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더빙모니터링보고서 3] 당신은 하오, 나는 해요?
[외화더빙모니터링보고서 3]
3. 당신은 하오, 나는 해요?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에 나오는 여성(로즈메타)과 남성(코넬리우스) 사이의 대화 한 토막.
코넬리우스: 아 그거야 아시다시피 살인범이 탈옥했잖소.
로즈메타: 시리우스 블랙 말인가요? 흐흥. 그 사람이 여길 왜 오는데요?
코넬리우스: 해리 때문이오.
로즈메타: 해리라구요?
자, 저 대화에서 남성(마법부장관)은 ‘~하오’, 여성(가게주인)은 ‘~해요’ 라는 말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셨는지? 영어는 ‘~하오’ 와 ‘~해요’ 가 구분되지 않는 언어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굳이 원문을 비교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래도 아쉬우니 원문을 한 번 보도록 하자.
Cornelius: We have a killer on the loose.
Rosmerta: Sirius Black? In Hogsmeade! And what would bring him here?
Cornelius: Harry Potter.
Rosmerta: Harry Potter!
역시나 두 성의 말투를 구별할 만한 여지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비단 영화뿐이랴. 옆에 있는 소설 한 권만 펼쳐 봐도 남성에게는 하오체, 여성에게는 해요체를 부여하고 있는 예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많은 번역자들은 왜 여성에게 해요체를, 남성에게 하오체를 쓴 것일까?
쉽게 가자. 여성에게 주어지는 해요체에서는 가벼움과 애교(?)가, 남성들에게 맡겨지는 하오체에서는 무게감과 권위가 느껴진다. 당장에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서 ‘하오체’를 한 번 검색해 보시라. ‘무게’나 ‘권위’ 따위의 낱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사회에서 그와 같은 단어는 여성의 몫이 아니다. 생각해 보라. 현대국어에서 여성이 남성에게 ‘앉으시오’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 있는가? 간혹 남성들이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쓸 뿐이다(요즘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하오체는 제외. 물론 그 하오체를 쓰는 이들도 대부분 남성이라는 심증이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문제는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 왜 남성-하오체, 여성-해요체로 번역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자료를 찾아보던 중,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로 하오체와 해요체가 한국어의 높임법 분류에 속한다는 것.
한국어의 높임법 - (국어의 높임법에 관해서는 한국출판인회의 홈페이지에 수록된 “김철호의 우리말 이야기” 중 “한국어는 ‘관계’의 언어다―높임법에 대하여(1)”에서 도움을 받았다.) 종류가 말하는 이와 듣는 이의 위아래에 따라 굉장히 다양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 중, 어미를 바꾸어 말함으로써 양자의 관계를 표시하는 상대높임법의 종류는 크게 여섯 가지로, 합쇼체, 하오체, 해요체, 하게체, 해라체, 하라체, 해체이다. 이중 합쇼체는 상대를 가장 높이는 것이고, 해체는 상대를 가장 낮추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오체와 해요체는?
하오체는 ‘예사높임’으로, 상대, 즉 듣는 이가 친구이거나 아랫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높여 말할 때 쓰는 높임법이다. 따라서 ‘절대로’ 윗사람이나 연장자에게 써서는 안 된단다. 반면 해요체는 상대방을 무조건 높이는 것으로, 합쇼체보다는 격식을 덜 차리지만 친밀감을 배가할 수 있는 높임법이다.
정리하자면 상대가 나보다 낮은 지위의 사람일 때 그 상대를 높이는 높임법=하오체=남성발화, 상대가 나보다 높을 때=해요체=여성발화. 어미만으로 이토록이나 명확하게 상하를 구별할 수 있다니, 오 놀라워라, 한국어. 원작 영화에서는 단지 친분이 있는 가게 주인과 손님이었을 등장인물들이 성별에 따라 갑자기 위계질서에 편입되는 이 기현상에 대해 저 외화를 번역한 이는 뭐라고 해명할지?
그러니 영화나 책에 나오는 ‘하오’가 ‘명백한’ 반말이 아니라고 좋아하지 말자. 그건 자신의 교양을 보이기 위해서건, 관용을 내세우기 위해서건 어쨌건, 단지 (높은) 남성이 (낮은) 상대 여성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하는 말이니까 말이다.
나오며 : TV외화다시보기를 다시 보며
혹자는 남성/악역이 반말을 하고 여성이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은 ‘현실의 반영’이라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현실’, 바뀐 지 좀 오래 되지 않았나? 마치는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누구일까요?)만 해도 애인과 서로 존댓말을 하고, 내 친구는 남편과 반말을 한다. 또 보자. 어떤 사람이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또는 남성이라는 이유로, 사회적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반말을 해댄다면 당신, 어떻게 하겠는가? 대번에 “그런데 왜 반말이세요?”라고 따지거나, 소심해서 그렇게는 못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그날 저녁 ‘오늘 겪은 퐝당한 일’을 친구들에게 구시렁대지 않겠는가?
이처럼 TV 외화 번역의 ‘현실’이 실제 현실에서 뒤처져 있는 까닭이 개봉영화를 몇 달~몇 년 뒤 방영하는 그들만의 ‘동떨어진 타이밍’ 때문인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는 번역학원에서 가르친다는 ‘모범번역’ 때문인지, 그들 자신이 ‘남성답고’ ‘여성다운’ 말투를 내면화하고 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원어에는 존재하지 않는 존대/하대가 한국어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했다는 사실은 결국 우리 사회가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을 가늠할 수 있게 한다.
따라서 원어를 상황과 맥락에 따라 적절한 우리말로 바꾸어내는 일은 몇몇 번역자 개인의 ‘양식’이 아니라(물론 번역자의 감수성은 매우 중요하다. 똑같은 영화가 지상파 더빙 판에서는 남-반말, 여-존댓말이던 것이 오히려 케이블 TV 자막에서는 남녀 공히 존댓말을 사용한 예도 있는 것처럼!), 저런 번역들을 더 이상 ‘자연스럽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짐으로써 가능해질 것이다. 실제 부부나 연인이 서로 공히 존댓말을 하거나 반말을 하는 사례가 이전보다 많아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우리는 여기서 한국어의 높임법을 없애자거나 존댓말만 쓰자거나 반말만을 남기자는 유의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영화에서 제공하는 정보만으로는 상-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굳이 성에 따라 반말-존댓말로 위계를 세우는 번역은 분명 문제가 있다. 그것은 영어를 잘못 번역했다는 차원의 문제를 떠나 어떻게 번역해야 하는가, 성차별적 의식에 기반한 번역이 여성에게, 혹은 현실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수 있는가 하는 문제의식이다. 이러한 번역은 성에 따라 위계적인 언어를 써야한다, 혹은 쓰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의식을 확산하고 성별에 따른 차별적 언어사용을 끊임없이 재생산한다. 심지어 변화되고 있는 다양한 현실을 왜곡하기도 한다. 사실 존칭, 하대사용여부는 관계하는 쌍방의 합의의 문제 아닐까?
그러니 이번 주말 TV에서 하는 영화를 볼 당신, 새로운 눈과 귀로 영화를 한 번 보는 것은 어떨지. 그리고 모니터링에 딱 걸린 것과 같은 표현들이 나온다면 해당 방송사 홈페이지에라도 들어가 한 마디 남기는 것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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