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다지기 2호 2002. 8.>

[쟁/점]

길거리에 나선 외국인 노동자들의 함성

양혜우:: 한국이주노동자 인권센터 소장

퇴근시간, 서울을 조금 벗어난 의정부, 안산, 광주 등지에서 시내버스를 타면 승객의 대다수는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이다. 구리 빛의 동남아사람, 꼬불꼬불한 곱슬머리의 아프리카사람, 큰 키에 푸른 눈의 이국적인 러시아 사람들. 서로 다른 국가의 사람들이 같은 삶의 목적지를 향해 한국이란 작은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들이 한국의 37만 이주 노동자들이다.
이들 37만 명의 외국인 노동자 중 7만이 산업 기술 연수생이고, 약 30만 명이 소위 불법체류자로 불리는 미등록자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그리고 지난 6월 정부는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자진 신고 기간을 주어 2003년 3월까지 1년간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게 된 사람들이 약 25만 6천명이다. 이러한 자진등록 제도는 그 동안 언제 붙잡혀 강제출국 될지 몰라 숨죽이며 살았던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조그마한 숨통이 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이들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들이 자유를 만끽하기도 전에 '불법취업 근절 방안'이라는 외국인 노동자 정책을 지난 7월 발표하였다. 정책의 주된 내용은 오는 2003년 3월까지 30만 명의 모든 외국인 노동자를 강제 출국하고, 그 빈자리에 문제의 산업연수생을 대거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그 동안 산업연수생은 공장에만 배치되었는데 이제는 농축산, 건설부분에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놓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부의 발표가 나자마자 100여명의 외국인 노동자들과 20여 개의 외국인 노동자 대책협의회 소속 외국인 노동자 상담 단체들은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산업 연수제도 철폐, 강제 추방 반대"를 외치며 무기한 농성에 돌입하였다. 왜 산업 연수제도는 철폐되어야 하는가?

외국인 10만 명에 검은 돈 5천억원.

산업 연수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송출비리이다. 현재 14개국에서 산업기술 연수생이 8만명이 도입되는데, 이들이 한국에 오기 위해서 지불해야 되는 브로커 비는 1인당 평균 500만원 선이다.
이는 인력을 모집하는 업체들이 국가 기관이 아닌 중소기업 협동조합에서 위탁을 받은 개인업자들이어서 한국에 오기를 희망하는 사람은 많은데 한국에 올 수 있는 자리가 한정적이다 보니 치열한 경쟁이 일어나 웃돈을 주어야만 한국에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산업연수생 도입으로 인한 뇌물 수수가 해마다 발생하고 있는데 송출 비리에 대한 개선책은 전무하다. 그 동안 외국인 노동자 인권 단체들은 끊임없이 현재의 인력 송출을 국가대 국가의 쌍무 협정으로 하여 가난한 나라의 노동자를 착취하는 이런 뇌물수수와 검은 돈의 브로커비 문제를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하여 왔으나, 정부는 현 인력 송출 제도의 변화 없음을 주장하고 있다. 이는 연수생을 도입하면서 생기는 막대한 이익 즉 연수생 10만 명에 5천억 원을 벌 수 있는 황금을 낳는 거위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번 작업장은 영원한 작업장.

두 번째 산업 연수제도의 문제점은 작업장 이동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공장에서 일하다가 한국인들로부터 상습적인 폭언이나 폭행을 당해도 산업 연수생들에겐 공장을 옮길 자유가 없다. 30-40Kg의 무거운 원자재를 하루에도 수십 차례 운반하다가 다친 허리가 꾀병이라며 '더 이상 너같이 게으른 놈을 고용할 수 없다'며 집으로 강제 출국시켜 한국에 오기 위해 진 빚을 갚지도 못한 채 그대로 쫓겨가야 하는 것이 산업연수생의 처지이다.
이렇게 외국인 연수생들에게 작업장 이동이 불허되기 때문에 수없이 많은 인권유린 및 폭력 사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기협과 한국정부는 이러한 작업장 통제가 연수생을 쉽게 관리할 수 있고 노동력을 잘 통제할 수 있다며 현행의 제도를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작업장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권유린에 대한 철저한 감시와, 작업장 이동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외국인 산업연수생들의 처지는 '노예'와 전혀 다를 바 없다.

죽도록 일해! 일만 해!!!

세 번째는 외국인 연수생에 대한 저임금의 문제이다. 많은 산업연수생들이 800만원에서 1000만원의 거액의 브로커 비를 지불하고 한국에 왔는데 이들이 받을 수 있는 한달 기본급은 고작 48만원 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연수생들은 1년 8개월간은 한국에 올 때 진 빚을 갚는 기간이고, 남은 기간 1년 4개월만 자신이 벌 수 있는 순수한 수입이 되는 셈이다. 이렇게 과다한 송출비용에 낮은 임금을 받다보니 하루빨리 빚을 갚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 해야 한다. 그래서 이들 외국인 연수생들은 주말도 없이 하루 평균 12시간이상의 중노동을 해야 하는 것이다.

