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다지기 2호 2002. 8.>

[여/성/노/동/상/담]

대한민국 정부, 이것만은 꼭 지킵시다!

이임혜경::여성노동센터 상담실장

민우회 사무실 앞에는 서울시 교육청이 자리잡고 있다. 컴퓨터를 사용하다가 한 번씩 교육청 건물을 바라보며 생각에 빠질 때가 있는데, 오늘은 '기본이 바로 된 어린이'라는 문구가 눈에 딱 들어왔다. 허허참, '기본이 바로 된'이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기본이라는 것이 어떤 기준인지 모르겠으나, 교육청이 실내에서 조용히 하고 줄서서 차례를 지키는 어린이를 기본이 바로 된 것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개인마다 자신의 상황에서 지켜야 하는 기본이나 원칙이 있을 것이다. 그건 개인 뿐 아니라 정부나 기업도 마찬가지다.
이런 이상한(?) 얘기를 꺼낸 것은 민우회로 들어온 한 상담에 대한 얘기를 시작하기 위해서다. 6월 말, 상담을 위해 찾아온 A씨가 풀어놓은 내용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나갈지 고민이 한참 되는 것이었다. 사건은 IMF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국가가 단행한 구조조정으로 시작된다. 결국 조직에서 힘이 없는 기능직 공무원을, 그리고 여성만을 최우선으로 짜르는 것으로 축소 인원수만 무리하게 맞추면서 발생한 일이다.

A씨는 국세청 일선 세무서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교환원이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99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국세청에서는 서울지방청과 6개 지청 교환원 14명을 제외한 모든 교환원 전원에게 사직서 받을 것을 일선 세무서에 지시하였다. 이유는 교환원 업무를 자동응답시스템(ARS)으로 교체한다는 것이었다.
이후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6개월 정도를 어떤 때는 징계위원회를 열어 징계를 해서 쫓아내겠다는 협박을 하기도 하고, 어떤 날에는 출근을 하자마자 과장이 불러 사직서 제출을 강요하면서 자진해서 퇴직하는 사람들은 재임용 시에 우선하겠다는 회유를 하기로 했다. 교환원들은 하루하루 피를 말리는 고통과 견딜 수 없는 비애감을 느끼며 비인간적인 취급을 당하게 되자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일부는 사직서를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A씨를 비롯한 100여명의 교환원들은 결국 국세청에서 마련한 통일된 문구에 의해, 담당자들이 불러주는 대로 사직서를 받아썼다. 이들은 국세청 내에서 '조직퇴직자'로 분류되고, 국세청은 끝까지 사직서 제출을 반대하며 버틴 나머지 26명의 교환원들은 같은 날인 99년 7월 31일자로 일괄 직권면직 시켰다.
이후, 무리한 교환원 일괄감축으로 구조조정의 머릿수는 맞추었으나, 막상 설치해보니 교환원 없이 ARS방식만으로는 업무가 불가능하자 국세청은 1개월(!)만에 교환원들을 전원 다시 불러 1년 단위의 계약제 직원으로 채용한 것이다.
그래서 A씨를 비롯한 조기퇴직자로 분류된 많은 교환원들은 99년부터 2002년 8월 현재까지 '계약직'으로 일을 하고 있다. 연말마다 재계약의 불안감으로 시달리고 종전에 자신들이 하던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정규직 공무원의 신분이 아니다. 때문에 연금, 호봉, 퇴직금, 각종수당 등의 혜택은 전혀 없다. 예를 들어, A씨의 경우 10년이 넘게 일을 했고, 계속 일을 했다면 기능직 9등급 16호봉으로 월 1백 9십 만원 정도의 임금을 받을 수 있으나 계약직인 현재 월 895,833원의 임금을 받고 있다. 똑같은 일, 실제로는 종전 업무량의 2배에 가까운 일을 하고 있음에도 딱 1/2의 월급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에 조기퇴직자는 국세청에 질의서와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정규직으로의 복직활동을 집단적으로 전개하였고, 현재 행정소송을 진행 중에 있다.
이 과정에서 두 번의 국세청 회신이 있었다. '기능직 공무원 정원감축은 기능직 공무원 합리화 계획에 의거하여 정부 전 부처에 대해 공통적인 직렬별 감축기준에 따라 감축되었으며 사무원, 위생원, 교환원, 운전원, 난방원, 방호원에 대하여 각각의 동일한 기준으로 감축된 사항으로 교환원만을 대상으로 감축한 것은 아니다'라고 답변하고 있다. 덧붙여 '교환원의 결원이 부족하여 조기퇴직자 모두를 정규직으로 채용할 수는 없으며, 순수 정원 증원도 어려운 실정이나 앞으로 계속해서 관련부처와 정원 증원을 협의해 어쩔 수 없이 직장을 떠나신 분들이 다시 근무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라고 한다.
그리고 국세청내 교환원의 결원이 생기면 법에서 규정한 절차에 따라 채용할 것이라는 답을 써서 국세청은 답안지를 제출했다.

정부가 내 놓은 이 답안지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한마디로 기본이 바로 되어 있지 않다는 말이다. 첫째, 구조조정 합리화 계획의 불합리성이다. 어떻게 업무가 불가능할 정도의 후닥닥 일괄감축 강행이 합리화 계획에 따른 것일 수 있나. 눈에 보이기식, 숫자 맞추기, 얼렁뚱땅 구조조정이다. 이는 1개월만에 재고용된 교환원들만 보더라도 입증이 된다. 즉 교환원은 한시적으로 특별한 기간에만 필요한 업무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필요한 업무라는 것이다.
둘째, 교환원의 결원이 생기면 채용한다고 했는데, 이미 국세청이 말하는 교환원은 결원상태이다. 이것은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교환원이 증거이다. 이들은 해고(!) 이전과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 아니다. 더 열악한 조건에서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직장을 떠나신 분'이 아니라 다시 돌아와야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국세청의 필요에 의해 해고되었고, 다시 국세청의 필요에 의해 일을 하고 있다. 이미 결원에 의해 교환원들은 계약직이라는 꼬리표를 매달고, 재계약을 하며 1/2의 임금을 받으며 열악해진 노동조건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국세청은 계약직 교환원을 정규직으로 복직시키는 일만 남았다. 26명의 직권 면직자들이 복직이 된 것도 당연한 것이고, 잘못된 인력구조조정 계획으로 피해를 본 조기퇴직자들의 복직도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그 형식은 국가공무원법 제28조 제 2항 제1호에 의거한 특별채용이든 뭐든 상관은 없다. 계속근로를 간절히 원하는 이들에게 본래의 자리를 되찾아 주어야 한다.

기업의 이윤만을 추구하여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내몰며 노동 착취하는 비정규직화가 큰 문제로 떠오르는 현 시점에서, 대응책을 내오지는 못할망정 비정규직화에 발 맞추는 정부의 행태를 이해할 수 없다.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계약직'이라는 이름으로 정규직과의 차별을 당하도록 부추기는 정부는 '기본이 안 된 정부'라는 꼬리표를 뗄 수가 없다. 대한민국 정부, '이것만은 꼭 지킵시다'라는 표어 하나 만들어 달 일이다.

기본이 바로 된 국세청

♠ 머릿수 맞추기에 급급한 비합리적 구조조정 안 하기
♠ 잘못된 일은 빨리 사과하기
♠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내몰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