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다지기 3호 2002. 10.>

[회/원/활/동/참/관/기]

애니어그램의 생경함과 나 자신과 대화하는 버거움

양지영:: 여성노동센터 회원, 신입모임

민우회 여러자리에서 애니어그램을 비롯한 여러 프로그램 얘기를 들었던지라 이번 워크샵에 대한 기대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내 성격유형도 찾으면서 노동센타 회원들과도 친해질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보였다.
평소 때 같으면 집에서 뒹굴뒹굴 방바닥을 무대 삼아 널부러져 있었을 짧은 시간인데 이 시간을 무척이나 뿌듯하게 보냈다는 생각이 든다. 애니어그램을 시작으로 공동체 게임과 화기 애애한 뒷풀이, 다음날로 이어지는 '평등 감수성 키우기'까지!.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있었고, 평소 술 마시고 유흥하러 가는 MT와는 다른 색다른 경험이었다.
질문지를 뽑아 돌아가면서 그 질문들에 대답하는 방식의 뒷풀이는 삼삼오오 친한 사람들끼리 술 마시게 되는 술자리 분위기를 새로운 사람들을 알아 갈 수 있는 자리로 만들었고, 웬지 사람들에게 친밀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다음날의 평등감수성 키우기 프로그램은 평소 사람들과 관계하는 데 있어 우리에게 익숙한 호칭이나 말투 등이 가지는 권위적인 면들을 깊게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해줬다.
1박 2일의 짧은 일정동안 내게 가장 기억 남는 것은 애니어그램 이었다. 장장 4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애니어그램이 이뤄졌는데 그 시간이 무척이나 짧게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내 함정을 찾아 나서는 길이 기존의 성격검사와는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평소의 명성을 들은바, '이번에는 확실하게 나의 성격을 알아낼 수 있겠구나' 하는 소기의 목적을 가지고 왔는데, 에잉~ 나보고 찾아다니라니. 넘 어렵다. 그냥 질문지 나눠주고 거기에 체크하면 안되나? 내가 이렇게 나의 성격을 찾아 나서는데 제대로 찾을 수 있는 것일까? 오히려 MBTI 같은 검사가 더 정확한 거 아니야. 이처럼 여러 가지 생각들이 애니어그램을 하는 동안 들기도 했다. 이는 아마도 나 자신과 대화하는 버거움에서 온 것이라 생각한다.
애니어그램은 성격 유형이 크게 사고형, 가슴형, 장형 세 가지로 나누고 각 유형마다 또 세 가지로 나누어 결국 9가지의 성격유형을, 각 유형의 고정된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 1번부터 9번까지 번호를 붙여 불렀다.
나는 처음에는 사고형에 있다가 장형의 1번, 사고형의 7번, 결국에는 사고형의 6번이라는 험난한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사람과의 대화나 다른 사람의 시선 등의 소위 객관적이라고 하는 것을 통한 평가가 아닌 상당히 주관적인 이 과정은 내게 시사하는 바가 컸다.
평소에 사회적인 가치들만을 쫓다가 나 자신의 내면을 돌보지 못한 탓인지 자기와의 대화라고 하는 것의 어려움을 겪었다. 세상에 내가 나 자신을 이렇게나 모르다니.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나의 언행이 사회적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인가' 등등만을 생각하며 살다보니 나와의 대화가 너무 없어 나 자신을 가장 모르게 되었다. 비통할 일이다. 네가 너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유행가 가사가 이렇게 찌릿하게 다가올 수가 없다.
부실한(?) 회원인 나로서는 '내 안의 함정을 찾아라'라는 이번 회원 워크샵 제목에 별 생각이 없었는데, 애니어그램을 하고 나서야 그 제목이 의미하는 바를 제대로 알았다. 애니어그램은 자신의 성격유형을 알기 보다는 자신의 성격이 가지는 단점(함정)을 알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나의 단점은 하나도 생각이 안 난다. 아마도 나의 것이기 때문에 단점도 장점이 되어버리는 게 아닐까?

애니어그램이 끝나고 나서 문득 문득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의식적으로 가지려고 노력한다. 몇 달에 한 번, 아니 간혹 내켜야 쓰는 일기(?)를 자주 써볼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번 회원 워크샵은 '내가 누구인지 나는 아는가?'라는 질문을 나에게 던졌고, 내 일상의 과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