지난 봄 의정부의 한 공장에서 일하다 다친 중국 교포 배씨는 중국에서 1200만원이라는 돈을 내고 연수생으로 입국하였다. 그러나 한 달 월급이 고작 48만원 밖에 되지 않자 언제 빚을 갚나 싶어 한국에 온지 2달 반 동안 한번도 쉬어본 날 없이 매일 16시간씩 일했다고 한다.
회사측에서는 기왕이면 수당이 적은 외국인 연수생들에게 잔업 꺼리를 다 맡기는 게 이익이다 싶어 더 일하고 싶은 한국인들에게도 잔업을 주지 않고 모든 일거리를 외국인 연수생들에게 다 주며 새벽 1-2시 심지어는 일요일까지 일을 시켜왔다. 그러자 함께 일하는 한국인들은 '외국 놈들이 우리 일거리 다 뺏어 간다'는 원망을 하며 외국인 연수생들을 미워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배씨를 비롯한 연수생들은 아무리 쉬고 싶어도 쉴 수 없는 처지이다. 사고 당일도 배씨는 전날 새벽 2시까지 일한 탓에 견딜 수 없는 피로를 느껴 ' 제발 오늘 하루만 쉬게 해 달라'고 사정하였으나 공장 관리자가 화를 내는 바람에 배씨는 하는 수 없이 일요일 특근을 시작했다. 배씨는 굉음을 내는 기계 앞에서 피곤과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깜빡 잠이 들었는데, 그 사이 기계 로울러에 팔이 빨려 들어가 배씨는 비명을 지르고 의식을 잃고 말았다. 깨어나 보니 배씨의 팔은 오른쪽 어깨까지 절단되었고 조금만 늦었어도 목숨을 잃을 뻔했다고 한다.

배씨는 이 끔찍한 재해가 회사측의 무자비하고 살인적인 강제 노동 때문이었다고 울분을 토하며 한 달에 두 번만이라도 쉴 수 있었으면 이런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가슴을 쓸어 내린다. 배씨의 주 44시간의 기본급이 48만원이었는데 그가 받은 한 달 월급이 128만원이었으니 그가 얼마나 장시간 노동을 했는지는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연수제도 폐지하고 노동허가제 실시해야...

정부는 이제라도 비리의 온상이자 인권 유린의 근본인 산업기술 연수 제도를 철폐하고 노동허가제를 실시해야한다. 노동허가제는 한국에서 일하고자 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노동허가권을 부여하고, 이들이 내국인과 동등한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또한 노동허가권을 가진 외국인 노동자는 정부가 운영하는 취업 정보센터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일자리를 찾은 후 출입국 관리소에 등록함으로 한국 체류 허가권을 받을 수 있다. 노동허가제는 작업장 이동이 보장되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체력과 적성에 맞는 일자리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고, 회사에 의해 인권침해, 부당행위를 당했을 경우 작업장 이전의 자유가 보장되므로 그 동안 발생된 인권유린 사태를 예방할 수 있다.
또한 인력 도입은 국가대 국가의 계약을 통해 도입되므로 과다한 송출 비용이 전면 폐지되어, 돈을 벌기 위해 생사를 건 장시간의 살인적인 노동과 이로 인한 산업재해, 질병 발생 등을 예방할 수 있는 외국인 노동자 통제보다는 자율권을 우선에 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 노동허가권을....

한국의 불법 체류자 즉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 수는 30만 명이라는 숫자는 그 동안 정부가 외국인력 도입을 묵인 방조해 온 결과이다. 따라서 정부는 이제라도 그 동안 외국 인력 관리에 대한 무책임함을 시인하고 보다 바람직한 제도를 추진해야 할 것이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30만 외국인 노동자의 강제 추방은 외국인 노동자와 이들을 고용하는 사업주, 국제적 관계를 무시한 정책으로 결코 외국인 이주 노동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없다. 따라서 그 어떤 것 보다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현재 각 공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들을 전원 사면하고, 이들에게 제일 먼저 노동허가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노동 허가권은 한국에 5년 이상 장기 체류한 사람들에게는 1년 정도의 노동허가권을 부여하여 기간이 만료된 후 귀국할 수 있도록 하고, 한국에 입국한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비교적 현실적인 기간인 2-3년 동안 노동할 수 있는 노동 허가권을 부여한 후 단계적인 인력 로테이션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 만일 지금의 30만 명의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를 모두 몰아내고 새로운 인력을 도입한다면 심각한 언어 소통 문제와 숙달된 기술력 부족의 문제, 빈번한 산업재해가 발생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따라서 정부는 이제라도 산업 기술 연수생을 통한 단기적인 이익 챙기기에 급급하지 말고,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을 존중하고 노동권을 보호하는 정책을 수립하여야 할 것이다.

ps: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외국인 노동자'라는 용어가 많이 쓰이고 있지만, 국제적으로는 '이주 노동자(migrant worker)'라는 말이 통용되고 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라고하면 '노동자'이기 전에 내국인과는 다른 '외국인'으로 먼저 인식되어 같이 살아가고, 정착할 수 있는 존재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주 노동자는 우리와 다른 '외국인'이 아니라 일자리를 찾아서 멀리 '이주'해 온 '노동자'일 뿐입니다. 노동자라는 인식이 먼저 된다면 이주노동자들의 거주 문제, 가족문제, 노동권 보호의 문제가 당연한 권리로 받아들여 그들이 정착할 수 있는 토대 마련이 자연스러워질 수 있습니다. ---노동센터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