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의/노/동/생/각]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자리가 나에겐 스트레스다!!
이보경:: 여성노동센터 회원, 날아라 기획단 기획위원
'오늘 저녁 약속들 없지?, 간만에 회식하자!', '내일 저녁에 거래처랑 저녁 먹기로 했다.' 갑작스런 통보...'부장님 저 선약 있습니다.' '그럼 전화해서 취소해!'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은 한 번 이상, 혹은 매번 겪는 일일 것이다. 선약이 있어도 빠질 수는 없다. 자율적인 거라고 말은 하지만 결코 내 의지대로 참석여부를 결정할 수 없다. 친목을 도모하고,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고 또한 업무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자리가 우리에게 또 다른 스트레스로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일 있을 '날아라 기획단' 회의를 생각하며 이런저런 회식에 대해 왜? 라는 질문을 하고 있는 나에게 관리팀에서 이메일이 왔다. 그것도 퇴근시간이 다 되어서... 내용은 '박과장의 송별회를 겸한 회식이 내일 6시 30분에 있사오니 모두 참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또 다시 일방적인 회식통보다. 사장님까지 참석하는 회식이니 일반 평사원인 나로서는 싫다는 내색도 못하고 끌려가야만 하는 것이다. 그 다음날에도 거래처 직원들과 저녁약속이 있는데... 일주일에 이틀은 회사 일로 인해 내 시간을 가질 수가 없다.
다음날, 드디어 업무를 마치고 회식장소에 집결을 했다. 막 자리를 잡고 앉으려는 순간 사장님의 말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 옆에 앉도록 하지' 무시하고 다른 팀에 근무하는 여직원과 나란히 앉아서 먹을 준비를 시작했다. 우리의 사장님 '동성끼리 앉는 것은 안되지' 또 다시 끼워 앉기를 강요한다. 우리끼리의 수다에 빠져 못들은 척 하는 것으로 불편한 순간을 넘겼다. 고기로 어느 정도 속을 채운듯한 순간! 술잔이 춤을 추며 날아다니기 시작한다. '어~ 보경씨도 한잔해야지~'하며 한 손에는 술잔을 다른 손에는 술병을 들고 비틀거리며 내게로 다가오고 있는 사람, 나한테는 언제 술잔이 오는 거야 라며 술 따라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 재밌지도 않은 저질스런 농담을 무슨 기막힌 토픽을 전하듯 목에 핏줄까지 세워가며 떠들고 있는 사람, 일반적인 남자들이 보기에 혼기를 놓쳐(?)버린 나에게 '결혼은 언제 할 예정이야? 사귀는 사람은 있는 거야'라며 결혼얘기를 캐묻는 사람, 사장님 말씀이 법이요, 진리입니다 하고 아부를 하고 있는 사람... 매번 회식 때마다 벌어지는 광경이다. 어쩜 이리도 변화가 없는 것인지...
드디어 다들 술이 오르자 2차를 가자고 외친다. 어김없이 2차는 단란주점!(회식할 때마다 찾는 곳이니 우리 직원들에게 감사패라도 줘야 하지 않을까...^^;) 맥주가 박스로 들어오고 직급 순서대로 노래의 선곡이 이어지고 술에 취해 고래고래 괴성을 질러댄다. 자리에 앉아 있는 여직원들에게 백댄서로 춤을 추라고 손을 잡아끈다. 마지못해 일어나서는 조금 분위기를 맞추는 듯하다가 슬그머니 화장실로 빠져나가는 여직원들... 시계를 보며 한숨을 쉰다... 도대체 언제나 끝이 날까?
아침에 일어나니 지난 저녁에 먹었던 술로 속도 편치 않고 머리도 지끈거린다. 따라주는 술을 물수건이나 식탁 밑의 물 잔에 버리며 요령 것 마시지 않았는데도 많이 마셨었나보다. 오늘 저녁에는 또 거래처 접대를 가야 하는데... 정말 회사에 나가기가 싫다.
출근을 하고 보니 몇몇 팀장들의 얼굴이 보이질 않는다. 어제 그렇게 마셨으니 또 사우나에서 술 해독을 하고 있겠지... 여직원들의 몸이 무쇠도 아닌데 남자들도 힘들어 지각을 하거나 사우나를 찾는데 여직원들은 지각한 사람도 없이 모두 자리에 앉아있다. 남직원들이 힘든 것은 당연한데 왜 여직원들은 힘든 내색을 하면 안 되는 것인지...
그럭저럭 하루를 마무리하고 거래처와의 저녁약속 때문에 서둘러 사무실에서 나왔다. 같은 팀에 근무하는 팀장, 대리 그리고 나. 거래처에서는 4명의 남직원들이 나왔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고기집에서 저녁을 먹는다. 고기가 채 익기도 전에 벌써 술잔이 오고 간다.
