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다지기 6호 2003. 4.>

[딱!걸렸어]

3.8여성대회는 문화행사?

이보경:: 고용평등노동법연구위원회

3월 8일... 90여년전 미국의 1만5천여명의 섬유여성노동자들이 '정치적 평등권 쟁취'와 '노동조합 결성,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이후 세계여성노동자들은 매년 이날의 의미를 되새기며 여성들의 목소리를 모아 오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1920년에 처음으로 여성대회가 열렸으나 일제의 탄압에 의해 맥이 끊기고, 그 후 다시 여성해방주간의 선포로 열렸던 여성대회는 이승만 정권에 의해 중단되었다가 1985년에 와서야 다시 그 맥을 이어가게 되었다.

2003년 3월 8일. 여성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모으고자 쌀쌀한 날씨 속에서도 '성매매방지법 즉각 제정', '여성의 힘으로 반전평화', '양성평등을 위한 예산 확대'를 슬로건으로 다채로운 행사내용과 시민난장이 펼쳐진 3.8 여성대회가 대학로에서 열렸다.
행사가 시작된지 한시간 남짓 지나서 행사장에 도착하니 이대 응원단들의 공연이 막 끝나고 있었다. '축하공연이라고는 하지만 도대체 이 행사와 응원단들의 공연이 무슨 관계일까?'란 의문을 가지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예술집단 '오름'에서 준비한 생명의 탄생과 존엄성, 여성성의 위대함을 표현하는 퍼포먼스로 시작된 기념식은 참가단체의 깃발입장순서로 이어졌다. 마이크에서는 계속해서 단체들의 이름을 호명되고 있었지만 들리지도 않을 뿐더러 그 많은 단체깃발이 올라서기에는 무대가 너무 좁아 보였다. 2~3열의 횡대로 늘어선 깃발들은 바람에 흔들리며 엉켜있었다. 굳이 참가단체를 소개를 해야했다면 이렇게 깃발을 들고 우르르 몰려 올라갔다가 우르르 뛰어내려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시간상 긴 시간을 할애하여 참가단체를 소개할 수 없었다면 시민난장이 열리는 곳곳이나 아님 무대주변에 단체들을 제대로 홍보할 수 있는 자료를 붙인다거나 행사안내책자의 지면을 할애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았을까?

기념식 순서에서 3.8 기념 여성선언문을 낭독하는 그 자리... 그 자리에 눈에 거슬리는 것이 서있었다. 하얀 꽃으로 장식이 된 마이크였었는데, 그 꽃 뒤에서 선언문을 읽는 모습이 시낭송을 하는 소녀의 모습과 잠시 오버랩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게 선언문을 낭독하는 모습에서 95년 전 빵과 참정권을 위해 싸웠던 그 힘을 느끼는 것은 무리였다고 말을 한다면 너무 지나친 표현일까? 솔직히 난 선언문을 낭독하고 성매매방지법 제정을 위한 퍼포먼스나 여성의 노래를 부르는 마고의 공연 등을 보면서 하나의 문화행사에 참여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물론 여성의 목소리를 담아서 그것을 사회에 전달하기 위한 공연이라는 것은 알지만 너무 많은 공연이 그 의미나 무게를 반감시킨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95년 전 생존을 위해 처절히 싸웠을 그 여성들을 기념하며, 또 지금 살아가고 있는 힘든 여성노동자들을 생각한다면 3.8 여성대회가 하나의 문화행사처럼만 치뤄지는 것은 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여성권익 디딤돌과 걸림돌의 발표는 참으로 바람직한 코너란 생각이다. 서울시 여성정책관실을 폐지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하여 걸림돌에 선정되었던 이명박 서울시장. 걸림돌로 선정된 후 시청 출입기자들에게 여성정책관실 폐지에 대해 변명을 하며 자기 이미지제고에 연연해했다는 말은 이들이 이제는 여성들의 말을 더 이상 쉽게 또는 무시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행사내내 뒷편에 앉아서 무대주변을 둘러보니 참으로 많은 매스컴에서 취재를 나왔다. 한둘의 외국인 기자들도 눈에 띄었고... 이들은 행사내용과 관객들의 반응을 잡기 위해 연신 카메라를 들이 대고 있었다. 그런데 유독 객석의 가운데 부분에 카메라가 집중되고 있었다. 궁금해 엉덩이를 들썩이며 바라본 곳에는 한 무리의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자리를 하고 있었다. 행진하는 길에 보니 진짜 군복은 아니고 군복무늬의 망토를 걸친 사람들이었다. 거리 퍼레이드를 마치고 마무리 집회에서 이들은 그 군복을 찢으며 '반전평화'를 외쳤다. 마무리 집회에서의 그 퍼포먼스를 보여주기 위해 행사 처음부터 군복을 입고 앉아서 카메라의 집중을 받고 있었다는 것이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 잠깐의 퍼포먼스 때문이었다면 거리행진이 끝난 뒤에 군복을 입어도 괜찮았을텐데 처음부터 군복을 입고 여성대회에에서 보여주려 한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나중에 보도자료를 통해서 이들이 의도한 바는 부시의 광기로 인하여 전쟁이 우리 곁에 다가왔음을, 전쟁의 긴박함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들의 퍼포먼스는 단지 마무리집회에 한정되었던 것이 아니고 처음 군복을 입은 순간부터가 이들의 퍼포먼스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퍼포먼스에 대한 정보 공유가 없었기에 우리는 그 군복을 입고 있는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던 것이다. 행사내용에 대한, 기획의도에 대한 설명과 함께 행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면 더 쉽게 모든 것에서 하나가 될 수 있었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여성들의 행사가 대학로의 대로를 점거(?)하고 벌어졌다는 것은 참으로 기분 좋은 무엇이었다. 안으로 숨기만을 강요받던 여성행사가 그 넓은 도로를 막고서 (물론 행사로 인한 교통체증으로 많은 사람들이 불편한 것을 생각하면 좀 그렇지만 1년에 한 번 있는 여성들의 드러냄이기에 이해되어졌으면 한다.) 벌였던 퍼레이드는 묘한 흥분, 기대감 같은 것으로 다가왔었다. 앞으로 나의 딸들이 살아갈 세상은 지금보다는 여성노동자들이 한결 건강히 일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품게 했다. 이런 묘한 흥분과 기대감, 희망이 좀 더 커질 수 있도록 여성대회가 단순한 문화행사가 아닌 진정한 여성대회로 자리매김 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