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다지기 3호 2002. 10.>

[쟁/점]

성폭력피해 사실의 공개, 과연 명예훼손일까?

박정옥:: 여성노동센터 상근활동가

성폭력 가해자의 명예훼손 역고소는 성폭력 추방운동에 대한 반대움직임이다.

KBS노조 전 부위원장의 성폭력 피해자 2인과 피해자를 지원하고 있는 100인 위원회를 가해자가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사건, 죽암휴게소 여성노동자이면서 직장상사에게 지속적인 성희롱을 당해왔던 성희롱 피해자가 가해자에 의해서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된 사건, 최근 동국대 K교수가 성추행 피해자를 도왔다는 이유로 동료 교수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사건 등 최근에 성폭력 피해자와 지원 단체를 상대로 한 성폭력 가해자들의 명예훼손 역고소 사례가 늘고 있다.
이러한 가해자의 명예훼손 역고소 사건은 피해자가 자신의 성폭력 피해를 법적으로 해결하고자 고소한 경우 외에도, 고소 이전에 학내에서나 직장내에서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는 과정, 그리고 자신의 피해 사실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는 과정, 심지어는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유죄 판결이 난 이후 등 피해자와 지원 단체가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고자 전 과정에 걸쳐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이러한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명예훼손 역고소는 아직도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공개하기 어려운 사회적 환경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은 많은 피해 여성들이 자신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공개하고 해결하려는 노력 자체를 막는다. 그래서 그 동안 자신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공개하고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에 찬물을 부어 다시 성폭력 피해자를 침묵시켜 성폭력 사실을 은폐하고 우리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성폭력에 대한 문제제기 자체를 어렵게 만드는 결과를 낸다.
성폭력 가해자들의 명예훼손 역고소 경향은 성폭력 사건에 대한 가해자들의 반격이며, 그것이 피해 여성들과 지원단체, 그리고 아직 피해사실을 공개하지 않은 많은 피해 여성들에게 미치는 악영향을 인식하면서 이에 대응하려는 노력들이 나타나고 있다. 성폭력 가해(혐의)자들이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여성단체, 지지집단 혹은 피해당사자를 고소하는 사건들이 빈발하고 있는 것에 대한 대책활동 및 사회여론화를 위해 결성된 '성폭력 추방운동에 대한 명예훼손 역고소 공동대책위원회'(일명 적반하장 공대위)의 활동들이 그것이다. 공동대책위원회에서는 지난 10월 22일에 '성폭력 가해자의 명예훼손 역고소,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를 개최하여 이의 문제점을 여론화하고,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여러 측면에서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현재 검찰 조사중이거나 재판이 진행중인 성폭력 가해자들의 명예훼손 역고소 사례들을 중심으로 이러한 경향을 분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쟁점, 방안들에 대해 논의되었다. 먼저 성폭력 가해자들의 명예훼손 역고소는 지금까지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들이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에 대한 가해자들의 반대 움직임이라는 점에 동의하면서 명예훼손 역고소 사건 판단에서 핵심이 되는 진실성과 공익성에 대한 논의가 주로 이루어졌다.

성폭력 사실의 진실성 혹은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성

성폭력 가해자들은 피해자의 성폭력 피해 사실이 허위라면서 [형법 제307조 2항]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피해자들을 고소하는 것이다. 이에 피해자들은 [형법 제310조] '위법성 조각 사유'에 따라 자신이 당한 성폭력 피해 사실이 진실이고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공개한 것은 공익성 이였다는 점을 증명해야 명예훼손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다. 따라서 현재 진행중인 명예훼손 역고소 사건에 있어서 성폭력 사실의 진실성 혹은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성, 그 공개의 공익성이 핵심 주제가 된다.

