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수신료 인상안 이사회 무력 상정 이후
[논평] 수신료 인상안 이사회 무력 상정 이후
예상대로 KBS 이사회가 수신료 인상안 상정을 강행했다. 여당 추천이사 7인(손병두,남승자,홍수완,이창근,정윤식,이상인,황근)은 KBS가 제시한 복수의 인상안(4,600원, 6,500원)을 야당 추천이사 4인(김영호,고영신,이창현,진홍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상정했다. 야당 추천이사들은 회사의 인상안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점, 광고를 없애야 한다는 논리적 근거가 제시되지 않은 점 등을 지적하며 안건 상정 이전에 이사회 내에서의 수신료 논의 선행을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안건 상정이 된 이상 뜸을 들이다 기회가 되면 언제든지 심의.의결을 할 수 있게 됐고, 여당 추천이사들이 국회 조속 처리 의지를 피력한 것처럼 이어지는 방통위와 국회에서의 의결 절차도 정권 차원에서 힘으로 밀어부칠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수신료 인상안 논란의 핵심은 무엇에 쓰기 위해 얼마나 올려야 하는가에 있다. 이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인상액의 산출내역과 근거 설명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러나 KBS 인상안은 산출내역과 근거 설명 없이 인상 금액만 제시됐을 뿐이다. 이걸 안건으로 상정한 것 자체가 여당 추천이사들이 거수기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되니 수신료 인상을 둘러싼 논란의 확산은 불가피하다. 미디어공공성포럼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윤석민 교수는 ‘30년째 묶여있는 수신료’를 언급하며 “정치권, 학계, 시민운동단체들이 오히려 공영방송의 근거를 허무는 낮은 시민적 성숙도가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고, 야5당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KBS수신료프로젝트팀 김대식 박사는 “참여정부 시절 수신료 인상이 좌절된 것도 정치적 이유 때문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라며 정치적 논리에 휘둘리는 수신료 인상의 문제를 지적했다. 이같은 주장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만 현 인상안의 산출내역과 근거가 무엇이냐는 논란의 핵심에는 모두 비껴서 있다. 수신료 인상에 대한 찬반의 태도를 떠나 모든 판단은 인상안의 산출내역과 근거를 중심에 두고 이뤄져야 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열쇠를 쥐고 있는 이사회 역시 KBS의 껍데기 뿐인 인상안을 두고 가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이사회 자신의 인상에 대한 판단과 합리적인 인상안을 제시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이같은 기대는 더 이상 충족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여야 정치권이 구성한 11인의 비상임 이사들이 KBS의 경영 정보를 제한적으로 보고받는 상황에서 공영방송 재원 운용에 대한 거시적인 해답을 내놓는다는 것은 민주적 운영 차원 뿐만 아니라 제도적인 차원에서도 여의치 않다는 결론이다.
이사회가 회사안을 일방 상정한 마당에 이사회가 주관하는 여론수렴과 사회적 논의의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다. 야당 추천이사들은 이번 이사회 논의 과정을 시민사회에 자세히 보고함과 동시에 논의를 사회적으로 확대하기 위한 후속 실천을 도모해야 한다. 이사회 전체의 합의에 따른 사회적 논의가 불가능하더라도 할 수 있는 모든 논의 공간을 여는 것이 현재 야당 추천이사들에게 부여된 소임이다.
야5당은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수신료 정책을 결정하는 기구를 국회 산하에 설치해야 한다. 공영방송 재원 산정과 운용을 위해 수신료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시민사회와 학계 등에 일정한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 수신료 산정과 조사기관 설립 및 운용, 지역분권화를 고려한 배분, 투명한 재원 운용의 감시감독 기능을 담지할 기구가 마련된다면 윤석민 교수나 김대식 박사가 지적하는 문제들도 순리적으로 해결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수신료 인상에 관한 한 시민사회와 정치권이 한편으로는 폭력적인 인상 추진을 막는 필사의 실천을 기울여야 하고 한편으로는 제도적 방안과 사회적 논의를 통한 결론 도달 노력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2010년 6월 24일
언론사유화 저지 및 미디어공공성 확대를 위한 사회행동 (미디어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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