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다지기 4호 2002. 12.>

[딱/걸/렸/어!/]

여성신문사의 침묵

조성아:: 여성노동센터 회원, 여성주의 영어자료 읽기 위원회

얼마 전 여성신문사 전 이계경 사장이 한나라당으로 입당했다.
창간 초기부터 지금까지 여성신문과 함께 해 온 나를 포함한 많은 독자들에게 이계경씨의 한나라당 입당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여성의 정치세력화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여성정책에 있어서 가장 소극적이고 보수적인 한나라당에 입당했다는 것은 여성의 정치세력화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 여성공약을 보더라도 한나라당은 '호주제 임기내 폐지', '보육예산 9600억원' 정도에 그치는 등 타당에 비해 상당히 소극적인 공약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한나라당에 그 동안 호주제 폐지에 앞장서왔던 이계경씨가 입당한 것은 여성의 정치세력화가 아닌 개인의 정치세력화라고 밖에 볼 수 없으며, 그 동안 여성신문사에 대해 많은 애정을 가졌던 여성단체와 독자들에 대한 명백한 배신이 아닐 수 없다.
이계경 사장은 자신의 입당 사실을 신문사 내에 일체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 또한 중요한 민주주의적 절차를 무시한 행위이며, 긴 시간 함께 해 온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조차 지키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받아들이기 힘든 사건을 접하면서도 많은 독자들은 여성신문사의 공식적인 입장을 요구했었다. 그러나 여성신문사에서는 '이계경 사장의 선택은 여성들의 대 사회적 영향력을 확장하는 데 좋은 기회가 될 것이고, 그 선택을 충분히 존중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사고(社告)를 내보냈다. 과연 이것이 여성신문사의 명확한 입장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 되지 않아 이 사고와 달리 편집국 기자들의 입장이 담긴 성명서가 발표되었다. '이계경 사장의 정치적 선택을 지지하지 않으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민주적 가치 실현을 위해 매진할 것'이란 내용이었다. 나는 이 성명서의 내용이 여성신문사의 공식적인 입장이기를 바랬고 또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계경 사장을 비판하면서 꿋꿋하게 진보언론으로서 여성신문을 지켜나가겠다던 기자들이 사퇴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기자들이 사퇴하면서 인터넷을 통해 밝힌 '그것을 지켜나갈 수 없게 만든 이유'는 여성신문사 내에 '기자들의 여성주의적 관점이 여성신문의 대중화에 걸림돌이 된다'는 생각이 존재하고, 이러한 생각에 반대하는 기자들의 의견이 존중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도 여성신문을 믿어보겠노라 애정의 끈을 놓지 않았던 내게 있어서 두 번째 충격이었다. 이것은 이계경 사장이 정당행을 신문사 내에 알리지 않은 것에 대해 이계경 사장 한 사람만을 비판했었던 내게 그것이 아니라 신문사 내에 이미 민주주의라는 것은 무시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여성신문사의 진심이 담긴 공식적인 입장이 발표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여성신문사는 이에 대해 침묵만을 지킬 뿐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기자들이 사퇴하면서 밝힌 이유들과 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는 여성신문사의 모습은 결국 여성신문사의 방향성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여성신문사가 창간부터 내걸었던 '여성에 대한 차별을 배격하고 여성의 인권과 주장을 대변한다'는 '여성주의적 창간 취지'를 과연 제대로 지켜나갈 수 있을지 의심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나는 여성신문이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여성단체와 여성운동가를 비롯한 여러 독자들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여성신문사가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면 독자들에게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더불어 여성신문사는 많은 기대와 함께 국민주로 탄생할 때의 초기 창간 취지를 재확인하고, 여성주의적 언론으로서 정체성을 바로 세워야 할 것이다. 더 이상의 침묵은 여성신문사의 명확한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 많은 독자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결과라는 것을 인지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