피해자가 자신에 대한 가해자의 성폭력 사건이 진실임을 입증하는 데 있어서는 검찰이나 경찰의 성폭력 사건에 대한 조사가 결정적이다. 성폭력 사건의 해결 과정에서 수사기관의 수사태도에 대해 그간 많은 문제가 지적되어 왔다. 다른 범죄와 다르게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공개하게 되면 가해자보다는 피해자가 유발한 것 아니냐(왜 그렇게 늦은 시간에 다니느냐, 왜 술을 같이 마셨느냐 등)는 비난, 가해자를 두둔하는 분위기(한 번의 실수이다,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다 등)로 인해 피해자가 더 큰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검·경찰 등 수사기관의 관계자들 역시 성폭력 사건에 대한 이러한 사회적 통념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많은 인권침해 등의 문제와 함께 성폭력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는데 걸림돌이 된다. 특히 KBS노조 전 부위원장 성폭력 사건 등과 같이 고소 시효가 경과함에 따라 피해자가 성폭력 사건을 고소한 것이 아니라 가해자가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경우, 성폭력 피해자는 '피해자'가 아니라 잠재적 범법자인 '피의자'로 조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수사 관계자들의 이러한 통념에 기반한 조사는 피해자보다는 가해자에게 유리한 판단을 하게 될 가능성을 높인다.
성폭력 사건은 대부분 가해자와 피해자 둘만이 있는 상황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커서 증인이 없고, 대체로 아는 사람에 의해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공개하는 데 큰 부담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성폭력 피해 이후 시간이 많이 경과되는 경우도 많고, 성폭력 피해 사실을 증명할 증거는 피해자의 진술이나 정황 외에 명확한 다른 증거도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폭력 가해자는 자신의 행위를 강경하게 부인하게 되므로 이 사건의 진실성에 대해서 피해자의 진술과 성폭력 사건이 일어난 정황에 대한 판단이 중요하게 된다. 이때 사건을 조사하는 사람은 기존의 통념보다는 피해자의 관점에서 사건을 봐야 하고, 또한 사건이 일어난 정황에 근거하여 사건이 일어났다는 확실한 물증이나 증인이 없다고 해도 성폭력 사건이 진실에 가깝다는 상당성이 밝혀지면 성폭력 피해 사실의 진실성을 인정해야 한다.

성폭력 피해 사실의 공개는 최소한의 자구책에 불과하다.

두 번째 위법성 조각 사유가 되는 것이 공익성이다. 성폭력 사건에 있어서 공익성의 문제는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공개한 것이 과연 공익을 담보하는 것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피해자가 성폭력 사건 해결을 위해 주변 사람이나 단체에 도움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피해 사실을 공개하거나,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공론화의 필요성에 의한 공개라든지, 혹은 성폭력 사건이 해결된 이후 그 사건과 해결 과정을 알리기 위해 피해 사실을 공개한 경우 등 거의 모든 경우에 공익성 문제가 제기된다.
아직까지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공개하게 되면 오히려 피해자를 비난하는 분위기인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공개하는 것은 피해자 개인의 이익이나 가해자에 대한 비방 수준으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성폭력 피해 여성이 자신의 피해 사실을 성폭력으로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인이나 단체에 도움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피해 사실을 공개하는 것은 그 공개 자체가 피해자 스스로 치유하는 과정이며, 제도적 해결책이 부족한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소한의 자구책이다. 또한 이는 성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사회에 알리고 올바른 해결을 위한 첫 과정이다. 따라서 성폭력 사건 해결에 있어 중요한 방법의 하나이며 첫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 성폭력 피해 사실의 공개에 대해 그 공익성을 의심하는 것은 성폭력 사건을 그냥 묵인하고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하라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된다고 할 수 있다.

피해자나 지원 단체가 성폭력 사건을 사이버 상에서건 문서로건 공개한 것은 그 가해자를 비방하기 위한 목적이라기보다는 성폭력 사건을 둘러싼 왜곡된 통념에 문제제기하고,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제 2, 제3의 성폭력 사건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역할, 혹은 이미 일어난 성폭력 사건으로 고통받고 있는 드러나지 않은 피해자들을 간접적으로 치유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공익적인 목적을 가진 것이다.

최근의 성폭력 가해자의 명예훼손 역고소 경향과 관련해서 이미 검찰이나 경찰에서 조사하는 중이거나 재판 중인 사건이 제대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점은 명확하다. 이와 더불어 이처럼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려는 노력에 대한 반격으로 일어난 명예훼손 역고소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제반 조건을 마련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에 성폭력 가해자에 의한 명예훼손 역고소를 잠정적으로라도 금지시키는 방안과, 징벌적 손해배상 등 성폭력에 대한 고용주의 법적 의무와 책임을 무겁게 부과하여 성폭력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줄이고, 혹 일어난다 해도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방안 등도 심각하게 고려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과 함께 아직도 우리 사회에 여전한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온정주의, 성폭력 사건에 대한 왜곡된 통념 등을 교정하려는 노력 역시 계속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 참고자료
장임다혜 외(2002), '성폭력 가해자의 명예훼손 역고소,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 자료집.
한국여성민우회 등(2002), '성희롱 이중 피해자 김00 즉각 석방과 죽암휴게소 성희롱 사태 해결을 위한 공동기자회견문'.
한국여성민우회 등(2001), 'KBS 강00의 명예훼손 고소(2001형제10825)와 관련한 의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