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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삶 나의일]
스릴 넘치는 하루, 오늘도 무사히…
김혜진:: 여성노동센터 회원, 일상 속의 차별모니터위원회 '여신'
AM 9:00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여사님(우리 회사에선 아줌마들을 여사님이라 부른다. 극존칭을 사용함으로써 여사님적(?) 행동을 유발하기 위한 의도라고 한다.)들이 입고된 식자재를 내리느라 주방이 온통 시끌벅적하다. 하긴, 이 시간 뿐 아니라 주방은 항상 시끄럽다. 그 틈에서 뽈뽈거리며 안들어 온 게 없는지, 상태가 나쁜 야채는 없는지, 유통기한이 지난 건 없는지 체크하며 다니는 게 나의 하루 업무의 시작이다.
AM 11:00 조금만 있으면 또다시 전쟁이 시작된다. 전쟁에 대비하여 박카스로 여사님들의 심기를 편하게 해드리는 걸 빼먹으면 오랫동안 괴로워진다. 하루에 600명 이상의 사람이 한꺼번에 쏟아지면 홀과 주방을 미친 듯이 왔다갔다 하며 뛰어다닌다. 어쩌다가 준비한 음식이 부족하기라도 하면 사람들은 날 죽일 듯이 쳐다본다. 정말이지 먹는 것 앞에선 인간은 무서운 존재가 된다.
PM 2:00 이제 늦은 점심이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여사님들과 함께 오늘 점심은 어땠는지 얘기한다. 세척실의 여사님들은 오늘도 잔반(못 먹고 남겨온 음식)에 묻혀 죽을 뻔 했다고 투덜거리신다. 스스로 얼마나 먹을 수 있을지 판단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예전엔 정말 몰랐다.
PM 3:00 퇴근시간은 얼마 안 남았는데 할 일은 태산이다. 오늘 발주해야 될 것도 많은데 아직 시작도 못했다. 다음주 메뉴도 짜야 하는데, 내 메뉴에 내가 질린다. 1인량을 잡아야 발주량을 정하는데 1인량을 잡는 건 정말이지 어렵다. 사람들의 식욕은 나날이 늘어간다.
PM 6:00 무사히 오늘이 지나갔다는 것에 감사, 또 감사할 뿐이다. 내일은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걱정이 앞서지만 신이 아닌 이상 어떻게 알리요. 예감이 좋지 않다. 혹시 내일 위생점검이라도 뜨면 어떡하지? 난 위생점검이 정말로 무섭다.
학교 시절, 내가 봐왔던 영양사는 하얀 가운을 입고 파일을 하나 손에 끼고 식당 이곳 저곳을 고상하게 왔다갔다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가끔 주방 아줌마들에게 무섭게 지시를 하고 사무실로 돌아와서는 영양가를 계산하면서 메뉴를 짜는 사람, 그게 내가 알고 있던 영양사였다. 그러나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 ㅡ,.ㅡ
나의 하얀 가운은 고추장이며 간장으로 얼룩져 삶아도 해결되지 않으며, 급할 땐 나도 모르게 무거운 걸 뻔쩍 들어올려 팔뚝은 나날이 굵어지고, 거슬리는 사람들이 오면 아줌마들하고 수근대는 게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법이 되었으며, 매일 계산기를 두드리며 양파 값이 너무 많이 올랐다며 혼자 말로 신경질을 내곤 한다.
비록 현실은 나의 이상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이상 속의 영양사는 얼마나 재미가 없었을까? 조금 힘들긴 하지만, 항상 바쁘게 움직일 수 있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줄 수 있고, 스릴 넘치는 하루를 보내는 이 일이 조금씩 좋아지려고 한다.
난 매일 "오늘도 무사히"란 소박한 꿈을 꾸며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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