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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걸/렸/어!]
난 '그들'이 불편하다
정승림:: 여성노동센터 회원, 노동센터 임시상근활동가
실망한다는 건 기대를 하고 있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특히나 사람.
그 사람이 내게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면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평소에 별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그들' 때문에 으레 그러려니 하다가도 불편한 감정을 갖게되는 순간이 적지 않다. 그리고 우습지만 별 중요치 않았던 '그들'의 행동 때문에 많은 시간을 생각하기도 하고 또 그만큼 우울해지기도 한다. 난 무얼 기대하고 있는 걸까.
얼마 전 '세계 반전평화 국제 행동의 날(10월 8일)'을 맞아 한국의 46개 단체가 모인 자리였다. 집회가 시작되자 반전평화 국제 행동의 날에 대한 발언이 이어지고,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여성들의 퍼포먼스가 오랫동안 벌어졌다. 전쟁이 휩쓸고 가는 공포와 참혹함, 다시 싹트는 생명의 움직임을 많은 고민과 시간을 들여 담아낸 흔적이 역력하다.
일년 전 이맘 때, 9.11사건으로 온 세계가 떠들썩하던 그때에, 전쟁을 반대하는 여성들의 이름으로 만났었던 그녀들인지라, 다시 한 번 그녀들의 건재함을 확인하고 내심 반가와 하던
중.. 누군가의 목소리
'어∼요염한데∼', '역시 퍼포먼스는 마른 여자가 해야해!'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
뒤에서 또 다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집회 내내 떠들어대던 두 명의 여자와 남자, 그들이다.
조금 전까지 퍼포먼스 진행을 위해 깃발과 피켓을 치워달라는 주최측의 말에 한참 불만을 지껄이다가 공연 중에도 피켓을 놓았다 들었다. 마치 들었던 피켓을 놓았다가는 선생님한테 야단맞을 것 같은 애들의 웅성거림이었고, 실제로 자세히 보니 한 00000당 소속의 대학생들이었다. 그렇지... 열심히 들고 있다 한 순간 내려놓아 신문사진에 자기 소속 당 이름이 쏙 빠져버리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그날 '그들'의 최대 목적이 그것이라면 큰일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종류의 대화. 여성의 몸에 대해 오가는 싸구려 언어들... 사실 흔해 빠진 것들이다.
그녀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안중에도 없는 '그들'. 그들의 대화를 듣다보니 순간, 그곳 집회 장소로 가던 8차선 도로 옆 종로 한 복판에서 빵빵하게 울려나오는 사운드 속으로 일제히 향해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겹쳐졌다. 족히 몇 백은 될 것 같던.
남이야 무슨 일을 하건(사실 거리캠페인 장소를 찾던 중이라 더 눈에 띠기도 했다)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무심히 지나가는 게 당연하던 그들의 발목을 붙잡은 건 남녀커플이 추는 라틴댄스공연이었고, 공연 보는 게 뭐 잘못이겠는가 마는 아무리 찾아봐도 관람하는 여자는 열손가락 안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은 그 무리의 관심은 라틴댄스나 음악보다는 춤추는 그녀의 몸에 가 있는 듯하다. 별로 신기할 게 없는 광경. 그리고 이상할 것 없는 '그들'.
그러나 이곳 집회에서 순간 헷갈린다. 나는 왜 저들과 함께 이곳에 있는 건가.
저 사람들은 반전과 평화에 대해 고민해 본적이 있을까? 여성을 철저히 타자화하고 소외시키는 종로거리, 그곳의 시선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눈을 가진 '그들'에게 '운동'은 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날 그 기억으로 그들 정당의 활동과 후보에 대한 생각까지 바뀌지야 않았지만, 집회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 여느 때 같으면 후원하고 동참하는 의미에서 작은 것이어도 후원 물품 하나 정도 사는 것은 늘상 있는 일이건만, 그날만큼은 같이 있던 누군가가 '그들'이 만든 뺏지 하나 사자는 게 영 내키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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