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삶나의일]
나는 5호선 열차 기관사
최영화:: 노동센터 회원
나는 5호선 열차를 운행하는 여자기관사이다. 흔히들 여자가 하기에 좀 거친 일이라는 선입견을 갖는데, 물론 좀더 힘이 좋고 키가 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초기에 여자 기관사를 비교적 많이 뽑게 된 것은 사실 공사 측으로서는 좀 실험적인 일이었다. 새로 도입한 자동화 시스템에 대한 맹신이 있을 때라 기관사의 역할을 출입문 취급이나 승객 서비스로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이 부분은 여자가 충분히 장점을 드러내리라는 계산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자동화 시스템은 얼마 전 대구지하철 사고에서 드러난 특별히 이례적인 상황뿐 아니라 일상적인 열차 운행에 있어서도 맹점을 드러낸다. 자동화를 위한 모든 조건이 양호할 때는 비교적 제 기능을 한다. 하지만 차량 고장이라도 날라치면 기관사는 동요하는 승객들 가라앉히랴, 사령통화, 고장조치, 사고 시 발생되는 엄청난 심적 부담까지 혼자 떠 안아야 한다. 기관사 역할에 차장의 역할이 고스란히 더해져 책임이 불어나기만 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자동화 시스템을 믿고 뽑은 여 기관사들이 제 기능을 못했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일상적인 승객취급에서부터 가장 우려했던 여객사상사고 대처능력까지 여기관사의 책임사고가 문제되었던 적은 거의 없으며 정확한 통계치를 낸다면 상당히 양호한 평가를 확신한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 나타났는데 야근문제와 임신이다. 과거 여성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야근금지'가 '취업차별' 구실이 되어서는 안되며 임신문제 역시 유고율을 높여 정원책정을 늘리면 되지만 문제해결은 보수적이며 경제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여자기관사를 가능한 뽑지 않는 것이 그것이다. 요 몇 년 새 여기관사들은 채용조건제한이나 면접 등을 통해 걸러져 고작 2명이 더 들어왔을 뿐이다. 그리하여 여기관사는 자신의 권리 주장이 어려운 '극소수 여기관사'가 되버린다. 이런 식의 해결은 단지 여기관사들 문제만은 아니다. 대구지하철 사고 때 급전만 되면 승강장을 빠져나가려고 사령과의 통화에 목을 매고 있던 기관사에게 승강장 상태, 화재상태만이라도 확인할 수 있는 차장이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일인승무에 대한 문제점을 다시 제기했지만, 공사 측은 새로 사람을 늘리는 방식이 아닌 안전관리실을 강화하여 결국 직원들 업무감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해결의 방향을 잡아간다. 노동조합에서는 싸움이 시작되기도 전에 늘상 명분과 실리, 투쟁과 조직강화라는 말들이 치열하고 또 지루하게 내부에서 대립한다.
당장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빤하다는 핑계를 들어 사랑스런 딸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늘 바쁜 듯이 향한다. 가슴속에 때때로 치미는 것들은 이라크 전을 보고 TV를 향해 쏟아내는 분노만큼이나 무기력한 것들일 뿐이다.
아이들의 놀랄만한 성장속도는 곧 내게 좀 더 제대로 사는 모습을 보여달라 채근하게 될 것이다. 누구 말처럼 '사회적 실천과 자아탐구'가 결합된 살아있는 삶을 통해 딸에게 모범을 보일 수 있을까 아님 지금처럼 안락하게 결국 침몰하게 될까...궁금하고.. 좀 불안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