’인 록시에게 반말하는 건 이상하지만 그렇다고 치자. 이 록시는 살인범이니까.(이와 대조적으로 영화 [트루 크라임]에서 남자살인범이자 변호의뢰인인 ‘비첨’에게 여자변호사는 존칭을 사용한다.) 그런데 출세를 위해선 거짓말도 우습고 남편에게 관심이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자아도취적 여성과 바람피다 살인범이 된 부인을 구명하고자 이리저리 뛰는 착한, 바보스러워 보이기까지 한 남편과의 대화는 이렇다.
남편 : "집으로 가. 네가 원하던 거잖아. 게다가 아기도.."
록시 : "아기? 무슨 아기요? 난 임신 같은 거 안했어요."
남편 : "임신이 아니라구?"
록시 : 오우, 이런 맙소사. 그걸 곧이 곧대로 믿었어요?
자 영어는 이렇다. 영어의 록시대사에 존칭 뉘앙스를 발견할 수 있는가?
남편 : I want you to come home. You said you still wanted to. And the baby.
록시 : Baby? What baby? There ain't no baby.
남편 : There ain't no baby?
록시 : Oh , Jesus. What do you take me for?
3) 친절한 여자들에겐 계급 효과가 사라진다.
외화 더빙에서 여성과 남성의 대화는 사회적 지위와 친밀성에 따라 달라진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남성들은 대부분 누구에게나 하대를 하지만, 사회적 지위가 높은 여성은 누구에게나 존대를 한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남성이 누구에게나 하대를 하는 것은 권력과 권위의 상징이요, 남성다움의 표식이다. 그러나 여성들은 언어를 사용할 때 자유롭지 않다. 즉 여성은 사회적으로 규정된 여성성을 표현하듯이 대부분의 경우 상대에게 존댓말을 사용하며 부드럽고 사려 깊게 행동한다. 즉 앞서 다급하거나 상대가 악당 캐릭터를 만났을 상황에도 변함없이 존대를 하는 여성들을 보았다면 여기서는 지위가 있는 여성일지라도, 상대(특히 남성)의 지위가 높거나 낮거나 관계없이 존칭을 사용한다는 점을 짚겠다.
영화 [파프롬 헤븐]의 경우를 살펴보겠다. 인종차별이 만연한 시대가 영화의 배경으로 집주인 남편(백인)은 누구에게나 하대를 하지만, 집주인 여성(백인)은 누구에게나 존대를 한다. 이 여성이 반말을 사용하는 경우는 친한 친구와 대화할 때뿐이며, 자기 집에서 일하는 정원사(남성, 흑인)와 가정부(여성, 흑인)에게 모두 존대를 한다. 하지만 집주인인 남편은 직장에서건 집에서건 모두에게 반말을 사용한다. 또한 정원사(남성, 흑인)는 술집에서 자기에게 존대하는 종업원(여성, 흑인)에게 반말을 한다. 이것이 친밀함을 근거로 하건지, 사회적 계급에 근거로 한 것인지 알 수 없다. 결과적으로 정원사는 하대를 함으로써 다른 여성과 달리 상대에 따라 언어의 격을 달리 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 원 대사 | 번역 대사 |
파프롬헤븐 | 정원사 : I couldn't. Uh 집주인 : Thank you, Raymond, for offering. |
정원사(남성, 흑인) : 어쩔수 없었어요. 그동안 고마웠어요. |
정원사 : You're just sore 'cause haven't been coming around like I used to 여종업원 : Is that so? |
정원사(남성, 흑인) : 오랫동안 안 왔더니 삐친 모양이군. |
비단 이 영화뿐만이 아니다. 영화 ‘스타워즈’를 보면 레아 공주는 모든 사람에게 존댓말을 사용하는 반면에 솔로선장(남)은 레아 공주에게만 존대를 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하대를 한다. ‘언더 월드’에서 뱀파이어계의 대장인 남자는 자기보다 높은 지위인 원로에게만 존대하고,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반말을 사용한다. 그런데 대장보다 부하인 여자는 친밀한 동료에게만 반말을 쓰고 대부분은 그들이 악당이라 할지라도 존대를 한다.
이처럼 여성이 상대방과 수평적으로 존대나 하대를 하는 경우는 친한 친구나 동료 같이 아주 친밀한 관계에 한한다. 반면에 남성들이 상대에게 존대를 쓰는 경우는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상대가 나타났을 때뿐이다. 그 외에는 상황과 상대를 불문하고 대부분 하대를 하는 것으로 더빙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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