우리 팀장과 대리는 거래처 직원의 비위를 맞추느라 바쁘다. 물론 을의 입장인 우리에게는 당연할 수도 있지만 도를 넘는다는 생각이 든다. 거래처랑 만났으면 같이 정보도 나누고 업계 돌아가는 얘기도 하면서 새로운 비즈니스를 성사시킬 방법을 찾는 것이 우선 일텐데... 우리 팀장, '보경씨가 부장님께 한잔 드리지?', 어, 또 이건 뭔가? 내가 접대부로 이 자리에 앉아있는 것도 아닌데... 점점 기분이 상해간다. '부장님 몸 생각하셔야죠. 몸에도 안 좋은 것을 왜 그리 권하세요?' 라며 웃음으로 얼버무릴 수밖에 없는 나.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같은 사무실 직원들이 그럴 때는 면박이라도 주고 구박을 하는데 거래처 직원, 그것도 우리에게는 갑인 사람들 앞에서는 이런 불편한 상황을 어떻게 피해갈 수 있을까? 답이 나오질 않는다. 그 사람들의 기분에 따라 우리에게 업무적으로 손해가 올 수도 있기에 기분 나쁜 내색도 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참고 있자니 속이 부글거린다. 이런 분위기에서 2차까지 가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렇다고 가지 않으면 새로운 정보를 놓칠 수도 있을 텐데... 머리 속이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화장실 가는 척 티도 내지 않고 몰래 나가서 계산을 하고 들어오는 우리 대리. 이제 정리하고 2차를 가자고 한다. 거래처랑 만나면 새로운 소식을 많이 듣게 되기 때문에, 그리고 술을 어느 정도 마시면 하나를 물어도 둘. 셋을 얘기해주기 때문에 껄끄럽고 불편하지만 참고 당연히 끝까지 함께 참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먼저 간다고 얘기하면 여자라서~~~ 하는 소리가 뒤통수를 칠 것이 뻔하기 때문에 빠질 수가 없다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나보고 먼저 가라고 한다. 이유는 어제도 늦게까지 있어서 피곤 할 텐데 일찍 가서 쉬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들 인사를 하고 자리를 옮기고 있다. 그 자리에서 싫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난 집으로 와야만 했다.
다음날 아침, 예외 없이 둘이 또 지각을 했다. 전날 정말로 끝까지 갔나보다. 아침까지 술 냄새가 가시질 않으니. 대리에게 물었다. '어제 어디로 갔었어요?', 한참을 얼버무리더니 룸싸롱을 갔다고 실토를 한다. 여자들까지 불러서 합석을 한 모양이다. 그럴려고 나를 먼저 보냈던 거구나. 평소에는 내 몸에 대해 걱정이라곤 모르던 사람들이 어쩐 일로 나를 걱정하나 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팀장이 접대비 영수증을 처리를 해 달라며 한마디 덧붙인다. '어제 같이 저녁 먹은 사람들에게 전화해서 잘 들어가셨는지 물어보지. 뭐, 내가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보경씨가 하는 것이 더 기분 좋지 않겠어?' 참, 기가 막혀서. 못하겠다며 돌아서는 나에 대한 팀장의 눈초리가 따갑다. 하지만 할 수 없는 것은 할 수 없는 일이다. 업무상 일이 있어서 전화하는 차에 물어보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문안 인사를 하기 위해 전화를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기가 막히고 열을 받은 채로 자리에 앉아 접대비 영수증을 보니, 영수증의 금액 또한 나를 열 받게 한다. 이 정도의 금액이면 우리 사무실 막내의 한달 월급이랑 맞먹는 수준인 것을... 하루 밤사이에 한 사람의 월급을 써버리다니. 직원들에 대한 복리를 좀더 개선을 시키는데 이런 돈을 투자한다면 모두들 일에 대한 의욕이 넘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되는 야근에도 O/T 수당도 없이 일을 하고 가끔은 대중교통이 끊겨 내 돈을 들여 택시를 타고 집에 가는 일도 있었는데... 이런 돈을 들여서 얼마나 큰 비즈니스를 성사시킨 것인지 꼭 확인해보리라.
왜 이런 식의 회식 또는 접대뿐이 생각을 못하는 것일까? 어차피 그렇게 흥청망청 쓰는 돈이면 평소에는 부담이 되어 즐기지 못했던 뮤지컬이나 음악회를 본다거나 볼링과 같이 가볍게 할 수 있으면서도 팀웍을 다질 수 있는 스포츠를 즐긴다거나 아님 숨어있는 맛집/멋집을 찾아 평소 접하기 힘들었던 좋은 음식을 먹거나, 찾아보면 모두에게 즐거울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참으로 많을 텐데... 술로 속을 버리고, 음담패설로 맘을 상하지 않으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즐거운 맘으로 기꺼이 참석하고픈 자리! 서로에 대한 얘기도 나누고 회사 내에서, 혹은 회사간의 업무개선에 대한 좋은 의견도 나눌 수 있는 즐거운 자리.
다음 번에는 우리회사는 이렇게 건전한 방법으로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회식을 한답니다 라고 자랑하는 글을 쓸 수 있기를 바래본다.
|
