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KBS는 수신료의 ‘수’자도 입 밖으로 내지 말라
[논평] KBS는 수신료의 ‘수’자도 입 밖으로 내지 말라
-- KBS 수신료 현실화 공청회에 부쳐
오늘(8일) KBS 수신료 현실화 공청회가 열렸다. ‘디지털 전환과 공적서비스 확대를 위한 텔레비전방송수신료 현실화에 관한 공청회’라는 긴 이름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공청회는 무슨 공청회라는 건지, KBS는 거울도 보지 않는지 묻고 싶다.
KBS는 공영방송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정권의 방송장악에 시종일관 휘둘려왔다. 대통령과 방통위원장이 막강한 권한을 악용해 불법과 편법으로 신태섭 전 이사와 정연주 전 사장을 퇴출시켰고 이에 대해서는 사법부조차 준엄한 심판을 내렸다. 이병순 사장은 친정부 체제를 구축하여 시사보도프로그램을 개편하고 양심적인 구성원들을 징계하고 정권의 입맛에 맞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왔다. 취재 현장에서 박수와 지지를 받던 KBS 이야기는 먼 과거의 일이 되었다. 지금 KBS는 9월 1일부터 임기를 시작한 시청자위원이 누구인지도 발표하지 않을 만큼 폐쇄적이고 자기파멸적이다. 시민들은 KBS를 향해 냉대와 조소와 함께 안타까운 마음으로 비판과 변화를 바라고 있다. 사태가 이 지경인데 이런 상황에서 난데없는 수신료 현실화에 관한 공청회라니 대체 가당키나 한 일인가.
KBS의 오늘 공청회는 요식과 정당성 어느 것도 갖추지 못했다. KBS는 이번 공청회를 위해 미디어운동 단체와 언론 관련학회에 패널 참여를 요청했지만 여러 곳에서 거부당했다. 제안 과정에서 공청회를 열어 의견 수렴의 알리바이를 확보한다는 의도 이상의 의미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신료의 수혜자인 KBS가 직접 공청회 주체가 된다는 것도 적절치 않은 일이다.
예상된 일이지만 KBS는 수신료 현실화와 공영방송의 비전에 대한 설득력 있는 호소문을 내놓지도 않았다. 오늘 공청회 자리에서 KBS는 수신료 현실화 안을 페이퍼로도 공개하지 않았다. 발표를 한 정책기획센터장은 회사의 안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약식의 형태로 패널에게만 페이퍼를 배포했다고 밝히고, 정작 의견을 들어야 할 행사 참석자들에게는 구두로 설명했을 뿐이다.
안의 요지는 KBS 자체 시뮬레이션 결과 광고 비중을 20% 선으로 줄이는 방향에서 4500-4800원 정도로 수신료를 올리자는 것이었다. 자구 노력으로 고통을 분담하면 200-300원 정도를 더 줄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추진 목적으로 △공영방송의 정체성 확립과 공익적 책무 확대 △디지털 전환 완수와 수신환경 개선 △방통융합시대 공적 가치와 시청자 권리 보호 등을 들어 재원의 필요를 이야기했다. 하지만 수신료 인상의 근거와 정당성에 대해서는 추상적인 필요를 나열했을 뿐이다. 지금 공영방송으로서의 KBS가 어떤 지위에 놓여 있고 시민사회로부터 어떤 요구를 기대를 부여받고 있는지 등에 대한 현실 진단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추진방향으로는 2007년 현실화 시도가 정치적 프레임 때문에 실패했다는 평가속에 내년 지방선거 등 정치적 변수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추진하고, 29년째 2500원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한편 노사 공동보조를 통한 자구방안을 모색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적 책무 확대 계획안도 수립중이고, 국민, 전문가 여론조사도 진행중이며, 재무구조 개선방안 회계법인 자문용역도 추진중이라며 관련 데이터를 제시하지 않았다. 수신료 인상을 토론할 만한 아무런 자료조차 내놓지 않고 공청회라고 하니 우격다짐식 내리꽂기라는 인상만 주고 말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9-10월 이사회에서 의결하고 10월 중 방통위에서 검증한 후 국회에 올리겠다는 일정을 내놓았고, 현행 법 체계에 따라 추진하지만 정치권에서 공영방송법 논의를 진행하면 병행해서 다뤄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공영방송법 수용을 기정사실화하기까지 했다. 당혹스러운 일이다. 현재까지 확인된 공영방송법은 KBS를 관영방송으로 순치하고 나머지 공영방송은 민영방송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KBS의 이같은 입장은 KBS만이 수신료가 주는 안락한 자리를 독차지하고 나머지 방송은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시장으로 내몰아도 좋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수신료를 감당해야 할 시청자, 수용자, 시민 어느 누구도 납득하지도 동의하지도 않을 위험천만한 사태 인식이다.
공영방송이 제자리를 찾을 수만 있다면 수신료 현실화는 얼마든지 검토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 KBS가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명실상부한 독립을 확보하고, 편성.제작주체들이 자율적으로 공익적 공공적 프로그램을 생산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 공영방송 구성원들이 적정한 임금을 받으면서도 노동에 차별이 없도록 하고, 시민의 참여를 통한 퍼블릭엑세스의 확대와 수용자 주권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권리의 확장을 발전 방향으로 삼는다면 수신료는 4000-5000원이 아니라 그 이상도 책정할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 이런 방향을 놓고 토론이 이루어진다면 오늘처럼 제안하는 KBS도 안쓰럽고 보는 시민들도 안쓰러운 공청회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를 통한 시청료 인상 결정을 얼마든지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공영방송으로서 스스로의 얼굴을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전까지 KBS는 수신료의 \'수\'자도 입 밖으로 내지 말기 바란다.
2009년 9월 8일
언론사유화 저지 및 미디어 공공성 확대를 위한 사회행동(약칭 미디어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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